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 로마황제숭배 거부로 박해당해

Q: 로마의 탄생과 로마가 왜 기독교를 핍박하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팔로스 버디스 김 권사

 

A:로마는 현재 이탈리아로서 지중해 중앙에 있는 이탈리아 반도에 있으며 남쪽에는 시실리아 섬이 있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전승이나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인들에게는 트로이 함락과 관련된 에피소드입니다. 40년이 넘는 기간을 로마에서 로마사를 연구한 일본인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의 이야기(1)를 읽어보면 보면 로마 건국의 다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로마를 이해하는데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문학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따르면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서안의 풍요로운 도시인 트로이는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그리스군의 공격을 받아 10년 동안이나 계속된 공방전도 드디어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때가 기원전 13세기 무렵이다. 그런데 해변에 서있는거대한 목마를 발견한 트로이 사람들은 그 목마를 그리스군이 공격을 포기하고 철수하면서 남긴 선물로 오해하고 10년 동안 지켜온 트로이 성안으로 목마를 끌어들이고 말았다. 승리를 눈앞에 두었다고 생각한 트로이 병사들이 깊이 잠든 밤, 목마 속에 숨어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한 사람씩 땅에 내려왔다. 화염과 아비규환에 휩싸인 트로이는 그날 밤에 함락되고 말았다. 왕족도 서민도 가차없이 살해되고 목숨을 건진 자는 노예가 되었다. 이 같은 참극 속에서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사위인 아이네아스만이 일족을 이끌고 탈출에 성공한다. 아이네아스 일행은 몇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불타는 트로이에서 탈줄했다. 여러 섬에서 카르타고를 거쳐 이탈리아 서해안을 북상하여 로마근처의 해안에 이러서야 겨우 끝난다. 이아네아스가 죽은 후에 그와 함께 트로이에서 탈출한  아들 아스카니오스가 왕위를 물러 받았다. 그러나 아스카니오스는 3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뒤 그 땅을 떠나 알바롱가라고 이름지은 새도시를 건설한다. 이것이 뒷날 로마의 모체가 된 도시였다.”

그런데 로마제국은 주후 1세기를 전후해서 약 250년간 기독교를 박해 하였습니다. 교회사를 전공한 김인수 목사의 글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을 보통 십자가형에 처했고, 다음으로 굶주린 맹수의 굴에 던져 맹수의 밥이 되게 했으며, 기름이 설설 끓는 가마솥에 던져 죽였고, 로마의 시민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바울 사도처럼 죽을 때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큰 칼이나 큰 도끼로 목을 쳐서 죽이는 참수형에 처했습니다. 

로마제국은 다른 나라를 점령한 후에 3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로마황제를 숭배할 것, 둘째는 세금을 낼 것, 셋째는 병역의 의무를 다 할 것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만을 요구하고 그 외는 모든 자유를 주었습니다. 즉 그들의 언어, 종교, 전통, 관습 등 모든 것을 존중해주고 일체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왜 기독교도들을 그렇게 박해하고 죽였을까요?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기독교도들이 세 가지 가운데 두 가지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황제숭배 거부와 병역의무의 거부였습니다. 

세금은 꼬박꼬박 냈지만, 이 두 가지는 목숨을 걸고 거절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황제숭배 거부였습니다. 로마제국은 다신론국가였는데 광대한 땅을 통치하기 위해 로마황제를 신으로 여기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 모든 주민이 황제신상 앞에 모여 울리는 나팔소리에 맞추어 허리를 굽혀 절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황제숭배는 십계명의 제1계명,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그리고 제2계명,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고, 거기 절하지 말라”는 계명을 정식으로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따를 수가 없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시요 왕이기에 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했습니다. 제국의 입장에서는 말할 것 없이 반역이었고 용서 받을 수 없는 반 국가적 행위였으므로 기독교인들이 사형을 피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해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후에 기독교 복음의 능력 앞에 굴복했습니다.

10.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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