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자들에게 전하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부분을 타협하지 말라,
부드럽게 하지 말라, 정면으로 제대로 이야기하라.
지난 토요일에 나는 불신자들이 적지 않게 참석한 결혼식에서 설교했다. 나는 신랑 신부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불신자에게 복음까지 전하는 성경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어려운 구절을 골랐다. 에베소서 5:22-33. 나는 신랑 신부에게 주례자로서 하기 쉽지 않은 메시지가 있다고 말했다. 바로 복종과 사랑이다. 동시에 긍정적인 말도 있다고 말했다. 서로 사랑하고 복종할 때, 백성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두 사람이 반영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렇다. 나는 복종에 관해서 말했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주제였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런 일이 퍽 자주 발생한다.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설교하다 보면 지금 우리 생각과 모순되고 이상해 보이는 부분을 성경 속에서 꼭 만나곤 한다. 전에는 그런 구절을 부드럽게 하거나 아니면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나는 어려운 구절들로 곧장 달려간다.
나이가 들수록 기독교의 어려운 부분이 지렛대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굳이 어려운 주제를 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에라도 어려운 구절을 적극적으로 맞아들여야 한다.
더 정직하다.
어려운 문제를 피하는 교회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만나는 사람들의 반응은 실망스럽다. 이건 마치 고객을 유인하는 상술 같다. 성경 속 어려운 주제는 적지 않다. 따라서 교인들이 나중에 그런 부분을 일부러 숨겼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솔직하게 알릴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행전의 설교를 보라. 사도들은 적대적인 청중과의 의사소통에 매우 능통했다. 종종 그들은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으로 바로 이동했다. 그런 내용은 피하거나 부드럽게 페달을 밟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아예 처음부터 공개하는 것이 좋다.
더 힘 있다
어려운 주제의 공개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기독교가 우리에게 필요한 대위법을 제공하는 지점이 바로 성경 속 난제가 있는,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성경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올바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그 어려움이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소식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다. 따라서 어려운 구절일수록 피하기보다는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과 우리가 메시지를 전하는 교인들 사이의 긴장 지점은 무엇인가? 그 지점을 피하지 말라. 적극 끌어안으라. 성경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변화를 어떻게 이뤄내는지를 보여주라. 결국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항상 더 나은 삶과 사고방식으로 고쳐 나가야 한다.
어려운 구절을 피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성경의 어려운 부분을 부드럽게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복음의 타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복음은 우리 모두와 모순된다(고전 1:18-25). 우리는 믿기 어려운 많은 내용을 믿는다. 예수님의 처녀 탄생과 성육신. 그의 죽음, 장사, 부활이 역사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 더불어서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이다. 믿지 않는 귀에는 이 모든 게 이상하며, 복음을 타협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부드럽게 바꿀 수 없다.
내 생각에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경향과 기독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더 낫다. 그 사실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응답을 요구한다. 말씀이 현대인의 감성과 모순될 때, 올바른 접근 방식은 모순의 완화가 아니라 성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더 나은 말씀을 어떻게 제공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려운 부분을 부드럽게 하지 말라. 정면으로 제대로 이야기하라. 달려가라. 어려운 부분, 이상한 부분, 괴이한 부분은 오히려 하나님 계시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보다 더 나은 말씀을 어떻게 주시는지 더 잘 보여줄 수 있다.
by Darryl Dash, TGC
11.18.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