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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한인기독언론인협회 독후감 공모전 / 우수상

책명 :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

장소영 사모

(쉘터락처치, shelter rock church)

 

 

 

“어디, 미국에 경상도 스테이트(state)가 있었나?” 저자인 스카지로 목사님 부부의 지나온 이야기를 읽는 동안 우습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쩜 우리 부부와 이렇게 닮을 수가 있는 건지. 우리도 하나님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20대를 보냈고, 선교단체에서 만났다. 결혼 후 스카지로 목사님처럼 사역에 모든 힘을 쏟아 붓는 일중독 남편 뒤에서 나는 스카지로 사모님처럼 싱글맘인양 세 아이를 키웠다. 사역의 성장과 부부 사이의 거리는 반비례했다. 어디 일중독 사역자와 독박육아 사모가 우리뿐이겠는가. 농담이 오갈만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사역지가 크건 작건, 공동체가 깨어졌든 굳건하든, 그 어느 곳에라도 나는 자신 있게 남편 목사를 추천할 수 있다. 문제해결사에 구령의 열정으로 가득한 남편은 어디서든 맡은바 사역을 잘 감당할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런데 저는 그 교회 안 갈 거에요.”

“여보결혼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어요당신이 섬기는 그 교회도 이제 안 나갈래요”(p.29). 스카지로 사모님의 확고한 선언을 읽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빨리 뛰기 시작했다. 남 일 같지 않아서였을까. 성장 중이던 교회는 나누어지고 동시에 결혼생활의 위기가 닥쳤을 때 두 분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우리 부부에게도 희망이 있을까. 도톰한 책을 후딱 읽고 얼른 해답을 쥐고 싶었다. 국가번호마저도 82인 한국 사람의 빨리빨리 정신은 책 읽기도 초고속 완독이 목표가 되곤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부탁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며, 천천히 읽고, 읽는 중에 성령께서 어떤 깨달음을 주신다면 거기서 멈추어 깊이 들어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적어 보라고 말이다(p.10). 마침 지조이 선교사님이 인도하시는 독서영성훈련을 막 마친 뒤였다. 매일 조금씩 정해진 분량을 읽고 독서 일기를 쓰는 훈련이었다. 따로 공책을 마련하여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을 위한 독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저자는 열정으로 포장되어 문제를 문제로 느끼지 못하는 둔감함부터 깨우쳐 주었다. 각 장마다 연결된 간단한 그림과 구체적으로 내면을 점검할 수 있는 검진목록들이 도움이 되었다. 건강하지 못한 표면상의 증상으로부터 내면에 뿌리박은 잘못된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양파껍질처럼 하나씩 하나씩 벗겨져 갔다. 동반되는 고통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를 ‘직면’하는 대신 다른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문제에서 빗겨간다. 심연에 깔린 통증들이 정확하게 짚어 내려져 가는데도 힐난 받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원거리에서 원리를 일러주는 성경 말씀과 근거리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저자의 경험담이 따뜻하고 조화롭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인 것 같다. 

중세에는 육에 속한 것을 부정하게 여겨 정서와 육체를 돌보기보다 고행을 하곤 했다고 들었다. 유교에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정서 속에도 이원론의 뿌리가 깊다. 군자가 행할 큰일과 그렇지 않을 일, 아군이 아니면 적군이란 식이다. 사회적 위치에 따른 불통도 여전해 보인다. 여기에 종교적인 의미까지 더해져 가면을 쓰고 세상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진 채 힘을 소진(burn out)하고 마는 그리스도인이 허다하다. 속사람은 피폐해지고 관계가 깨어지는 일이 반복되는 데도 멈출 수가 없다. 영성을 종교적인 활동으로만 인식하지 말라는 저자의 말은 주변, 특히 정서를 돌아보기 힘든 사역자 가족들을 자주 접하는 내게 묵직하게 다가왔다.

 

 

인생의 혁명을 시작하라

 

 

그러다가 이 책을 남편에게 권하고 싶어진 결정적인 대목을 만났다. 바로 원가족을 돌아보아야하는 내용이었다. 경험상 아내들보다 남편들이 자라온 가정과 부모님에 관련된 이야기에 더 민감하고 불편해 하는 것 같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치부를 드러내어 수치심을 주거나 부모님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닌데 시댁과 관련된 이야기는 우리 부부에게 일종의 금기어였다. 

