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눈의 선교사

파란 눈의 선교사

엄규서 목사 (월셔크리스천교회)

마켓에서 만난 어느 분과 인연이 되어 이웃삼고 살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 권사님과도 서로 친분이 있던 터이라 서로 교제가 한결 편안하였습니다. 어느 듯 아내와 권사님은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전도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났지만 그의 심경엔 아무런 동요나 변화도 없었습니다. 권사님은 실망하시며 권유를 포기하셨지만 포기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아내는 틈틈이 정성을 쏟아 붓곤 하였습니다. 그 분 곁에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워낙 대접하기를 즐겨할 뿐 아니라 좋은 것이 있으면 이웃과 아낌없이 나누고 어려운 일을 부탁받으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줍니다. 그래서 주변에 계신 모든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분이 신앙만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모두가 안타까워하곤 합니다.

그 분이 처음 교회를 접한 것은 어릴 때 농촌마을에 있는 작은 예배당에 놀러갔을 때였다고 합니다. 친구들 손에 이끌리어 간 작은 예배당 안에는 키가 장대하게 크고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선교사가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멀리서 바라 볼뿐 차마 가까이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올갠 반주를 하시면서 “예수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찬송을 하시는 선교사님을 차마 교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창문 밖에서 흘끔 흘끔 바라보면 선교사님은 더욱 큰 목소리로 찬송을 하셨다고 합니다. 수줍은 아이들이 밖에 있는 것을 눈치 채시고 찬송을 아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크게 부르셨을 것이라고 회상하며 말했습니다.

어느 날 선교사께서 잣을 따기 위해 나무에 오르시다가 떨어졌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잣나무에 올라 잣을 따다가 몰래몰래 선교사님 부엌 부뚜막 위에 올려놓고 도망치듯 나왔다고 합니다. 다음날 그분은 선교사님이 그 잣을 드셨는지 궁금해서 살금살금 부엌으로 다가갔더니 부뚜막 위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이 차려져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주치면 행여 도망가서 다시는 안 올까봐 밥을 먹을 동안 기척도 하지 않으시고 잣에 대한 고마움을 그렇게 갚으셨다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가끔 선교사님의 부뚜막에는 밥상이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선교사님은 텃밭에 농사를 지으셨는데 거둬드린 농산물을 마을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답니다. 늘 멀리서 다정하게 바라보시던 선교사님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얼마다 한국어에 능통하신지 원래 백인들도 언어가 같은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 분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 교회는 다정한 아버지 같은 선교사님의 사랑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만난 교인들은 그에게 어떤 감동도 주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오래전 칼럼에 잠깐 말씀드린 기억이 납니다. 주일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햄버거 가게에 갔었다고 합니다. 햄버거를 시켜 먹으려 하니 한 신사가 그분에게 다가와 교회 다닐 것을 권유하며 다정하게 대하더라는 것입니다. 잠시 후 홈리스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구걸을 하자 “재수 없어 저리 꺼져!”라고 하며 냉정하게 박대하더니 식사를 마치고는 옆에 있는 교회로 유유히 들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날 아침 햄버거 가게에서 겪었던 비정한 크리스천의 모습을 통해 교회로 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었노라고 고백합니다.

“한국 교회는 구원 받을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한국 유수대학 정치학 교수께서 비판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시평을 통해 말하기를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지금 아픈 곳이며, 한 곳이 아프면 그곳을 치료하기 전까지 온몸이 아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파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병든 사회요, 무너진 공동체라 말하면서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아파하는 자와 함께 아파해야 하는 까닭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특별히 체제적,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생겨난 아픈 사람들은 마땅히 온 사회가 달려들어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정신의 아픔을 치료해줄 영적 치료자와 몸의 아픈 곳을 치료할 의사가 공동체의 아픈 곳을 치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영적인 치료를 맡아 감당해야 할 교회가 물질 중심적으로 향해 있는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구원과 상생의 길을 가는 교회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린 시절 그 분을 사랑으로 감싸주던 파란 눈의 선교사가 젊음을 희생하며 농촌에서 자신이 키운 곡식을 나누어가며 복음을 전하던 것 같이 오늘도 무너진 공동체, 아파하는 사회를 위해 따뜻한 사랑을 전해줄 수 있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