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기다림(창16:1-16)찬93장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말씀에 의하면, 한 사람의 ‘믿음’은 반드시 그의 삶에서 ‘행함’으로 나타나게 됩니다(약1-2장).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행함은 ‘말조심(행3:1~12)’, ‘지식을 넘어 지혜로운 행함(약3:13-18)’, ‘욕심 제어 및 비방을 삼가함(약4장)’ 등으로 나타납니다. 무엇보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믿음의 증상’은 ‘인내(약5:7-11)’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인내하며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삶에서 지금 당장은 시원한 해답이 보이지 않더라도, 선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고 기다립시다.
화:마음에 할례를 받읍시다(창17:9-14)찬257장
99세 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할례는 남성생식기의 겉포피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약’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의 자기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살려내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우리의 몸에 새겨놓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할례(종교의식으로서의 할례)를 받지 않지만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롬2:28-29).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도 할례 받은 자의 표식이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갈 때 ‘표시나지 않는 성도’가 아니라 ’표시 나는 성도’가 됩시다.
수:소돔이 멸망한 이유는?(창18:16-33)찬321장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이유는 그 땅에 죄악이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창 18:20). 그런데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창18:32; 창19:23-29). 비극은 ‘세상에 죄악과 악인들이 넘친다’는 것이 아닙니다. 더 슬픈 비극은 ‘거룩하게 구별된 의인 10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홍수심판을 받은 이유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과 섞였기 때문(창6:1~2)이었습니다. 예배자들이 예배의 자리를 떠나고 성도들이 거룩의 자리를 떠나는 것이 가장 큰 비극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거룩을 살아냅시다.
목:농담으로 여겼더라(창19:12-22)찬546장
‘농담’이라고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차하크’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웃다, 비웃다’라는 뜻입니다. 롯의 사위들은 롯을 통해서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이 단어를 통해서, 그리고 사위들의 태도를 통해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엄중하게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롱하며 비웃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가볍게 여길 때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고 중하게 받읍시다.
금:신실하신 하나님(창21:1-7)찬393장
아브라함이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자그마치 100세나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고, 그 아이가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사라는 하나님께로부터 아들을 낳은 후 비로소 웃으며 기뻐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25년 전이었습니다. 25년 동안 사라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멈췄고 그의 삶에서 기쁨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계획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라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립시다.
토:여호와 이레는…(창22:1-19)찬407장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의 산에서 (대속의 제물이) 준비되리라’는 뜻입니다. 그 대속의 제물이 대적(사단마귀)의 성문을 차지하고 그를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이레’는 예수님의 십자가사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삭은 대속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자신이 죽어야 했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숫양이 이삭을 대신해서 죽었습니다. 이삭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대신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죽이셨습니다. ‘여호와 이레’는 우리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은혜만 붙들고 그 은혜에 감격하며 오늘을 삽시다.
09.04.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