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터성경사역원 LA 지부장
하늘소망교회 담임
월: 소견(所見)보다 소명(召命) (삿 21:25) 찬 67장
사사기 19장~21장은 ‘레위인의 첩 사건’입니다. 어떤 레위인이 에브라임 산지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 출신의 한 여인을 첩으로 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행음을 하고 자기 집 베들레헴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첩을 찾으러 베들레헴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해가 졌고, 베냐민 땅 ‘기브아’라는 동네를 지나가다가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 레위인은 자기 첩을 그 불량배들에게 내어주는 상황이 되었고 첩은 밤새 윤간당하고 죽었습니다. 레위인은 그 첩의 시체를 열두 토막을 내어 온 이스라엘에 보냈고 이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베냐민 지파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레위인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온 백성이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소견대로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인 소명대로 살아야 합니다.
화: 떡집을 떠난 슬픔 (룻 1:1~5) 찬 387장
룻기는 사사시대를 살았던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룻기는 성경 전체의 내용을 품고 있는 복음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다윗을 등장시키는 이야기입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엘리멜렉은 그의 가족을 데리고 모압으로 이민을 갑니다. 베들레헴의 뜻은 ‘떡집’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궁극적인 떡은 ‘하나님의 말씀’ 혹은 생명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엘리멜렉은 상황과 조건 때문에 떡집을 떠났습니다. 떡집을 떠난 사람들이 경험했던 것은 ‘사망’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세상의 가치들이 너무나 좋아 보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가 일시적으로 만족을 줄 수 있겠으나, 생명의 떡집을 떠나는 순간 우리의 인생은 영원한 절망을 경험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 양식인 ‘산 떡’이기 때문입니다.
수: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 (룻 1:6~22) 찬 527장
엘리멜렉과 말론, 기룐의 죽음 후에 남은 가족은 나오미와 그녀의 두 자부(오르바와 룻)입니다. 나오미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탁월하고 위대한 결정을 합니다. 떡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사람들에게 ‘나를 나오미(기쁨)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고통)라고 부르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텅 빈 존재로 만들어서 돌아오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텅 비게 하시는 그 지점은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은 오히려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이 됩니다. 마치 탕자에게 있어서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하게 된’ 그 순간처럼 말입니다. 그 순간은 아버지께 돌아갈 중대한 결심을 하는 복된 순간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절망의 순간을 복된 전환점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우리의 인생은 역전될 수 있습니다.
목: 기막힌 은혜 (룻 2:1~16) 찬 486장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의 인생은 역전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돌아온 베들레헴에 유력한 사람 ‘보아스’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갔던 밭이 하필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룻이 이삭을 줍던 그날 보아스가 그의 밭에 나와서 룻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의 의지와 계획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연출해 내신 기막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룻과 보아스는 각자 다른 상황과 이유로 그 장소에 오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선함을 이루시는 재료로 삼으셨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두 가지 큰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의 그림자인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은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자신의 식탁인 십자가로 초대하여 그분 자신으로 우리를 배불리 먹이십니다.
금: 칭의 후 성화된 삶 (룻 3:1~13) 찬 303장
보아스는 룻의 ‘기업 무를 자’ 중 한 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 중에 ‘고엘’이라고 하는 ‘계대결혼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약자 보호법이며, 이 법의 정신은 ‘사랑’입니다. 룻은 자신의 고엘인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보아스가 누운 자리에 들어갑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러 갈 때 곱게 신부의 단장을 합니다.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보아스에게 갑니다. 이 모습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가 신랑인 예수님을 만날 때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정결 예식에 참여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위한 속죄를 하는 것(렘 14:18, 29)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성도가 입을 예복은 ‘거룩한 행실(계 19:8)’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보혈로 칭의 된 후에 성화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토: 해피엔딩 (룻 4:21~22) 찬 452장
룻과 보아스는 결혼하게 됩니다.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그 결혼을 축복합니다. 보아스는 야곱과 같은 복을 받고, 룻은 라헬과 레아와 같은 복을 받으라고 축복했습니다. 또한 유다의 복을 받으라고도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축복의 사람이었고, 그리고 유다는 인간적인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습니다. 오벳은 장차 다윗의 할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룻은 이방 사람이었고, 여인이었고,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과부였고,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정서 속에서는 가장 낮고 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떡집을 떠난 자의 죽음으로 시작된 룻기는 떡집으로 돌아온 자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생명으로 끝납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분기점으로 생명의 이야기로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반전과 역전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09.17.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