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명 웹툰 만화가 오다 에이치로가 쓴 <원피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일본만화다. 그의 작품에는 많은 명장면들이 있는데 가장 손꼽히는 장면은 아픈 사람을 치료해야 한다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충실한 닥터 히루루크가 자문자답하는 말이다. “사람은 언제 죽는가? 총알이 심장을 뚫었을 때? 천만에.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천만에. 맹독 버섯 수프를 먹었을 때? 천만에. 사람이 죽을 때는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다!” 사람은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 정말 죽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이순신 장군은 오래전에 죽었지만, 한국인들의 마음에 잊혀지지 않았으니 진짜 죽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 된다. 또한, 이 말을 뒤집으면, 아무리 살아 있는 사람이라 해도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사라졌거나 희미해졌다면 그는 죽은 자나 마찬가지라는 뜻이 된다. 브라질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백년의 고독>에도 이런 유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때 진정으로 죽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무서운 일은 잊혀지는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시인은 잊혀진다는 것은 서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인간은 원래 망각의 동물인데.
인간은 아랍어로는 <나스>라 한다. 그 어원이 <나시야>라는 동사인데 이는 잊어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잊어버리기 때문에 인간이라 할 수도 있다. 헤르만 에빙하우스라는 독일의 심리학자가 망각곡선이라는 것을 개발했는데, 그에 의하면 인간은 20분만 지나면 기억의 40%을 잊고, 1시간 후면 50%, 1일 후면 70%, 6일 후면 80%, 그리고 한 달이 지나면 90%를 잊어버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매일 하는 운동 가방을 챙기는 데에도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을 빠뜨리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인간은 쉽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인간이다!
요셉은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고는 이제 드디어 감옥 생활을 면하겠다는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창40:23). 그래서 더 깊은 나락으로 빠졌을 것이다. 창세기에서 요셉의 이야기는 그 사건 이후, 만 2년이 지난 후 바로가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로 연결될 뿐이다. 하지만 요셉의 노예 생활과 죄수 생활이 13년 동안 이어진 것과 그 마지막 2년 동안 술 맡은 관원장에 의해 잊혀진 상황을 고려해 보면 하나님과 동행해서 형통한 요셉이라 해도 혹독한 시련의 시간이었을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된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분명하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사람은 잊어버릴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만 2년 후에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리고 그 꿈을 인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요셉을 결코 잊지 않으셨다. 오히려 총리가 될 것을 준비하게 하셨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어머니가 어찌 자식을 잊겠는가? 그런데 혹시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잊는 일이 있다 해도 하나님은 결코, 결코 사랑하시는 자녀를 잊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여 깊은 절망에 빠지는 순간이라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인내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인내하지 말라. 쓰디쓴 마음으로 견디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지 못한다. 오히려 명랑하게 버티라. 명랑하게 버티는 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밝은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고, 힘들지만 주눅 들지 않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다 잘 될 거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들고 웃음 띤 표정을 짓는 순간 승리는 이미 내 것이 된다.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어찌 아니 기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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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