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의 선교적 역할과 중요성: 시대를 넘어서 (1)

조용중 선교사 (KWMC 사무총장, Ph.D)

“문화 예술 선교 서밋” (Arts in Mission Summit) 이 일본의 닛꼬지역의 한 기도원에서 3월2일부터 6일까지 열렸다. 참가자들은 지역교회를 대표한 목회자, 선교계를 대표한 선교지도자, 현장의 예술가들과 예술 공연들을 기획하는 기획자들 4개 분야의 40명이 모였다. 나이는 2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참여하였고, 예술인들의 활동과 상황을 듣고, 예술과 선교의 관계를 고민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에 대해 발표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기회였다. 자신들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며 감격하는 20대의 젊은 예술인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은 필자에게도 큰 축복이었다.  

한국 선교계에서 문화 예술인들을 정식으로 선교의 주체적 동역자로 받아들인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18 KWMA 세계선교대회 및 제7차 선교전략회의”에서 문화예술 영역의 전략모임이 진행되었다. 오랜동안 문화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예배를 돕는 기능인, 선교를 돕는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정도로 인정을 받아왔다. 처음으로 선교대회에서 중요한 독립적 영역으로 인정받아 문화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선교사들과 단체들의 명단을 발행하고 어떤 사역들을 하고 있는지 서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2022년에는 KWMC가 주최한 제9차 한인세계선교대회에서 문화 예술 선교 트랙이 준비되었고, 미주에서 사역하는 예술인들이 함께 하는 기회가 되었다. 2024년 제10차 한인세계선교대회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면서 예술인들의 선교적 사명 감당을 위한 제도적인 발전 필요에 대해 공감하고 준비된 모임이 2025년 닛꼬에서 열린 문화 예술 선교 서밋이다. 

문화와 예술은 기독교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이 두 영역이 선교에서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해 왔다. 오늘날 예술과 문화는 더 이상 단순한 감상이나 창작의 차원을 넘어,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세상의 변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도구로 인식되고 있지만 교회의 역사에서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존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칼빈의 예술에 대한 견해는 성경, 예배에서의 단순성, 그리고 중세 가톨릭 관행에 대한 거부라는 종교개혁의 강조점을 반영하고 있다. 칼빈은 교회에서 예술의 사용에 대해 일반적으로 신중한 입장을 취했으며, 특히 예배의 환경에서 그렇다. 그는 예배가 시각적 또는 장식적 요소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성경 중심의 강조는 칼빈이 교회에서 이미지, 조각상 및 기타 형태의 종교적 예술을 거부한 이유이다. 예배의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그것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예술적 표현이 아니었다. 

칼빈은 종교적 예술을 우상 숭배의 형태로 보고 이를 교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지나 상징이 우상 숭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이는 종교개혁자들이 가톨릭의 성상 숭배 관행을 비판한 이유와 일치한다. 칼빈에게 있어 두 번째 계명(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은 교회에서 종교적 예술을 거부하는 중요한 근거였다. 

칼빈은 교회에서의 종교적 예술을 거부했지만, 예술을 전반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예술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을 반영하는 수단으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칼빈은 모든 창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한다고 믿었으며, 예술도 인간의 창조적 활동으로서 그 안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예술이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숭배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것이다. 

칼빈은 예술을 인간 문화의 일부로 보았다. 그는 예술이 인간의 문화적 명령의 일환으로서, 인간이 창조세계를 돌보는 일을 포함한다고 믿었다. 예술은 하나님의 통치를 반영하는 창조적 활동으로서, 인간 사회의 번영과 문화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지만 예술이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숭배를 가로막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츠빙글리는 칼빈과 유사하게 예술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예배에서 성상과 이미지를 제거하려 했으며, 교회의 예술적 장식이 신앙의 순수함을 방해한다고 믿었다. 츠빙글리는 교회 예배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진적 개혁자들인 아나뱁티스트들은 교회에서 예술과 이미지 사용을 더욱 극단적으로 거부했다. 그들은 예술이 신앙의 순수성을 해친다고 보고, 예배에서 예술적 표현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초기 교회의 단순함을 추구하며, 모든 형태의 예술적 표현이 신앙에 방해가 된다고 믿었다. 

