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가정예배(09/20/2021-09/25/2021)


월:역전의 은혜(창26:26-33)찬357

그랄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와서 부탁했던 이유는 여호와께서 이삭과 함께 계심(창26:28)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족장으로서는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물을 빼앗으려고 할 때 가족들을 위해서 그들과 싸우지 않고 순순히 그 우물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비멜렉도 이삭을 쉬운 상대로 파악해 자기 땅에서 쫓아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삭을 찾아와서 해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능력이 없지만 우리를 붙잡고 계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의 삶에는 역전과 반전의 은혜가 임합니다.

 

화:야곱,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다(창27:1-29)찬274

이삭은 나이가 많고 시력이 약해졌습니다. 시력이 약해졌다는 표현을 통해서 중요한 일들을 분별하는 능력이 없어졌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채는 사건은 ‘아버지 이삭의 분별력 상실’, ‘어머니 리브가의 편애’ 그리고 ‘야곱의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가십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연약함으로 짓는 범죄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를 다듬어 가시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수:거기에도 계신 하나님(창28:10-22)찬338

야곱은 도망자 신세가 돼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던 중 ‘루스’라는 곳에 이르러 돌 하나를 취해 베개로 삼고 노숙하게 됐습니다. 잠을 자던 중 야곱은 꿈을 꾸게 됐고 하늘로 이어진 사닥다리에 천사들이 왕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누워있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네 자손이 번성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야곱은 베개 했던 돌에 기름을 붓고 그곳의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야곱이 깨달은 것은 ‘아픔과 고통의 한복판에도 하나님은 함께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아픈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신자의 모든 삶의 순간이 ‘벧엘’입니다.

 

목:아! 그랬구나(창29:30-31)찬338

하나님께서는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함을 보시고 레아에게 자녀를 주셨습니다. 첫째 아들 ‘르우벤’을 낳고 기대로 부풀어 있었으나 여전히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레아는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를 낳고도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음을 한탄했으며 넷째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유다’라고 짓습니다. 그 의미는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레아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유다를 낳은 후에 깨달은 것은 ‘아, 그랬구나! 남편도 나를 사랑하고, 하나님께서도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송(유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금:이름을 바꾸며 삶의 방향을 바꾸다(창32:13-32)찬538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말을 들은 야곱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창32:1-12).
그의 관심은 자신의 상황과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환도뼈를 부러뜨리시며 “네 이름이 무엇이냐?(창32:27)”라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관심은 ‘야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야곱’의 뜻은 ‘뒤꿈치를 잡다, 빼앗다, 약탈자’이며, ‘이스라엘’의 원어적인 뜻은 ‘하나님이 다스리시기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황과 환경, 조건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입니다. 상황과 환경에 함몰되어 살아가는 ‘야곱’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과 영적인 거룩한 씨름인 기도를 하는 ‘이스라엘’로 살아갑시다. 

 

토:하나님의 얼굴(창33:1-20)찬384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은 다리를 절면서 에서를 만나러 갑니다. 긴장감 가운데 에서를 만났는데 에서의 반응이 의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환경’’이 아니라 ‘내가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야곱은 에서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변화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할 때 야곱은 새 이름을 받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변화되기 전의 야곱에게 에서는 ‘생명의 위협자’로 느껴졌지만 변화된 야곱이 만난 에서는 ‘길 인도자’였습니다. 에서가 변한 것이 아니라 야곱이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나의 환경’을 바꿔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꿔주십니다. 내가 바뀌면 원수의 얼굴도 ‘하나님의 얼굴’로 보입니다. 

 

09.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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