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목사 (대흥교회) [월] 나를 나타내지 말라(막3:7-12) 예수님께서 고침을 받은 자들에게 함구령을 명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분명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첫째는 잘못된 메시야관을 갖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추종하였지만 그들이 육체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른다면 아무소용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는 악한 자들과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상승할수록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은 더욱 초조해져갔습니다. 육신의 인기문제로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는 것을 피하셨으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자신의 신분과 신성을 분명하게 나타내시고 구원의 완성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화] 열 두 제자를 세우심(막3:13-19) 예수님께서는 12제자를 세우셨는데 그 목적은 첫째 제자화 훈련과 전도훈련을 위함이었습니다(14절).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 더욱 견고히 교회의 터를 세우시기 위하여 집중적으로 12명을 훈련시키셨습니다. 둘째 목적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효과적으로 복음사역을 확대시키고, 향후 그들로 말미암아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선 "자기의 원하는 자들"(13절)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원하는 자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또한 낮고 약한 자들을 들어 세우심으로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시대의 또 하나의 제자가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작은 예수가 되어 살아가는 하루가 됩시다. [수] 바알세불의 논쟁(막3:20-35) 예수를 믿지 않는 것만도 큰 죄인데, 나아가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한 죄까지 범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논리적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사단이 사단을 쫓아낼 수 없다는 기본적 대답입니다. 분쟁하는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분쟁하는 집안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국 사단을 결박하여 사단의 왕국을 파멸시키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건설키 위해 오셨다는 것을 밝히셨습니다. 반면, 저들을 향하여 결코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없는 무서운 죄가 있는데, 그것은 "성령훼방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구원의 길을 방해하고, 복음전파를 막고, 성령의 역사를 끝까지 거절하여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죄입니다. [목]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막4:1-2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약 32가지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평범하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영적 진리를 쉽게 전하시기 위함이고, 악한 자들에게는 복음의 비밀을 감추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사단으로 말미암아 마음마다 완고해졌고 욕심에 이끌리어 살아가기 때문에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은 불가능이었습니다. 비유의 말씀으로 깨닫게 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4가지 밭에 관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밭, 옥토.. 각각에 뿌려진 씨앗의 말씀이셨으며 옥토에 뿌려진 씨앗은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말씀이 우리 가운데 뿌려질 때에 옥토와 같은 마음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금] 여러 가지 비유의 말씀들(막4:21-33)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1)등불은 말 아래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을 비추는 등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받은바 신령한 은혜들을 감추지 말고 적극적으로 이웃에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자라나는 씨앗 비유는 하나님나라의 성장법칙을 가르치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고 성장하고 열매를 맺도록 자라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3)겨자씨 비유는 천국에 대한 결과적 측면을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태동은 겨자씨만큼 작고 연약할지라도 교회를 확장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으로 결국 엄청난 결과로 확장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방해하는 자들과 기득권에 눌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진리와 천국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토] 풍랑을 만날 때에(막4:35-41) 풍랑을 만난 사람들이 세 부류가 있습니다. 선지자 요나(죄과로 인한 풍랑)와 로마로 향하던 사도바울의 일행(인간의 경험, 세상적인 것을 더 의지함으로 인한 실패의 풍랑)과 예수님의 제자들(믿음의 성장을 위한 애매한 풍랑)이었습니다. 본문의 풍랑은 애매히 겪는 풍랑입니다. 이유 없는 풍랑이 났을 때, 우선 두려워하지 말고 즐거워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또한 눈물로 간구하며 기도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