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가정예배(02/14/2022-02/19/2022)

전화령 선교사

월: 겸손의 왕이신 주 예수(눅19:28-36)찬347장

첫째, 그는 겸손의 왕이십니다(35). 백마 타실 분이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심은 자신의 사역 시작과 마지막이 겸손일관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스가랴 예언대로(슥9:9) 그 왕의 겸손은 그의 모든 사역의 기본이며 방법이며 목적이심을 실물로 가르치셨습니다. 용맹과 위상을 강조하는 로마의 인본주의와 전혀 다른 아린양의 원리를 보이심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가리키심입니다. 둘째, 그는 주권자이십니다(31-34). “주께서 쓰시겠다”는 간단한 이 말은 하나님백성생활의 주되심을 강조하십니다. 주권자의 능력은 이런 겸손에서 흘러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앉을 자리입니다(시1:1). 셋째, 그는 겸손한 자를 쓰십니다(25). 산상보훈에 심령의 가난상태를 첫째 복으로 명시하심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낮은 마음으로 능력 있게 살아갑시다(사57:15).

화: 찬송할 이유(눅20:37-38)찬43장

무리들은 겸손한 그 왕을 왜 찬송했습니까? 첫째, 그리스도의 능한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37). 왕의 능력을 바로 알 때 찬송이 나옵니다.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들을 기록한 성경계시를 관찰하고 묵상함으로 그 능력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둘째, 그들은 하늘의 평화를 찬송했습니다(38). 왕이 오심은 구속의 성취이기 때문에 반드시 평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원수이던 우리가 그의 구속으로 진정한 평화를 누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셋째,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 충만했습니다(38). 하나님의 보좌에만 있는 영광이 그 왕의 구속으로 밝히 나타났기 때문에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구유에 탄생하신 천군천사의 찬송과 같으나(눅2:14) 여기는 더 발전적은 완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구속받은 성도의 찬양으로 가득 찬 삶을 만들어 갑시다. 

수: 침묵할 수 없는 구속(눅20:39-40)찬139장

백성들은 왜 감격스러운 찬송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첫째 구속의 완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억만 죄에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의 죄가 단번에 영원히 처리됨이 구속입니다. 이 용서를 아는 자는 감사와 찬양과 헌신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구속받은 자의 감격을 회복할 때  기이한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성령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속을 이루시고 자기 백성에게 적용하시는 성령은 그 구속을 실재가 되게 하십니다. 성령으로 감동된 기록인 구속의 책인 성경을 적용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구속의 풍성함을 누려야합니다. 셋째, 만물의 찌끼 같은 자신의 죄인 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빛 아래 진정 죄인임을 아는 자만이 이 감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 해를 그 감격으로 넘치게 합시다.

목: 그 왕의 눈물(눅20:41-44)찬82장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자기 백성에게 왔으나 알지 못하고 영접치 않은 사실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에 그 왕은 우셨습니다. 첫째, 구속이 가려졌기 때문입니다(41-42). 이미 모든 특권이 주어졌으나 누릴 줄 모르는 어두움은 가장 큰 저주입니다. 구속주가 오셔서 구속을 이루신 사실을 바로 알지 못한 자들은 최대의 비극을 맞습니다. 둘째, 버림받은 자의 비참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43-44). 자식을 땅에 메어치고 돌 위에 돌도 남지 않는 전쟁의 폐허가 따르는 그 비참함을 미리 보시고 우셨습니다. 셋째, 구원의 기회를 영원히 상실했기 때문입니다(44). 보살핌을 받는 기회에 돌아오는 것을 거절한 그들은 아브라함의 복을 잃은 자가 됐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하는 자는 그런 자리로 떨어집니다.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갑시다.   

금: 기도의 집(눅19:45-48)찬480장

구속의 완성인 참 성전 하늘에 오르시기 전 주님은 마지막을 성전에 들어가 성전의 실재를 드러내셨습니다. 첫째, 성전은 하나님의 집 하나님 보좌 상징으로 옛 에덴과 같은 상징입니다. 그 성전은 이제 그리스도 안으로 완성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성전이며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둘째, 강도 소굴이 된 것은 성전의 제일 역할인 하나님과의 교제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지 못하면 자연히 탐욕의 소굴이 돼 온갖 욕심과 외식과 광폐가 채워집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 가장 큰 문제입니다. 셋째, 경건을 이용하기 잘하는 외식과 싸워야합니다. 외식을 이기는 길은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인 성경에 착념하는 길 뿐입니다. 그 때 진리의 성령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외식을 철저히 경계하는 참 신자로서 살아갑시다.

토: 참된 권위(눅20:1-8)찬173장

예수님 권위에 도전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질문은 도리어 그리스도의 하나님되심을 들어냈습니다. 첫째, 예수의 권위는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며 그 자신이 하나님이십니다(1). 그가 전한 복음만이 죽은 자를 살리며 어두움을 빛으로 바꿉니다. 둘째, 세례요한의 권위 역시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2-6).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와 길잡이 역할을 한 그의 영적권위는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쇠함으로 예수의 흥함을 증거한 선지자였습니다. 셋째, 종교지도자들은 모두 모세 율법을 근거한 권위를 주장했으나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참 권위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됐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참 권위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영권을 행사하는 한 해가 됩시다.  

02.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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