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으면 보입니다”

사도행전 9장 43절

우리 모두가 한번은 질문 받은 퀴즈문제가 그림 1(a)에 있다. 5개의 직선을 연속으로 그려 점 9개를 모두 연결할 수 있을까? 답은 매우 쉽다. 그림 1(b)처럼 연결하면 된다. 그렇다면,                 

4개의 직선을 연속으로 그려 점 9개를 모두 연결할 수 있을까(그림 2(a))?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 그러나 그림 2(b)에 그려져 있는 답을 보면, 이 문제 또한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처음 대할 때, 왜 풀지 못할까? 9개의 점 밖으로 직선이 나가면 안 된다는 조건은 문제 속에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9개의 점 밖으로 선이 나가면 안 된다는 조건을, 무의식 속에 스스로 조건으로 세우고는, 문제를 풀려고 애를 쓴다. 당연히,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상적인 관념,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용하며 살아가는 기존의 틀을 깨뜨릴 때, 불가능하게 여겨지던 문제가 풀리는 대박을 경험하게 된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시각, 새로운 통찰력, 새로운 시도, 이러한 것들이, 새로운 세계를 열고,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비밀을 드러낸다. 

 이번에는 그림을 하나 보자(그림 3(a)). 이 그림에서 무엇을 보는가? 당연히 어미 독수리가 보인다. 모이를 물고 와서 새끼에게 그 모이를 주려고 하는 어미 독수리, 그리고 그 어미 독수리 아래에는 둥지 속에 들어 있는 새끼 독수리가 보인다. 이 그림은 독수리에 대한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을 확 뒤집으면, 전혀 새로운 그림이 된다.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우리의 영원한 왕 되시며 구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이 된다(그림 3(b)).

뒤집지 않으면, 독수리 그림을 백날을 뚫어지게 보아도, 이 독수리 그림에서 예수님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뒤집으면, 예수님이 보이는 대박이 터진다. 그렇다! 뒤집으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통상적인 관념, 모든 사람들이 당연한 듯이 수용하고 살아가는 기존의 틀을 뒤집으면, 그러면 미지의 또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기존의 관습이라는 틀에 묶이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시각, 그리고 새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그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하면, 비로소 그 때에 이제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대박이 터진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머무는데,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문다. 아니 무두장이의 집이라니! 왜 하필이면 무두장이의 집이란 말인가! 모든 사람이 가까이 하기를 절대적으로 꺼리는 사람의 집,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집, 염병이라도 퍼트리는 자처럼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당하며 사는 사람의 집, 행여 그 사람 또는 그 사람의 물건이 자신에게 닿을까봐 문둥병자처럼 그렇게 취급을 당하며 사는 사람의 집, 그래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왕따 당해서, 멀리 떨어져서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의 집. 그 집이 바로 무두장이 시몬의 집이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가 그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여러 날을 머물렀다! 

무두장이 시몬이 그 대단한 사도 베드로에게 행여 자신의 집에 머물라고 청하였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어떻게 무두장이인 시몬이, 감히 사도 베드로에게 그런 요청을 했겠는가! 사도 베드로 자신이 스스로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지 않은 이상, 어떻게 무두장이의 집에 사도 베드로가 머무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사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훌륭한 집으로 사도 베드로를 모시려고 애를 썼겠는가!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그 많은 간청들을 뒤로하고, 결국 그 누구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무두장이의 집에, 그것도 여러 날 머물렀다

사도 베드로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통상적인 관념, 모든 사람들이 수용하고 살아가는 기존의 틀, 그것들을 완전히 뒤집는 행동을 과감히 단행했다. 무엇이 베드로로 하여금 거꾸로 볼 수 있게 하고 거꾸로 행할 수 있게 하였는가? 결국은 복음이다! 베드로는 복음 안에 들어있는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경험하였다. 복음 안에 들어있는 은혜를 경험한 이후로는, 베드로는 은혜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았다. 그러자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는 세상을 뒤집어 볼 수 있었고, 그래서 그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뒤집어 행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거꾸로 보고 거꾸로 행동할 때 참 묘한 일이 일어난다. 그 뒤집어진 생각과 뒤집어진 행동이,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충격을 주고, 그 다음에는 감동을 주고, 그 다음에는 도전을 주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사람들과 세상을 변화시킨다. 뒤집어 보고 뒤집어 행하면 바로 이러한 선한 능력의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 또한 베드로처럼 그렇게 뒤집어 보고, 뒤집어 행함으로, 세상에 감동과 도전의 파장을 일으키는 선한 능력의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충격과 감동과 도전과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의 삶 말이다. 특별히 코로나바이러스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지금은 이와 같은 선한 능력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선한 능력을 얻기 위하여 베드로는 과연 무슨 특별한 훈련을 받았을까? 무슨 특별한 과정을 밟았을까? 무슨 특별한 비법을 전수받았을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갈릴리 촌뜨기 어부였던 베드로가 그 어떤 훈련, 그 어떤 과정, 그 어떤 비법을 전수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그와 같은 선한 능력자로 만들었는가? 결국은 복음이다. 베드로는 복음이 빚어낸 걸작품이다. 베드로는 그의 인생에서 참으로 귀한 한 분을 제대로 깊이 만났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그가 나눌 수 있는 그의 이야기의 전부이다. 그런데 그 분과의 깊은 만남이 촌뜨기 어부 베드로를 뒤집어 보고 뒤집어 행하는 능력자로 변화시켰다. 결국 복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해답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우리는 지금 너무도 암울한 때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위기 가운데 쓰러지지 않고 헤쳐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결국 복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해답이다. 이제 구체적으로, 우리 또한 베드로처럼 복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더욱 들어가야 한다. 그분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서, 그분과 더욱 하나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도 베드로처럼 세상을 자연스럽게 거꾸로 보게 되고 거꾸로 행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의 위기를 함께 넉넉히 통과하게 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sunniechung@yahoo.com

02.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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