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가정예배 (05/23/2020-05/30/2020)

전화령 선교사

월:제자가 해야 할 일(막8:34)찬518장

그리스도의 제자인 그리스도인이 항상 추구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자아부인입니다. 자아금욕이 아니고 자기중심에서 주님중심으로 바꾸는 삶이 끊임없이 일어나야합니다. 그 이유는 자아가 육체의 소욕을 쉽게 따르기 때문입니다.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의 다툼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말씀에 착념시켜야 합니다(롬8:5-6). 진리만이 우리를 이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십자가를 져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가 질 수 없으나 당면한 일에 만나는 모든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일하심을 믿고 그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심정으로 나가야합니다. 셋째, 주를 쫓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일에 주되심을 믿고 나가야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주님을 닮아야하기 때문입니다.

 

화:자기 목숨을 얻는 길(막8:35-38)찬456장

여기 목숨은 생명의 근원인 마음, 영혼을 가리킵니다. 이 영혼을 지키는 길은 그것을 둘러싼 자아 곧, 인간부패성인 옛사람이 죽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으로 이것을 해결하셨습니다(롬6:3,6). 첫째, 먼저 목숨의 소중성을 깨달아야합니다(36-37). 천하와 바꿀 수 없는 소중성을 아는 것은 거듭날 때 옵니다. 성령의 조명이 아니면 무엇이 소중한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망에서의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된다면, 부패성에서의 구원은 예수를 중심할 때 일어납니다. 둘째, 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려야합니다(35). 산제사로 자신을 드리는 헌신이 없다면 참된 구원을 누릴 수 없습니다(롬12:1-2). 셋째,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릴 때 구원을 얻습니다(35-38). 복음전도에 힘쓰는 삶이 진정한 구원을 즐깁니다. 

 

수:베드로가 본 영광(막9:1-6)찬167장

높은 산에서의 세 제자의 경험은 현실과 영계가 연합하는 신비스러운 사실체험입니다. 바울의 삼층천의 경험처럼 그가 몸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고후12:3). 이것을 사도는 그의 서신에서 주의 재림의 영광을 봄이라고 해석합니다(벧후1:16). 어떤 점에서 그러합니까? 첫째, 그리스도 모습이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3).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으로 채워진 영광입니다. 둘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그와 교제를 나누는 광경을 보았습니다(4). 시간과 공간이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을 중심하여 조화를 이룬 모습입니다, 셋째, 두려움으로 할 말을 잃을 정도로 황홀경에 빠졌습니다(5-6). 베드로의 이런 경험보다 성경의 세계를 본 자의 반응은 더 놀랍습니다(벧후1:19). 

 

목:그의 말만을 들어야한다(막9:7-13)찬500장

이 황홀경에 빠진 세 제자는 그들이 붙들 진정한 중심은 오직 그리스도뿐임을 배웠습니다.  어떻게 그를 중심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첫째, 그리스도가 모든 일의 주인되심을 인정해야합니다(8). 모든 일에 그리스도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둘째, 모든 일에 그리스도의 말만을 들어야 합니다(7). 그리스도의 주권이 인정되는 가장 실제적인 일은 오직 성경 중심한 삶 곧 성경의존 사색으로만 일어납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죽음을 중심해야합니다(12-13). 변화산에서의 대화내용이 그리스도의 죽음인 것처럼(눅9:31) 모든 일을 구속 중심한 삶을 살아갈 때 풍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더욱 더 이런 확신이 충만해야합니다. 이것이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금:믿음의 위력(막9:14-29)찬343장

첫째,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인간의 온갖 수단으로 할 수 없는 불치의 병들을 치료하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는 간구가 있는 곳에 주님은 친히 일하십니다. 둘째, 귀신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귀신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통제하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만 몰려오는 싸움을 이깁니다. 오직 예수와 그의 말씀에 전적으로 의지한 신자는 초자연적인 일까지도 통제할 권한이 예수의 이름으로 주어집니다. 셋째, 이것은 기도로 표현됩니다(29).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듯이 기도할 때 말씀이 믿어지는 산 믿음이 생깁니다. 영적인 자유와 해방은 기도의 골방에서 일어납니다. 이 믿음으로 충만합시다.

 

토:십자가의 길(막9:30-32)찬496장

제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두려워함은 십자가의 영광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건을 통해 말씀하신대로 그 왕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은 그 백성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첫째,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구원을 이루심을 선포함입니다(31). 유일한 구원의 길은 주님의 죽음을 내 것으로 믿는 것뿐입니다. 둘째, 신자가 따라야할 본으로 보이셨습니다(32). 주님의 속죄의 십자가를 질수 없지만 그는 십자가의 길을 걷도록 모본을 보이셨습니다. 신자의 삶은 바로 이 좁은 길을 감으로 생명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 후에 찾아오는 영광에 동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31). 그의 고난과 죽음은 부활의 영광에 참여케 하는 능력도 포함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내 몫의 십자가를 잘 견디어 나갑시다.

whiteyou11@yahoo.com
05.2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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