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쑤시개

이쑤시개

엄규서 목사 (월셔크리스천교회)

30년도 훨씬 넘은 일이지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선배 목사님이 계십니다. 선배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정읍(지금은 정주시)에서 개척을 할 때였습니다. 개척 초기에 든든한 기업체에서 매월 도움을 받기로 하고 개척을 시작했었습니다. 그런데 개척을 한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번째 달이 지났지만 기업체에서 약속한 도움이 오지 않았습니다. 몇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답답한 나머지 기업체를 찾아 경기도에 있는 공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공장은 문이 닫혀있고 회사는 부도가 나서 사장님은 다른 회사 직원으로 일하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힘이 쭉 빠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정읍역 앞에 있는 상가를 얻어 개척교회를 하고 있었는데 세를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궁리 끝에 사택과 교회 보증금을 빼서 정읍시 변방에 철거민들이 사는 동네에 집을 얻었습니다. 집은 이태리식 건축구조로 이층 다락방이 있고 앞마당이 있어 이층 다락방에는 기도실을 꾸미고 앞마당에는 비닐하우스를 치고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 온 젊은 전도사 내외가 이사 와서 천막을 치고 개척을 한다고 하니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교인이라곤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학생들 약간의 청년들이 전부였습니다. 힘들게 교회를 섬기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오셨습니다. 주일예배 후 목포에서 목회를 하시는 최요한 목사님을 만나러가자고 하셨습니다. 소풍가는 마음으로 우리 내외와 어린 아들과 함께 어머니를 따라 목포로 내려갔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이미 꿈으로 저희가족이 올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지난밤 꿈에 큰 잉어 3마리가 내게로 왔어요. 그래서 귀한 손님이 오실 것을 알고 중요한 약속을 모두 뒤로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하시면서 저희를 인근 식당으로 인도했습니다. 반찬이 30여 종류가 넘는 한정식 식당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진미가 가득한 밥상을 받아보았습니다. 식사 후 목사님께서는 저희 내외를 교회 기도실로 안내했습니다. 기도실은 교회 강단 아래 지하에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각 교회마다 기도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특히 목사님 교회는 1년 내내 끝이지 않고 24시간 기도 당번들이 기도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내외도 그곳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성령의 뜨거운 진동이 개척으로 힘을 소진한 우리 내외에게 강하게 역사함을 느꼈습니다.

기도 후 목사님께서는 우리를 사택으로 부르시더니 분홍색 꽃방석에 나란히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문갑서랍에서 박카스를 꺼내어 한 병씩 주었습니다. 그리고 안수기도를 해주시고는 다시 문갑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내어주셨습니다. 문갑 안에는 여러 개의 흰 봉투가 싸여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목사님께서는 흰 봉투에 각각 3만원씩을 넣어 어려운 교역자가 오면 밥 사주시고, 기도해주시고, 격려하며, 용기를 주시며 흰 봉투 한 개씩을 주어 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엄 전도사 이제 가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차를 타고 귀가한 우리 내외의 발걸음이 머무른 곳은 3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있던 환자의 가정이었습니다. 아들 형제들이 교회를 처음 출석하기 시작한 가정이었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기도하여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 후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목사님을 찾아가 상의도 드리고 함께 기도하면서 목회의 큰 힘을 얻곤 하였습니다. 가난한 후배, 선교사들을 두루 살펴주시며 자상하게 때로는 아버지처럼 사랑해주시던 목사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분은 어느새 목회의 멘토가 되어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임종을 앞둔 어느 날 저를 부르셨습니다. “엄 목사! 내가 이제 하나님 곁으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니 참으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이 너무 많아..... 그래서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내 나름대로 남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용서도 빌고 인생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야.... 그런데 한 가지 잘 못이 생각났지 뭔가.... 내가 걸어갈 수 있으면 가서 변상을 해줘야 하는데... 아이들을 시키자니 노망났다고 할 것 같고.. 엄 목사가 나의 부탁을 들어줬으면 하는데...” 목사님의 말씀은 몇 년 전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을 다녀오셨는데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 칸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고 식사 후 식탁위에 있는 이쑤시개를 한 개 뽑아서 쓰시고 몇 개를 주머니에 넣고 왔으니 이것은 절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식사 후 한 개는 당연히 써도 되지만 몇 개를 주머니에 넣어왔으니 변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대신 가서 사죄를 하고 상응하는 변상을 하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역전으로 달려갔습니다. 역장님을 만나 사정을 말씀드리고 목사님께서 주신 것을 드렸습니다. 그 사연에 감동한 역장님은 문밖까지 쫓아나와 고개를 숙이며 이제까지 이런 분은 본 일이 없다며 인사를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늘 겸손하셨던 목사님... 모든 목회자, 선교사들을 귀하게 섬기시던 목사님... 따스한 사랑으로 모두를 감싸 주시던 목사님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서 하찮은 이쑤시개를 통해 참된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여주신 선배 목사님을 더욱 본받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