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구령에 대한 열심(눅14:1-23)찬257장 구령에 관한 주님의 열심이 어떠합니까? 첫째, 주님이 마련한 잔치는 모든 것이 장만된 큰 잔치입니다(16, 계3:20). 그 중 죄사함, 영생, 성령의 능력, 풍성한 기업 등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초청받은 사람들이 자기 소유욕과 일락욕으로 한결같이 사양함은 복음을 거절하는 유대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혼동해 복음잔치의 풍성함에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인은 누구든지 강권해 데려다 집을 채우라 하셨습니다(23). 이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원시복음인 “모든 민족이 너로 인해 복을 받는 구원의 계획(창12:3)을 성취하심입니다. 그 덕으로 이방인인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게 됐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나 이 구원은 내게서 끝나지 않고 내 이웃을 위해 마련된 것임을 잊지 말고 주인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순종해야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깊이를 이해할 때 진정한 구령자가 될 수 있습니다. [화] 기도 응답(눅18:1-7)찬479장 참된 기도는 어떤 원리를 따라야 합니까? 먼저 외식된 마음에선 참 기도가 나오지 못합니다. 참 기도는 참 신앙의 표현입니다. 어떤 요소가 포함됩니까? 첫째, 하나님만을 상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것이 바로 그의 신앙의 표현입니다. 둘째, 영적부담을 구체적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듯이 기도의 제목을 가집니다. 찬양, 고백, 간구 그리고 감사의 요소를 가지되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바른 인격적 관계를 가지게 합니다. 셋째, 받기까지 구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교제의 긴밀한 연합이 이뤄지게 되고 진실한 신앙성장이 이뤄지고 무엇을 받았는가보다 그 분과의 오랜 친밀성을 배우며 그의 형상을 닮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유기적으로 응답하십니다. 시간을 들이게 하시고 수고를 쏟게 하시고 굴곡을 두십니다(눅18:7). 모든 기도는 반드시 주님의 정한 때에 응답됩니다. [수] 하나님 나라(눅19:1-38)찬248장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보인 하나님나라는 어떻게 표현되었습니까? 38절은 그에 관해 무엇을 보여줍니까? 첫째, 창세전과 미래의 영원계를 보지 못한 신자는 현실에 임한 하나님나라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모순과 갈등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믿는 자에게 그 나라가 이미 임했고 그 나라 맛을 보고 있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는 육안으로 볼 수 없으나 그 나라의 증거는 볼 수 있습니다. 둘째, 그가 맛본 하나님나라는 크게 두 요소가 드러납니다. 무리들이 부른 찬송가사에 하나는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곳이 하나님나라입니다. 먹으나 마시나 영광을 주께 돌리는 마음이 있다면 복됩니다. 다른 하나는 평화입니다. 그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 평강이며 형통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의 은혜로 충만하기 위해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고 그에게만 모든 영광을 돌리고 그가 주시는 평강에 잠겨야합니다. [목] 종말의 지혜(눅21:1-15)찬401장 주님은 제자들에게 종말을 어떻게 대처하라고 가르치셨습니까?(15) 첫째, 예루살렘 멸망징조와 더불어 세상 종말의 징조를 가르치셨고 이스라엘의 멸망을 말씀하시면서 지구의 멸망을 예언하셨습니다. 그 때의 징조만이 아니라 그 때를 통과하는 교회의 지혜를 일러주시며 세상방법이 아닌 하나님나라방법으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믿음 때문에 온갖 핍박을 당할 때 변명할 것을 연구치 말라 하셨습니다. 자기 재주를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령이 궁지에서 이길 수 있는 구재(words)와 지혜(wisdom)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 종말을 잘 지나기위해 가난한 마음(마5:3)을 갖는 것입니다. 둘째, 성령의 지혜를 얻는 성경말씀을 묵상함으로 거기에 숨는 것입니다. 성경은 종말의 환난에서 피할 피난처며 기근의 때 먹을 양식이며 혼란 때 붙들 지혜이며 흑암의 날에 갈 길을 밝히 보여주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금] 완전한 죽음(눅23:1-46)찬165장 한 순간으로 수많은 구약 예언과 교훈들과 사건들 성취됐음을 보인 46절은 그리스도 죽음의 어떤 성격을 나타냅니까? 46절 한 마디가 주님이 오신 목적이 성취돼 그 효능이 영원히 나타나는 유일한 근거가 된 셈입니다. 십자가란 그의 죽음을 상징한 것이기에 그의 완전한 죽음을 생각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적용해야합니다. 그의 완전죽음의 증거를 누가는 세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첫째,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 모든 신자 각자에게 이뤄진 것을 보였습니다. 이 길을 향해 나가는 자는 살아나고 새로워지도록 돼있습니다(히10:20). 둘째, 백부장과 주변사람들이 주의 마지막 말을 들었고 멀리서 여러 남자와 여자들이 목격함으로 죽음의 증인이 됐습니다. 십자가는 진실과 사실로 이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부활 역시 사실사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죽음을 굳게 잡고 완전한 생명을 누립시다. [토] 성령의 조명(눅24:1-32)찬177장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일어난 사건은 성령의 조명에 관해 무엇을 가르칩니까?(32절) 첫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은 우리 신앙의 근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은 그의 죽으심과 부활이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믿는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로만 됩니다. 그 사건을 목격하지 않았다 해도 기록된 성경을 통해 알고 받아들임으로서 구원을 받습니다. 만일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을 수 없다면 우리의 구원은 가짜입니다. 둘째, 이 방법이 우리 생애에 일어난 가장 큰 기적입니다. 이것은 바로 주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신 방법이었습니다. 부활한 주님이 두 제자와 동행했어도 알아보지 못한 채 낙심했을 때 주님은 성경을 풀어주시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풀어주는 말씀을 자세히 들을 때 눈이 뜨여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기까지 성경에 착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