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 하원이 지난 8일 동성결혼과 인종 간 결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결혼존중법안(Respect for Marriage Act)’을 가결했다. 민주당 소속 의원 전원 찬성에 공화당 의원 39명이 지지를 더하면서 258대 169표로 법안이 통과됐다.
동 법안은 상원에서도 공화당 의원 12명이 힘을 보태면서 지난달 29일에 통과됐다. 그리고 이날(8일) 하원의 문턱까지 넘으면서 이 법안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책상 위에 오르게 되었다. 대통령이 서명하면 이제 미국에서 동성결혼은 연방법의 보호를 받게 되어, 전통적인 결혼의 의미와 가치가 심각한 손상과 함께 향후 가족제도의 향방까지도 오리무중으로 빠지게 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8일 성명을 내고 법안을 지지하며, 신속하게 서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상, 하 양원 모두 법안을 처리해준 데 감사를 전하며, 이번 법안 통과는 “가장 근본적인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민주당과 공화당이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동 법안은 결혼을 ‘여성 한 명과 남성 한 명의 결합’으로 제한한, 지난 1996년 제정된 ‘결혼보호법’을 폐지하고, 동성 커플의 결혼도 합법적인 결혼으로 인정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또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주에서도 다른 주에서 이뤄진 동성 간 결혼을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모든 주에 동성결혼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지난 2015년, 연방대법원은 5대 4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수십 년간 이어온 동성결혼 합법화 논란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6월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보편적인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하면서 동성결혼 합법화 논란이 재점화됐다.
바로 보수 절대 우위로 재편된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의 합법성을 인정한 기존 판례도 뒤집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9명 가운데 보수 성향 대법관이 6명, 진보 성향 대법원은 3명이다. 실제로 보수 성향인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로 대 웨이드’ 폐기에 찬성하는 의견문에서 피임과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기존 판례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합법성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례가 폐기되더라도 동성결혼을 법으로 보호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결국 의회 차원에서 동성결혼을 연방 법으로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하지만 의회 내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보수적인 공화당 의원들이 법안에 반대했다. 앞서 상원에서 법안 토론 당시 마이크 리 상원의원은 “주 정부들이 동성결혼 인정을 거부하지 않고 있으며 결혼으로 인정받지 못할, 심각한 위험도 없다”며 “결혼존중법안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해당 법안은 사실 앞서 지난 8월에 하원을 이미 통과했었다. 하지만 상원에서는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상원에서는 법안이 통과하려면 최소한 60표 이상의 표가 필요한데 상원의 민주, 공화 의석수가 50대 50인 상황에서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가 부족했던 것이다. 따라서 상원에서는 종교자유를 보장하는 내용을 포함한 수정안을 마련했다.
종교적 이유에서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소송을 당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내용이 추가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담긴 수정안이 지난달 상원에 이어 8일 하원에서도 처리된 것이다. 하지만 하원의 표결 결과를 보면 법안 원안보다 수정안을 지지한 공화당 의원은 더 적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의회는 동성 결혼을 다루기 위험한 영역으로 봤지만, 이제는 동성 결혼이 미국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의회에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언론은 평가하고 있다. 설문조사를 봐도 동성결혼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 1996년 처음으로 동성결혼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을 물었을 때는 동성결혼을 지지한다는 응답률이 27%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5월에는 지지 응답률이 71%에 달했다.
한편 결혼 존중법이 통과될 경우 종교의 자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는 가운데, 여론조사기관 라무센리포트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 1천명 중 과반수가 이 법안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또한 야후 뉴스는 결혼존중법과 관련해 좌파와 우파 사이에 동성애 권리와 종교 자유를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대응에 차이가 있다고 보도했다.
공화당의 상원의원 12명이 이 법안에 찬성하면서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켰다. 공화당은 이 법안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종교 자유 보장에 관한 조항을 포함시킨 수정안이 제시되자 1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쇼셜미디어에 많은 지지자를 가진 좌파 인사들은 법안에 일부 불만이 있지만 대체로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단체들은 법안을 지지한다.
결혼보호법을 비판하는 계층에서는 결혼존중법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가 있다.
우파에서는 이 법을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이 법안을 지지하거나 종교적 자유 조항을 지지하고 그들의 신앙 가르침이 동성 결혼을 지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법안이 통과되기를 원하는 종교 단체들이 있다.
12.17.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