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헌신의 본(눅7:36-50)찬366정
옥합을 깨어 주님을 섬긴 여인의 헌신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웁니까? 첫째, 감격스러운 헌신을 배웁니다(41). 죄사함을 받은 자의 감격으로 옥합을 깨뜨림은 산 제물의 삶을 보입니다(롬12:1-2). 우리는 나의 옥합, 곧, 나의 지성, 나의 재능 그리고 나의 삶을 모두 주께 바친 자로 살아가야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잔치에서 먼저 대접받은 자만이 주님을 바로 대접할 수 있습니다(43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오라고 초청하신 주님은 오는 자마다 쉼을 주십니다. 이 감격을 가진 자만이 주님을 바로 대접할 수 있습니다. 시몬은 잔치 대접의 주인공이었으나 실상 죄사함 받은 무명의 여인이 진정한 주인공이었습니다. 셋째,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주이십니다(50절).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립시다.
화:신앙의 거침돌I(눅8:1-14)찬270장
땅에 심은 씨앗이 자라나듯이 신앙은 반드시 자라나야만합니다. 성장과정에 문제로 열매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 14절에서 기운을 막는 가시떨기뿌리처럼 우리 앞에 놓인 3가지 거침돌을 치워야만 합니다. 첫째 거침돌은 이생의 염려입니다. 거룩한 근심은 필요하지만 세상 염려는 우리를 불신앙으로 떨어뜨립니다.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하며 믿음으로 주께 아뢰어야합니다, 근심이 생길 때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고해야합니다. 주님은 상상을 초월한 평강을 부어주십니다(빌4:6-7). 둘째 거침돌은 재리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 곧, 부하려는 마음은 일만악의 뿌리입니다. 물질은 우리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앞설 수 없습니다.
수:신앙의 거침돌II(눅8:1-14) 찬197장
본문에 언급한 일락이 성장의 세 번째 거침돌입니다. 여가선용은 필요하지만 향락에 빠지면 영적성장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바울의 말대로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신자는 일락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져야합니다. 첫째, 세상에 살면서 즐거움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일전은총을 죄악시 하지 않고 현실에 주어진 은혜를 즐기는 자입니다. 둘째, 사탄이 던지는 탐욕에서 나오는 즐거움은 우리의 신앙에 치명상을 줍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의 쾌락은 우리를 욕심꾸러기 곧 현실의 우상숭배자가 되게 합니다. 셋째, 주님과의 교제를 즐기는 사람이 바른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기도와 성경묵상 그리고 말씀에 대한 순종의 재미가 필요합니다. 이 재미가 일락의 유혹을 이기게 합니다.
목:구원받는 방법(눅9:1-24) 찬499장
본문 24절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온전한 구원과 깊이 관계됩니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음으로 시작한 신자의 신앙은 즉석에서 죄사함과 영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니만을 따르게 합니다. 이것을 주님은 주를 따르는 것으로 설명하고 자아부인, 자기 십자가를 짐 그리고 주를 따르는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24). 또 다시 주님은 자기 목숨을 잃는 것이라 하시면서 자기 목숨을 잃으면 얻고 얻으려면 잃는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것은 자기 목숨을 산제물로 드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방법이고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금:기도에서 오는 변화(눅9:28-36)찬202장
하나님나라는 십자가 곧 그의 죽음이 중심입니다. 광채로 나타난 그리스도만이 중보자이며 아들이심은 죽음을 전제한 곳입니다(31). 어떻게 새로워집니까? 첫째, 기도할 때 변화가 일어나고 하나님나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세계를 본 것은 기도하는 때 일어났습니다(32). 둘째, 능력이 동반됩니다(28).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고 십자가중심을 배우는 시간이고 그리스도만을 주목하는 시간입니다. 이것이 능력의 근원입니다. 셋째, “여기 있는 것이 좋다”는 체험이 일어납니다. 초막 셋을 짓겠다는 허황된 말을 했지만 그 영광을 본 경험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반응이 모두 기도 속에서 일어납니다(33). 기도의 능력을 구합시다.
토:하나님나라의 현재성I(눅11:1-20)찬414장
하나님나라는 그 왕이 오심으로 현재화돼 재림으로 완성됩니다. 벙어리 귀신을 좇아내심이 그 나라의 현재성을 어떻게 증거합니까?(20). 첫째, 구별의 역사로 일어났습니다. 구원과 심판의 기준은 예수 믿는 믿음입니다. 그 나라는 이 기준이 더 분명해지는 곳입니다. 둘째, 초자연적 능력이 일어났습니다. 겨자씨나 누룩처럼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부끄럽게 하는 원리가 그 나라의 특징입니다. 아무리 작은 자라도 천을 이루고 가장 약한 자라도 강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그 나라의 백성으로 믿음으로 나갈 때 기이한 일이 생깁니다. 이미 임한 그 나라의 은혜를 누리기를 힘씁시다.
10.09.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