마르틴 루터는 칼빈보다 예술에 대해 더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루터는 음악을 예배의 중요한 요소로 인정하며, 특히 회중이 함께 부르는 찬송가를 강조했다. 루터는 음악을 통해 교리 교육과 회중의 신앙을 고양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와 같은 찬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러나 루터도 종교적 이미지와 예술을 예배에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했으며, 이러한 예술이 예배의 중심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종교개혁자들의 예술에 대한 견해는 예배의 순수함과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자는 의도로 형성되었다. 칼빈의 예술에 대한 엄격한 거부는 우상 숭배를 방지하고 성경 중심의 예배를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루터는 음악과 예술이 교회 예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종교적 이미지를 예배에서 사용하는 것에는 신중함을 기했다. 츠빙글리와 칼빈은 예술을 예배에서 제거하려 했으며, 예술의 사용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예술이 전혀 불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예술은 문화적 명령의 일환으로 인간 사회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술은 인간의 창조적 활동으로서 하나님을 반영하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교회와 사회에서 유익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예술이 예배에서 그 자체로 숭배의 대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예술에 대한 접근이 비교적 제한적이었다. 초대 교회는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해 지하에서 비밀스럽게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예술적 표현보다는 신앙의 본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4세기 이후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특히 비잔틴 제국과 중세 교회에서는 예술을 중요한 수단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예술은 성경 이야기와 교리의 시각적 전달을 목표로 했고, 성화와 성상, 제단화 등은 신앙을 표현하고 신자들이 기도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감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8세기, 특히 존 웨슬리와 같은 초기 근대 개신교 운동에서는 예술, 특히 음악과 찬송가가 예배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웨슬리는 많은 찬송가를 작곡하고 작사하며, 음악을 신앙 교육의 중요한 도구로 사용했다. 그는 예배에서의 음악이 신자들의 신앙을 고양시키고, 공동체 안에서 신앙을 표현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웨슬리의 찬송가는 감정적이고 신학적인 깊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신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예배에 참여하는 중요한 방법이 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들어서면서 기독교 예술에 대한 접근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예술과 신학이 더 밀접하게 결합되었고, 예술을 통한 신앙의 표현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예술가들은 성경의 이야기나 신학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제작하면서 신앙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예술을 사용했다. 또한, 교회와 예술이 상호작용하면서 예술이 예배를 풍성하게 하고 신앙을 심화시키는 도구로 인식되었다.

현대 기독교에서는 예술에 대한 시각이 매우 다양해졌다. 프랜시스 쉐퍼는 기독교인 삶에서 예술이 중요한 특별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문화, 특히 예술과 어떻게 교류하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예술을 믿음을 표현하고 세상과 교류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보았다. 쉐퍼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강조하면서, 인간에게 주어진 창조적인 능력도 그 형상의 일부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궁극적인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은 이러한 창조적 능력의 표현이자 하나님의 아름다움, 창조성, 진리를 세상에 드러내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예술은 단순한 개인적인 표현이나 미적 즐거움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고 하나님의 구속적 사역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쉐퍼는 기독교인들이 문화와 적극적으로 교류해야 한다고 믿었다. 예술은 그 문화가 가진 세계관을 반영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예술을 통해 문화를 도전하고 구속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세상과 격리되거나 지나치게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아름다움을 예술을 통해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술은 이 세상의 깨어짐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세상에 보여주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쉐퍼는 예술이 예배의 한 형태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모든 삶, 그 중에서도 예술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예술을 창작하고 그 예술을 감상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했다. 예술은 하나님을 높이는 한 형태로, 창조주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진리 전달의 수단으로서의 예술을 강조하였다. 쉐퍼는 예술이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본질에 대해 깊은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 예술가들은 예술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와 영원한 현실을 표현할 기회를 가진다. 쉐퍼는 기독교인들이 예술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진리와 구속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는 강력한 방법이다.

쉐퍼는 예술이 세상의 깨어짐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움과 희망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예술은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구속의 계획을 보여주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예술은 단지 오락이나 도피의 수단이 아니라, 세상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구속적 역사를 드러내는 중요한 도구이다.

 

<다음호에 계속>

dr.yongcho@gmail.com

03.29.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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