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진리의 집(딤전3:8-13)찬206장 11절 목사(장로)의 아내는 남편과 버금가는 경건을 소유하라고 가르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는 기초를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교회는 진리의 기둥이며 터전입니다. 진리 위에 교회가 세워지고 진리로 교회가 지어져가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진리화, 성경화, 그리스도화 돼야 하는 것은 말씀의 토양 위에 교회가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대한 관심을 앞서는 모든 것은 우상이며 심판받을 죄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진리의 기초는 오직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부활, 승천을 언급하면서 그 분 위에 교회가 세워진 것을 말합니다. 오직 예수의 성품(형상)만이 드러나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진리의 집을 사랑합시다. [화]그리스도의 탁월성(히1:4)찬460장 4절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첫째, 유대 크리스천의 믿음이 전통에 의해 순수성을 잃어버리는 위험에 처했을 때 사도는 그리스도의 탁월함을 증거함으로 이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천사숭배사상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후사들을 섬기도록 보냄 받은 사역자들이지 하나님의 대우를 결코 받을 수 없습니다. 둘째, 그 때 성령은 오직 예수의 신앙을 나타내려고 계시의 근원에서부터 증거했습니다. 구약 선지자들의 여러 모양과 여러 부분의 계시는 장차 나타날 하나님 아들의 모형이며 그림자이지 그것을 앞설 수가 없습니다. 종말에 나타날 그리스도만이 모든 계시의 실체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큰 구원을 받은 자는 그만큼 특권이 주어지며 책임이 크기 때문에 조심해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수]구원의 창시자(히2:10-3:6)찬102장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첫째, 만물의 창조자, 섭리자, 구원자이시며 택한 자인 교회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구원의 창시자십니다(11). 나의 구원은 그가 시작해 그의 방법과 그의 능력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를 떠나서는 나의 존재와 사역이 무용지물입니다. 그가 없이 나는 잠시라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 십니다(3:1). 최초의 사도는 예수님이며 레위제사장보다 앞선 제사장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하나님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가장 복된 삶을 누림은 그를 깊이 생각할 때입니다. 예수와 예수의 말씀인 성경을 묵상할 때 우리는 가장 안정되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부요해집니다. 다른 곳에 한눈팔기 잘하는 우리의 마음을 쳐서 그에게만 집중하게 해야 합니다. [목]구약의 멜기세덱(히7:11-19)찬219장 어떤 점에서 멜기세덱은 그리스도 제사장직의 모형으로 보여졌습니까? 첫째,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며 모형입니다. 그림자(shadow)가 실체(reality)를 가지듯이 멜기세덱이란 인물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의 탁월함을 미리 보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가 레위지파가 아닌 유다지파에게서 나와 그의 불완전성을 완전케 하신 참 멜기세덱임을 보였습니다. 둘째, “별 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은”(15) 더 나은 구원, 더 나은 성전, 더 나은 언약의 중보, 더 나은 제사장은 비교급의 뜻이 아닙니다. 오직 그만이 구원주, 제사장, 중보자, 선지자, 왕이란 뜻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인 신자는 열린 하늘 문을 향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당당히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날마다 새로움을 입고 소생과 부흥을 누립시다. [금]완전한 속죄 (히7:27) 찬189장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27)는 이 절은 그리스도 속죄의 독특성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첫째, 수천년 시행하던 레위 제사제도는 그리스도의 속죄제사의 그림자입니다. 반복돼야 하는 불완전한 것이 단번에 드림으로 완성됐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 실체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둘째, 이것은 구약은 짐승의 피로, 신약은 예수의 피로 속죄되는 그릇된 가르침에 쐐기를 박는 일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십자가의 속죄 제사를 믿을 때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사장의 죽음과 불완전한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히 살아계셔 제사의 효능을 항상 나타내시는 승천하신 주님에게만 우리의 눈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토]양심의 담력(히10:35)찬325장 35절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첫째, 담력은 신자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열린 하늘문 안의 보좌에 서계신 인자를 볼 때 스데반이 순교의 담력이 생긴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의 변화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성령으로 그의 형상으로 변하는데서 일어나는 것입니다(고후3:18). 이것이 히브리서 이단들이 율법주의로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의 효능을 불신케 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림자 위에 머물러 안주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서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실체이신 그리스도와 완성이신 그의 죽음의 공로를 힘입어 나가는 자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양심의 담대함을 갖습니다. 그 담력을 가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