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흐르는 진리

부활은 구전(口傳)되어 온 신화(神話)가 아니다. 사람이 지어낸 소설도 아니다. 도도히 흐르는 진리이다. 그렇다. 어느 시간, 일정한 장소에만 묶여 있는 것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모든 시간 모든 장소에도 불변하며 적실(適實)한 것이 진리이다. 부활은 과거에도 진리였고 그 과거는 기독교의 출발이었다. 필자가 8년 동안 사역했던 대전에는 ‘뿌리 공원(公園)’이 있다. 넓은 공원 곳곳에 자기 집안의 뿌리가 어디였는지를 알게 해주는 글들이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뿌리가 적힌 글을 보고 옷깃을 여미거나 자부심을 갖는 모습을 보았다. ‘뿌리’는 1976년 출판된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제목이기도하다.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 했다지만 다른 사람의 글을 도용했다고 고소당하기도 했던 소설이다.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미국의 근대사(近代史)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생각도 갖게 하였다. 기독교의 뿌리에 예수님의 부활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모든 것이 끝났다면 기독교는 없었다. 예수님의 빈 무덤에서부터 솟구친 부활의 강물이 굽이굽이 흘러왔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내 인생의 근본이 되신다는 것이다. 든든한 뿌리이다. 견고한 근본이다. 이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도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활의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활은 오늘도 진리이다. 어제는 확실히 그랬었고 내일도 그럴 수 있겠지만 오늘의 어두움을 전혀 몰아내지 못하는 부활이라면 그 부활은 진리가 아니다. 예수님은 이천여 년 전, 빈 무덤으로부터 오늘로 거침없이 걸어오셨다. 그 긴 세월 동안 어떤 것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 날 아침의 무덤 앞의 큰 돌로부터 시작하여 로마의 박해와 근래(近來)의 온갖 사상(思想)에 이르기까지 부활의 걸음을 멈추어 보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돌로 진리를 막을 수 없었다. 칼로 진리를 죽일 수 없었다. 말로 진리를 이길 수 없었다. 이천년의 매일(每日)이 그랬듯이 오늘도 부활의 축제이다. 되살아난 생명의 축제이다. 찬란한 빛의 축제이다. 화려한 꽃의 축제이다. 싱그러운 노래의 축제이다. 죽었던 것들이 아쉽게도 오늘만큼은 살아나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오늘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부활이 극복 못할 오늘의 문제는 어떤 것일까? 절망, 불안, 실패, 두려움, 우울증일까? 없다. 일(一)도 없다. 부활을 죽일 수 있는 세력은 무엇일까? 학문, 세상, 마귀일까? 없다. 하나도 없다. 

 

부활은 미래에도 확실하다. 오늘 존재하고 있는 우리에게 미래도 다가온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린도전서 15:19) 묘지에 갈 일이 종종 있다. 죽어간 모두에게 묘비가 있었다. 어느 여인의 묘비에는 ‘기다림(waiting)’이라는 한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죽음에서 모든 것을 끝낸 것이 아니라 죽음을 새로운 시작으로 삼아 그 너머의 영원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왜 그 여인뿐이겠는가. 우리에겐 미래도 있고 그 미래를 넘어서는 영원도 있다. 나의 미래, 인류의 미래를 무엇에 맡기겠는가. 과학도, 정치도, 경제도 그리고 무력(武力)도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나의 미래 인류의 미래로 삼아야 한다. 이런 설교 제목으로 감동을 끼친 목사님이 계시다. ‘오늘은 금요일, 그러나 주일이 오고 있다(It’s Friday, but Lord’s Day is Coming). 누구에게나 금요일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주일, 부활의 날을 확신하는 자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래의 죽음을 벌써 넉넉히 이긴 자가 어떤 미래를 염려하겠는가. 부활은 흐르는 진리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장엄한 진리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부를 영원한 노래가 있다.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 주/ 헛되이 지키네 예수 내 구주/ 헛되이 봉하네 예수 내 주/ 거기 못 가두네 예수 내 구주/ 우리를 살리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04.08.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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