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으로...

빛과 소금으로...

엄규서 목사 (월셔크리스천교회)

오랜만에 고국을 찾으니 많은 것이 변해 있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터라 불과 4년만인데도 가는 곳마다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를 다시 되새겨 보면서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지하철 노선을 열심히 확인하며 다녔습니다. 지하철 안에는 출근하는 직장인들, 등교하는 학생들, 노인들 등 각개각층의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예전과는 달랐습니다.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의 90%가 모두 전화기를 가지고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통화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책을 보는 사람은 단지 0.01%에 지나기 않았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며칠 전 읽은 신문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자기주도 인생은 어디서?’라는 제목의 사설입니다. 김 모 기자가 쓴 일러스트의 내용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우유의 이름을 가지고 현세대의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빗대어 표현한 내용입니다. 그냥 웃고만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라 말씀드립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부모의 입장에서 태어난 자신의 아이가 남들보다 일찍 뒤집는다던지, 옹알이를 빨리 시작한다던지 하면 천재처럼 여겨져서 시중에 파는 ‘아인슈타인 우유’를 먹인답니다. 그러다가 천재급의 두뇌는 아니라는 자각을 하면서 한 단계 낮춰 ‘파스퇴를 우유’로 바꿔 먹인답니다. 하지만 그것도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학교인 서울대학 정도는 가겠지 라는 기대로 ‘서울우유’로 바꿔 먹인답니다.

우유를 먹고 자란 아이가 고교를 입학하여 첫 시험을 치르면 서울우유마저도 턱도 없다는 진실을 알게 되고 이번에는 ‘연세우유’로 갈아 본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고3수험생이 되어 모의수능시험을 두어 번 치른 후에는 다시 다른 00우유로 아니면 최후에는 ‘저지방 우유’를 선택한답니다. ‘저지방 우유’란 저 멀리 지방에 있는 대학이란 뜻이라 합니다. 대학을 향한 부모의 마음을 그린 유머랍니다.

고국은 아직도 대학진학에 온갖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이런 씁쓸한 유머도 생긴 것입니다. 아이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는 부모도 안쓰럽지만 학교로 학원으로 다니며 삶에 대한 여유도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아파옵니다.

자기주도의 인생이 없는 아이들 삶을 많은 시간을 학교에 학원에 맡기는 생활입니다. 아이들의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긴 그들은 전철에 몸을 맡기고 학교로 가는 길은 지친 모습들입니다. 잠시나마 등굣길에 마음을 핸드폰에 맡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한 없이 슬퍼집니다. 밝고, 건강하게 활발한 모습을 기대했던 저의 잘못인지요? 어린 시절 생활계획표를 짜던 기억이 납니다. 커다란 둥근 원을 그리고 가운데 꼭지점을 찍은 후 12조각정도로 나누어 아침에 일어나 칫솔질, 식사 등을 구분하고 학교가기, 방과 후 숙제하기 그분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복습하기, 예습하기 등을 써넣은 후 잊지 않고 휴식시간을 중간 중간 넣어서 그렸습니다. 밤 9시에는 취침시간 그 다음은 꿈나라 순으로.... 그래도 스스로 학습을 할 줄 아는 과거와는 달리 학습계획표를 짜주는 가정방문형업체에 ‘자기주도 학습지도사’라는 자격증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니 제가 본 지하철의 아이들은 마치 인형같이 아무 말하지 않고 그저 손끝에 핸드폰을 들고 기계처럼 손을 움직이고 있던 모습은 그들에게 있어서 당연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자기주도가 없는 사람들의 생은 불행합니다. 탈무드에 보면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국의 아이들이 밝은 모습으로 자신들의 생을 즐겁고 보람되게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이렇게 지하철에서 만난 우리의 젊은이들은 마치 ‘좀비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실존하지 않은 사람들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옆에, 앞에, 뒤에 누가 서 있든지 상관하지 않았으며 관심조차 없는 싸늘함이 흐르는 전철 객실 안의 모습 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노인들은 추운 겨울 날씨만큼 쓸쓸해보였습니다. 중년들은 평생 모은 돈과 융자로 구입한 주택이 부동산 하락으로 인해 경매로 넘겨야 하는 안타까움에 괴로워하는 모습입니다. 젊은이들은 지쳐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전쟁의 위협과 경제 침체의 외부적 요인들도 우울하게 합니다. 80-90년대 활기차던 그 시절의 나라에 대한 열정이 그립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귀국길이 고국에 대한 애절한 마음으로 가슴이 저며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