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에게는 주일이 한 주의 시작이 아니라 한 주를 마감하는 날처럼 여겨집니다. 설교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한 주가 끝나는 느낌이지만, 마지막 설교 후에 강단을 내려오면 곧바로 다음 주 설교에 대한 부담이 시작됩니다. 주일 아침 8시가 되면 어김없이 강단에 올라가야 하는 목회자의 삶은 아침이면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주일 예배가 끝나고 목양실로 들어올 때면 그 기쁨과 감격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때로 주일 예배 후에 병원이나 가정에 심방을 마치고 돌아가면 몸이 천근만근 같을 때가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옷도 갈아입기 전에 드러눕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 자신에게 조용히 속삭이곤 합니다. 이 순간 어떻게 보내면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게 물어보면 어디선가 갑자기 솟아오르는 힘을 느끼며 옷을 갈아입고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달리면서 사계절의 변화를 보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일의 삶을 두고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삶이란 펼쳐지는 대로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주어진 삶의 소중함을 알고 순간순간 아름답게 그려가야 할 캔버스와 같습니다.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루 24시간, 그 하루를 어떤 그림으로 채워갈 것인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한번 뿐인 나의 인생이라는 캔버스에 어떤 그림으로 채워야 할까요? 좋은 환경을 타고 태어났거나 생각처럼 일이 잘 풀려간다면 화려한 내용으로 채울 수는 있을 것입니다. 때로 아픔과 눈물로 얼룩진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그림 그리기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캔버스 앞에 서야 합니다.
걸어온 인생길을 돌아볼 때 어떤 그림이 가장 의미 있는 그림일까요? 화려한 색깔로 눈에 속히 들어오는 것보다 가만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애틋한 순간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고민과 고난의 흔적이 또렷한 여정이라 해도 하늘이 주시는 기쁨에 평안의 미소를 짓는 그림을 만나면 참 좋겠습니다. 굽이진 길을 만나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 하늘을 향해 묵묵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 자신의 모습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쳐있는 누군가를 붙들고 일으키는 손을 볼 수 있다면 아무리 초라한 캔버스라 해도 얼마나 감격스러울까요? 그리고 내 인생의 캔버스를 바라보시고 한순간이라도 미소를 짓는 주님의 모습이 있다면, 내 작은 삶에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늘이 더욱 푸르듯이, 산천이 푸름으로 물들어가듯이 주님의 사랑에 물든 영혼으로 자신의 인생 캔버스를 소중히, 더욱 소중히 그려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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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