이탈리아 이민가정에서 자란 스카지로 목사님은 원가정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충분히 이해한다고 먼저 다독인다. 본인의 원가족 가계도 공개를 시작으로 원가정에서 형성된 굳은 뿌리가 하나님 안에서 건강한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얼마나 큰 방해가 되는지 차분히 설명해준다. 아내인 내가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던 금지구역이 열릴 것만 같았다. 남편에게 서둘러 읽히고 교정해주고 싶어졌다. 오로지 남편에게 적용시킬 생각으로만 가득했는데, 저녁이 되어 독서일기를 쓰다가 이상하게 멈추어졌다. 

갑자기 나의 어린 시절, 동네 교회가 떠올랐다. 펜을 내려놓고 기도했다. 하나님, 제게 깨우쳐주실 것이 있나요? 짧은 순간, 교회에서 만났던 여러 어른들의 얼굴과 여러 아이들의 얼굴이 스쳐 갔다. 남편의 쓴 뿌리가 원가정에 있다면, 나의 쓴 뿌리는 교회에 있었다. 

부모님은 교회를 하나님의 큰 가족으로 여기고 시간과 정성을 쏟으셨다. 교회의 어른들은 내가 만족을 드려야 할 또 다른 부모님들이었고, 교회의 아이들은 내가 돌보아야할 수많은 동생들이었다. 나 자신의 정서와 필요를 죽이고 과도한 희생을 하게 된 시작점이 된 곳. 끝없는 타인의 요구에 지치고, 편견이 쌓이고, 재능을 발휘하기보다 입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투명인간이 되길 바래었다. 

목회자인 남편과의 결혼은 탈출이 아니라 연장선이 되었다. 남편만 문제와 직면하면 다 풀릴 것 같았는데 이제 보니 내게도 직면하지 못했던 과거로부터의 문제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어린 시절의 교회 식구들을 내 속에 넣고 같이 살고 있었으니, 남편의 바람은 괜한 요구로 느껴지고 무덤덤한 반응에는 인정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혼자 자괴감을 느껴온 것이다. 한없이 좋으신 친정 부모님께 내놓지 못했던 감정들, 성장기마다 필요했던 욕구들이 고스란히 속에서 삭여진 채 남았고 남편에게 잘못 분출될 때도 많았다. 

남편은 부모를 떠나오지 못했고 나는 교회를 떠나오지 못한 채 살아왔구나. 미안함이 밀려들었다. 어느새 일기에는 나의 과거와 직면한 내용이 가득해졌다. 정리가 되면 일기를 들고 골방으로 들어가 주안에서 비워내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 비워내기만 했으면 허무했을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채워갈 수 있는 방법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카지로 목사님 부부가 깨어짐을 경험한 후에 수도원을 돌며 얻은 경험과 고전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종교적인 의식이나 또 다른 짐이 아니었다. 선조들이 남긴 건강한 규칙들이었다. 

20여 년 전 처음 미국으로 유학을 왔을 때 남편과 나의 꿈은 교회성장에 있었다. 그러나 첫해에 성장에만 중점을 둔 이민교회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고 겪으며 큰 아픔을 겪었다. 건강한 분립이 아닌 분열에 의한 교회개척은 성도들에게만 상흔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담임목회자와 부교역자 간에 끝없이 반복되는 불신의 고리도 그렇게 형성된다. 교회를 위해 성도를 위해 열심히 하면 할수록 개척하려고 그러느냐 의심받는 것도 싫었다. 천지개벽할 일이 아니고서는 교회개척은 하지 말자고 다짐을 했다. 대신 건강한 한 사람을 세우는 일, 건강한 교회를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역을 하자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방법을 몰랐다.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 시리즈는 현재에 대한 정확한 점검과 나아갈 방향을 가리키는 훌륭한 도우미가 되어 주었다. 

 

스카지로 목사님은 이탈해간 교역자와 이별선언을 하는 아내를 통해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혁신적인 깨달음을 얻었던 과학자처럼 나 중심으로 돌았던 나의 인생이 주님을 중심으로 우리가 함께 돌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여전히 인생의 주인이 ‘나 자신’인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천천히 깊이 읽으며 주님의 만지심을 경험하길 소망한다.

01.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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