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목사 (대흥교회) [월] 귀신들린 자와 병자를 고치심(막1:21-34) 마가는 예수님께서 네 제자를 부르시자마자 갈릴리 초기사역을 소개하면서 많은 귀신들린 자와 병자들을 치유하셨다는 것부터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기러 오셨고 많은 사람들의 종이 되고, 대속물이 되어 오셨지만 그 본체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강력하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은 각양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그의 긍휼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간구하며 나아올 때 가져야 할 마음은 첫째 어떤 위치나 상태나 질병과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온전히 치유하실 수 있는 줄로 믿어야합니다. 둘째는 우리가 온전케 되는 것은 우리의 지극정성이 아니라 예수님의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면 그의 긍휼하심 때문에 새생명을 얻고 온전케 되는 줄로 믿습니다. [화] 바쁜 중에서도 기도의 습관을 가지심(막1:35-45) 예수님은 공생애 바쁘신 중에도 감당하신 것이 "새벽 오히려 미명의 기도"였습니다(35절). 새벽의 기도는 한가한 사람이 기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한가하면 새벽에 푹 자고 하루 종일 기도하십시오. 새벽은 오히려 부지런히 밤이 맞도록 수고하는 사람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축복의 통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이민생활에 지치고 피곤해서 새벽예배를 포기하지만, 새벽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치유의 힘도 사명의 완성도 기적의 체험도 새벽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능력과 기적을 베푸실 때에 기도를 쉬지 않으셨으며 (2)십자가 사역을 앞에 두고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으며 (3)평상시에 항상 기도하심으로 어떠한 유혹과 시험과 함정에도 이기심을 보이셨습니다. [수] 모든 영광 하나님께(막2:1-12) 가버나움의 중풍병자치료는 사랑으로 한마음을 이룬 합심한 간구와 노력의 역사입니다. 벤처 사업의 대명사 컴팩과 넷스케이프를 시작한 John Doer는 "21세기는 기술이나 기업정신, 자본은 얼마든지 있지만, 훌륭한 팀웍이 사업의 성공을 좌우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두세 사람이 합심하여 간구할 때 하나님은 더욱 귀히 보십니다. 교회에서도 교역자들끼리, 또 성도와 교역자가 서로 반목하고 비난한다면 어떤 기적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합심할 때 그 교회는 기적을 낳습니다. 중풍병자가 나음을 입고난 후 12절에 보면, 그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를 보고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4명의 합심으로 시작된 믿음의 결과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목]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막2:13-17)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좋은 것을 누리시고자 함이 아니라, 병든 자와 죄인의 친구로 오셨습니다(마20:28, 마5:17, 마10:34). 예수님께서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앉아 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바리새인이란 "분리"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뭔가 자신들은 구별된 특별한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둘 중의 하나,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죄인과 자기가 의인인줄 아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죄인임을 아는 죄인"이라는 인정입니다. 죄인의 친구되신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것은 첫째 겸손, 둘째는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도 용서받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우리도 죄인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하는 사명입니다. [금] 금식과 안식일에 대한 논 (막2:18-28) 예수님 당시에 엄격한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씩 금식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에 동참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형식주의에 대해서 책망하시면서 금식의 본질적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새벽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받기보다는 나오지 않는 교회의 중직자들을 비난하는 도구로 쓰여진다면, 차라리 새벽에 나가지 않고 형제를 비난하지 않는 자보다도 못한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복음시대와 율법시대, 유대교와 기독교의 근본적 차이점을 두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첫째는 낡은 옷과 생베 조각 둘째는 낡은 부대와 새 포도주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헛된 것으로 논증하려하지 말고 예수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심(막3:1-6) 3장에서는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직접 손마른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 것인가에만 혈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예수님이 손 마른 자를 고치시는가"를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악을 행하며 살인을 도모한 자들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