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그가 받은 부르심은 고향을 떠나라는 부르심이다. 당시에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이 시대에 고향을 떠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도전이요 모험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어딘가로 이민을 가야 한다고 하면 그곳은 어디인지, 누가 사는지, 길은 어떤지, 음식은 어떤지 자세히 조사한다. 가능하면 미리 답사도 다녀온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가나안에 미리 답사를 다녀온 것도 아니요, 기껏해야 가나안에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 몇 마디 만을 주워 들을 수 있었을 뿐이었으리라. 그럼에도 가 보지 않은 길, 어떤 일이 앞에 나타날지 알 수 없는 길을 아브라함은 믿음을 가지고 걸어갔다. 그러니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아내, 조카와 함께 고향 갈대아인의 땅 우르를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가던 중, 중간 기착지인 하란에 도착했다. 아마 하란이 살기 좋은 도시였던 모양인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하란에 정착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가야 했다. 약속의 땅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데라에게 하란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좋은 곳, 기회의 땅이었을지 몰라도 아브라함에게 하란은 그저 중간 기착지였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결별해 가나안으로 향해 간다.
미국의 프리웨이 중간에 있는 휴게소(resting area)를 처음 갔을 때, 참 많이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역시 휴게소는 한국이야!’ 하고 이야기했던 기억도 있다. 그만큼 미국의 휴게소 시설은 정말 시원찮다. 하지만, 미국의 휴게소건 한국의 휴게소건 공통점이 있다. 휴게소를 목적지로 삼은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휴게소가 좋은들, 아무리 휴게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은 들, 휴게소에 머무는 사람은 없다. 휴게소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에 있는 중간 기착지일 뿐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란이 중간 기착지였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이 땅의 삶은 목적지가 아니라 휴게소와 같은 중간 기착지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천국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 곳 휴게소의 삶을 윤택하고 멋지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휴게소를 아무리 아름답게 꾸민 들, 휴게소는 잠깐 머무는 곳일 뿐이다. 휴게소는 내 자리가 아니다. 목적지인 저 천국에 우리의 자리가 예비되어 있다. 우리들은 이 곳 휴게소에서 더 오래 머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휴게소에 오래 머물러 봤자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만 늦어질 뿐이다.
휴게소에 머물 것인가? 휴게소의 삶을 즐길 것인가? 아니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목적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께로 달려가는 오늘을 살아가자.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0)
wmclakim@gmail.com
05.11.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