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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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목사 | (로마한인교회)

아내와 함께 비토리아(Vittoria) 시장에 갔다. 비토리아 시장은 영화로도 소개된 로마의 중앙역인 테르미니(Termini) 근처에 있다. 시장은 아침 일찍부터 열고 오후 1시경 조금 넘어 문을 닫는다. 대체적으로 이곳은 가격이 싸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데, 아무래도 힘든 노동을 필요로 하기에 이태리 사람들이 하나둘 부지런한 아시아인들에게 넘겨주어 지금은 대부분 이주 노동자들이 맡고 있다. 그 중에는 한국말을 잘하는 동남아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참으로 우연히 생선을 파는 노점 한편에 그물로 싸여있는 우리의 바다 게와 민물 게를 만나게 되었다. 그 반가움이란 외국에서 친지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사실 로마는 웬만한 것은 다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보던 게만큼은 이제껏 볼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은 예부터 기독교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구약에서 금하는 게를 먹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생각을 뒷받침하게 하는 경험이 있다. 우리가 빌려 썼던 스코틀랜드장로교회의 총회의 배려도 80년대에 스코틀랜드를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아오나 섬에 자리한 기도원에 한 주간 동안 참석했다. 그런데 낮에는 시간이 있어서 작은 섬 주변을 혼자서 돌아다니다가 근처 바닷가에 나가보았다. 그런데 바다에는 우리나라에서 귀하게 여기는 미역들이 흐드러져 있었다. 이 사람들은 미역을 먹지 않으니 미역들이 맘껏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호기심이 일어 바짓가랑이를 걷어 부치고 바다에 들어갔다. 그리 깊지 않은 곳이었기에.

어렸을 때 냇가에서 맨손으로 붕어를 잡았던 기억이 있기에 울창하게 뻗어있는 미역 사이를 두 손으로 더듬었더니 뭔가 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것을 잡아 꺼냈더니 손바닥만 한 게가 아닌가! 누르스름한 게로, 등짝은 넓적한데 발은 균형이 맞지 않게 작아 굼뜨게 보이는 게였다. 그런데 바다 수초 사이로 게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기도원 부엌에 가서 양동이를 빌려와 열심히 잡았더니 반 정도가 찼다. 그것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주방으로 가서 쪄달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먹지도 않았고 나 역시 먹어보니 맛도 없어 그냥 버리고 말았던 경험이다.

그런데 이번에 본 게는 한국 게와 똑같았다. 파는 사람에게 어디서 잡은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리스 앞바다에서 잡는다고 한다. 꽃게는 모두 살아있었다. 더더구나 민물게 역시 살아있었고.... 한국에서도 드믄 참게가 로마에 있다니, 아마도 전에는 로마사람들이 먹지 않으니 잡지 않았는데 요즈음에는 아시아 사람들이 많다보니 이런 게도 잡아 파는가 보다. 어릴 때 논에서 보았던 게가 신기하기만 했다.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은 쉽게 친해지는 도구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는 즉시 나이와 출생지 또는 다닌 학교를 묻는다. 그 중에 하나만 맞아도 십년지기처럼 말을 놓게 되고.... 이게 우리의 문화다. 이런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이라 그런지 등이 둥그스름하고 앞발에 털이 있는 참게는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마치도 수십 년 만에 고향친구를 로마의 시장에서 만난 것 같다.

인연이라, 삼십년 만에 만난 인연이리라. 사랑스런 표정으로 참게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 안에서 맺어진 인연은 얼마나 질기고 값진 영원한 인연인가! 이 인연을 소중하게 키워가야겠다는 생각이 분수처럼 저 깊은 마음 밑자락에서 솟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