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놈이여 샬롬!

어떤 영화의 장르를 좋아하시는가? 서부 영화는 어떠신지? 만주를 배경으로 한 한국판 서부 영화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제목이 이렇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장인물들이 대단했던 영화이다. ‘놈’은 가끔 친근감 있게 사용되기도 하지만 결코 점잖은 용어가 아니다. ‘놈’은 남자를 낮잡아 부를 때 사용되거나 아예 욕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그런데 ‘놈’이란 욕을 듣고 살아난 사람이 있다. 그는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었다. 간암 말기 진단을 받은 그는 3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최후통첩을 받고 눈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 앞을 지나던 사람이 그에게 큰소리로 욕을 하고 지나간 것이다. ‘살 놈’이라고. 자기에게 ‘놈’이라고 하니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그 앞의 수식어는 마음에 무척 들었다. 놈은 놈인데 ‘살 놈’이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까지 자기는 ‘죽을 놈’으로 포기하고 살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를 그렇게 여기는 줄 알고 지내던 인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살 놈’이 되었다. 

 

이 시한부 인생의 자기를 향한 시각과 언어는 그때부터 바뀌었다. “나는 죽을 놈이 아니다. 나는 살 놈이다. 나는 살 수 있다. 나는 살아야 한다.” 스스로 던진 그 말이 자신에게 뜨거운 용기를 가져다주었다. 씨앗처럼 수없이 뿌려진 말들은 언젠가 열매를 맺는다. 긍정의 말은 긍정의 열매를, 부정의 말은 부정의 열매를 맺는다. 그 사람, ‘살 놈’은 다시 살았다. 건강을 회복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가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도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살 놈’이라고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목사님이셨다. 그리고 목사님은 그 사람에게 ‘살 놈’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샬롬!’이라고 평안을 기원했을 뿐이다. 듣는 자가 ‘샬롬!’을 ‘살 놈!’으로 잘못 들었을 뿐이다. 아무튼 그는 살았다. 육신도 살고 영혼도 살았다. 

 

샬롬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샬롬은 무엇보다 하나님과 화목이다. 샬롬은 축복이 넘치는 평강을 뜻한다. 샬롬은 외적인 평화를 의미한다. 샬롬은 내적인 평안이다. 샬롬은 불의한 세상에 있어야 할 정의이다. 샬롬은 허물어진 마음과 가정과 사회에 회복되어야 할 질서이다. 샬롬은 싸음과 대립이 아닌 멋드러진 어울림을 말한다. 샬롬은 사명을 끝까지 완수할 때 온다. 샬롬은 안전하고 완전한 번영이다. 샬롬은 영혼이 잘 되고 범사도 잘 되고 강건하기도 한 것이다. 샬롬은 가시 위에 피어난 장미처럼 고난을 넘어 보이고 퍼지는 아름다운 향기이다. 

 

다음 몇 문장들은 그런 뜻이 아니니 부디 욕한다고 오해하지 마시라. 좋은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살 놈이여 샬롬!”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죽을 놈이 아니라 살 놈이다. 그리고 우리는 ‘샬롬’의 사람이다. ‘샬롬’의 사람은 ‘살 놈’이다. 샬롬의 사람은 ‘삶’의 사람이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지 근심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지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영생을 선물로 주셨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샬롬을 선물로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해도 좋은 것이다. “살 놈이여 샬롬!”

12.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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