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의 소코트란(Socotran)

60,900명의 소코트란족은 소코트라섬에 거주하는데, 이 소코트라섬은 아프리카 호른(Horn)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 상어 출몰지에 위치한다. 소코트라라는 이름은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디어)에서 나온 말로 "행복이 사는 섬"이라는 뜻을 지닌다. 소코트라는 다양한 전설에 나왔던 단어다.

소코트라섬의 거주민들은 본토 아랍인들과 다르며 그리스, 포르투칼, 아프리카, 아랍의 혼혈이라고 여겨진다. 그들의 언어는 고대 힘야리트(Himyarite)어의 한 변형이며, 힘야리트어는 이슬람 세계가 되기 전 몇 세기 동안 아라비아에서 사용됐던 언어다.

소코트라섬은 남동부 예멘의 마라(Mahra) 술탄의 오랜 지배를 받았다. 그들의 통치는 1507-1511년 포르투칼 점령에 의해 중단됐다. 1834년 영국이 이 섬을 구입하고자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1880년대 술탄이 술탄의 영지에 대한 영국의 보호를 받아들였다. 1967년 술탄의 영지는 마침내 끝나고 소코트라섬은 예맨의 일부가 됐다.

 

삶의 모습

 

소코트란족에 대한 유용한 정보는 거의 없다. 소코트라섬 방문 허가를 받는 것은 매우 어렵다. 소코트라섬은 오랫동안 "지구의 끝"으로 여겨졌다. 소코트라섬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가 이뤄진 적은 거의 없다.

소코트라는 온화한 기후에 바람이 많은 섬이다. 하지히르(Hajhir)산이 섬의 내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폭이 좁은 연안평야는 북쪽에, 좀 더 넓은 평야는 남쪽에 있다. 소코트라섬에는 하나의 작은 공항만 있으며, 정기운항 비행기는 없다. 우기 동안에는 배로 섬에 접근하는 것은 어렵다.

소코트란족은 어업, 진주 따는 잠수, 작은 규모의 농업에 종사한다. 내륙에서 유목민들이 소와 다른 동물들을 사육하고 약간의 농작물 재배를 시도한다. 섬의 주요 수출품은 "기(ghee, 버터의 종류)", 물고리, 유향이다. 가장 큰 마을인 수도는 하디보(Hadiboh)이며, 섬의 북부연안에 위치한다.

섬에는 수많은 희귀한 식물들이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에게 오랫동안 매혹적인 장소였다. 이 지역의 식물들은 북동부아프리카 고지와 소말리아 평야지역의 식물들과 관계가 있다. 대략 소코트라에 있는 특이 식물들이 216종에 이르며, 그중에 85종은 멸종위기에 있는 것들이다. 많은 식물들이 경제적 혹은 약용으로 가치가 있지만 이것들을 활용할 기회는 거의 없다.

기독교가 매우 일찍 주후 535년에 소코트라섬 사람들에게 소개됐다는 증거가 있다. 이때 네스토리우스 교파 주교 한 분이 이 소코트라섬에 거주했다. 사도 도마의 사역결과로 그곳에 기독교 교회가 있다고 믿어진다.

소코트란족은 1542년 성 프랜시스가 인도로 가는 도중 그들을 방문했을 때까지도 신실한 믿음을 지켰다. 슬프게도 1680년까지 기독교는 사실상 끊어지게 됐다. 이는 아랍인들의 탄압과 섬의 선교지원에 대한 네스토리우스 장로들의 간과로 인한 것이었다.

 

신앙

 

오늘날 소코트란족은 거의 100% 무슬림이다. 어림잡아 50%가 시아파 제이티스(Shi'ite Zaydis) 분파에 속하는데, 이 분파는 그 형식에 있어 매우 광적이고 엄격하다. 제이디스 사람들은 대부분 전사들이고 모든 전쟁을 "지하드(무슬림의 "성전" 또는 이교도에 대항하는 성전)"의 현시라고 인식한다. 그들은 제이드(Zayd)의 이름을 따르는데 제이드는 카스피해 남쪽에 처음 나라를 세우고 864년에 죽었다. 제이디스들은 "수피즘(Sufism, 이슬람의 신비주의적 계파)"의 모든 형태를 거부한다. 소코트란족의 나머지 사람들은 수니파 무슬림(40%)이거나, 이스마엘파 무슬림(9.7%)이다.

 

필요로 하는 것들

 

세계 다른 지역들과 차단돼 있다는 점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이 된다. 섬을 방문하기 위한 허가는 예멘 군대로부터 얻어야 하고, 섬에 있는 하나뿐인 호텔은 군사적 이용을 위해 활용된다.

성경의 일부가 소코트란족 토착어로 있기는 하나 어떤 형태로든 영적 돌파구가 없이는 그 쪽복음들이 분배되거나 사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기도는 이들에게 복음의 문을 여는데 중요하다.

01.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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