우찌무라 간조, 성서일본 모토로 기독학생들 가르쳐

이정현 목사 빛과소금의교회 / (310)749-0577 E-Mail: tlspc0316@gmail.com

Q: 저는 설교를 통해 일본의 성경학자인 우찌무라 간조라는 사람의 이름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하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A: 우찌무라 간조 선생은 주님을 믿기 전에 아마테라스 오오카미를 건국신화로 하는 나라의 떠오르는 태양을 모든 신 중에 가장 위대한 신으로 섬기고 그는 괴팍한 우상을 많이도 섬겼습니다. 아침마다 이름을 알지 못할 잡신들에게 봉양하고 우상을 섬겼기에 그가 회심했을 때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죄인 중의 괴수”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가난했던 무사의 아들은 삿포로농업학교 입학을 계획합니다. 당시 일본은 황무지였던 홋카이도를 개척하고자, 안으로는 국비로 학생들을 끌어들였고 밖으로는 우수한 미국인을 교사로 채용했습니다. 그때 삿포로농업학교에 채용된 교원이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 박사였습니다. 매사추세츠대학 총장이었던 그는 오로지 선교를 위해 일본에 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단지 8개월 동안 체류했을 뿐인데도 1기 졸업생 15명 전원을 기독교 신자로 세웁니다.

영어를 배우고 싶었고, 국비 지원이 됐기에 삿포로농업학교 제2기생으로 1877년 16세에 입학한 우찌무라는 1기생 선배들로 인해 신자가 되기를 강요받습니다. 그게 싫어서 가까운 신사에 가서 일본의 토속신에게 기도도 하지만, 결국은 성경의 가르침이 진리라고 판단하고 1878년 6월 2l일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 받을 즈음에 쓴 그의 고백입니다. “세상에는 내가 믿어왔던 것처럼 800만 이상의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신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기독교의 ‘유일신론’은 내 미신의 뿌리에 도끼날을 대었다.”

크라크 박사의 제자인 우찌무라 간조, 다른 말로 내촌감삼은 후일에 미국에 유학을 갔다 오고 일본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한 것은 많은 사회활동을 한 것보다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하루 몇시간씩 자기 다다미방에서 성경을 가르치며 인재를 키우는 것을 중심사역으로 했습니다. 한마디로 기독교 신앙으로 사람을 키우는 사역을 한 것입니다. 그의 생애의 숙원은 “일본을 성서위에 세우자!”라는 “성서일본”이란 모토를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강조한 슬로건은 “나는 일본을 위하여, 일본은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였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제자들이 그의 사상을 이어 받았습니다.

이 내촌감삼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한국의 김교신, 함석헌, 도산 안창호 선생입니다. 그리고 두레마을의 김진홍 목사도 신학생시절부터 그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국의 김교신 선생은 성서일본을 성서한국으로 바꾸었습니다. “성서한국, 통일한국, 선교한국이라는 슬로건을 강연 때마다 사람들에게 주장했습니다. 저도 그 말에 깊은 공감을 합니다. 새벽기도 때마다 조국을 위해 이 3가지를 놓고 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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