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2024년의 길을 인도하시고 통치하실 하나님을 무한 신뢰하며 새해의 첫 발걸음을 뗀다.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신선한 새해 첫날 아침에,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그리고 그 찬양이 기도가 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가슴 벅찬 새해 첫날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세월을 낭비하지 않고 날마다 햇빛처럼 살게 하옵소서. 갈길 모르는 아이와 같으니 한걸음, 한걸음씩 인도하여 주소서. 험한 세상을 피할 수는 없어도 이길 수는 있사오니 새 힘을 주사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그리고 지난 한 해 동안에도 귀한 글로 우리를 풍성하게 해 주신 필진(筆陣)과 사랑으로 함께해주신 독자(讀者) 여러분께 감사와 새해 인사를 드린다. 필진 없이 어찌 신문이 만들어지며 독자 없이 어떻게 신문사가 존재하겠는가. “지난해, 감사했습니다. 새해, 하늘의 큰 복을 누리소서.”
새해에 하셔야 할 일이 무엇인가. 새해에 조금 더 집중할 일이 하나 생겼다. 필자의 머리카락이다. 지난 연말 한 성도가 샴푸를 가지고 필자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그는 몇 년 동안 필자의 머리카락을 유심히 관찰해 온 것이다. 보시다가 안 되겠다 싶어 자신이 사용하여 효과를 본 샴푸를 가지고 목양실의 문을 두드리신 것이다. 자리에 앉은 그는 자신의 머리를 자세히 보라고 하면서 옛 사진도 함께 보여주었다. 필자가 보기에 괄목(刮目)할만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의미 있는 변화는 확실히 있었고 그 성도의 허락을 받아 머리를 만져 보기도 하였다. 그는 샴푸만 준 것이 아니다. 사용법을 상세히 적은 문서(?)까지 건네주었다. 그리고 한두 달 후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한 것이다. 부연(敷衍)하자면 샴푸는 그분의 비즈니스와는 전혀 상관없고 오롯이 필자의 머리 상황에 따스한 관심을 가진 외국인 성도이다. 지금도 그분이 건네 준 사용 매뉴얼을 펼쳐 놓고 있다. 그 마지막에 이런 문구가 있다. “What we want to do is create a condition where hair can grow strong. I hope this works for you, as it has for me.” 이분은 자신이 건네준 매뉴얼대로 사용하여 필자의 머리에 회복과 변화가 있는 것을 정말 보고 싶어 하였다. 이제 새해에 필자에게는 그 성도에게 샴푸 사용의 결과를 보여주고 알려 주어야 하는 과제가 새롭게 생긴 것이다.
새해에 개선되고 회복되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무엇이 그 기준인가. 그 모든 것들에 유일한 기준은 “성경대로”이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선물과 그 삶을 살아내는 성경이라는 매뉴얼이 함께 주어졌다. 회복이라는 절실하고 숭고한 사명 앞에 그 기준과 방향이 자기 멋대로라면 더 심각한 혼돈에 빠질 것이다. 사실 “성경대로”라는 회복의 기준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이 누가 있겠는가. 문제는 고백은 있지만 실제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주라 부르면서 예수님께 순종함은 없는 것(눅 6:46)과 같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회복”으로 가는 첫걸음에 “성경의 회복”이 앞서야 한다. 성경의 회복이란 고백과 행함이 성경 앞에 함께 있는 것이다.
필자가 졸업한 신학교에는 1918년 3월 20일에 창간된 “신학지남(神學指南)”이라는 계간지가 있다. 그 이름에는 신학의 방향이 성경이요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이 성경에의 순종이어야 함을 담고 있다. 100년이 훌쩍 넘어서도 계속 발행되고 있는 신학지남은 신학의 발전과 신앙의 열매를 성경 안에서 지향(指向)해 왔다. 신년벽두(新年劈頭)에 1983년 1월 3일 창간 된 우리 신문의 사시(社是)를 되새겨본다. “바른 신학/바른 교회/바른 생활/바른 선교” 40년을 넘은 그 “바른” 것의 모든 방향도 오직 성경일 뿐이다.
01.01.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