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바람이 어느 정도 불긴 불었는데, 태풍은 아니었다.” 민주당의 하원 탈환과 공화당의 상원 유지로 끝난 2018년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 중 하나로 ‘블루 웨이브(blue wave)’의 규모를 진단한 뉴욕타임스(NYT)의 결론은 이렇게 요약된다(Democrats Capture Control of House; G.O.P. Holds Senate). “오늘은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헌법이 규정한 대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복원됐다는 점이다.” 차기 하원의장으로 유력한 낸시 펠로시(78) 민주당 원내대표는 11월 6일 선거 승리 축하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마디로, 미국 일방주의,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피즘’이라는 극우 정치 성향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복원됐다는 뜻이다. 따라서 연방헌법, 그리고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 기능이 의회 차원에서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관측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미국이 나아갈 길을 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유권자들의 뜻이 반영된 결과이기에 정치권은 선거 결과를 교훈 삼아 또다시 2년 뒤를 준비해야 되기 때문이다. ]
우선 이번 선거 결과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선거 전, 지구촌의 관심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11월 4일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중간 선거가 어쩌면 근래에 실시된 중간선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선거가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This midterm election is like no other in a generation). 그 이유는 바로 이번 중간선거가 미국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앞으로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를 판가름할 선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권자들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가치, 미국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같은 근본적인 물음에 관해 고민하며 선거에 참여했다. 국가와 사회가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탓인지 이번 선거에는 전에 없이 많은 선거 자금이 모였고, 정당과 후보들은 그 돈을 아낌없이 선거에 쏟아 부었다. 실제로 사전투표율도 기록적으로 높았으며, 전체 투표율도 중간선거치고 상당히 높았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역시 민주주의라는 이념과 가치의 복원이 가늠되는 중요한 선거라고, 이번 선거 결과를 기대했다(Why the mid-terms matter: Politicians are making Americans miserable. The elections offer a chance to change). 지난 2년간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극우주의자들과 연계해 이끌어가는 국정 운영은 소위 ‘증오와 분노의 정치’라고 표현된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은 반목과 질시로 양극화된 양상을 보여 왔다. 그래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할 경우, 의회 차원의 견제를 받게 될 수 있어, 어느 정도 정치적 간격을 재조정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이번 중간선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공화당의 개혁을 요구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다른, 상식적인 차원에서 도덕적 품성과 인격을 가진 리더가 이끄는 보수 정당으로서 개혁이 있어야만, 한때 모든 이들이 탄복했던 미국 민주주의가 다시 복원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 2016년,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 즉 보수 정치의 한계를 지적했다. 바로 정치에서 중요한 가치인 ‘중용’을 종종 망각했기 때문이다. 역대 보수주의 정권은 선거 때 지지자들에게 내건 '약속'을 집권 후 거의 지켜내지 못했다. 이념적 선명성에만 집착하는 태도로는 미국의 문제를 풀 수 없음을 직감한 정권들은 늘 '타협'과 '중도'를 택했다. 그러나 선거 국면이 돌아오면 보수정치의 주류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급격히 '우회전'을 하며 다시 지지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스스로의 정책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기는커녕 타협과 중도를 비판하며 이념적으로 초강경한 목소리를 내기에 바빴다. 바로 이러한 한계가 기존 정치의 공식을 철저히 파괴하고 있는 이단아인 트럼프 정권을 창출시킨 것이다. 한마디로, 이코노미스트는 보수의 '극단화'는 공화당 자체의 문제를 넘어 미국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의 위기이기에, 지체 없이 돌아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중간선거는 반대파만큼이나 트럼프의 지지층이 꽤 견고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민주당이 트럼프의 지지층에 균열을 내려면 더 많은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NYT 칼럼니스트, 다니엘 매카시는 트럼프가 “널리 증오 받고 우려의 대상이지만 또한 그는 자신의 지지층들에게 깊이 사랑받는 인물”이라는 점이 다시 확인됐다고 진단했다(Trump Was Not Repudiated. He Was Rewarded.: The president made the midterms a real battle instead of a running retreat. He is widely hated and feared, but he is also much loved as a champion of his voters).
“국가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낮은 세금과 규제 완화, 더 보수적인 법관들을 원하는 전통적 공화당 지지층들” 사이에서도 그의 인기가 견고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2018 선거 결과가 확인시켜준 게 있다면, 트럼프주의 혹은 적어도 트럼프가 이끄는 공화당이 플로리다와 오하이오 같은 핵심 대선 격전지에서 계속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 적의를 품은 전 공화당 지지자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처럼 정말로 트럼프가 절망적인 실패자라면, 공화당은 우호적인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실 훨씬 더 나쁜 성적을 거뒀어야 한다. 한편 민주당은 여전히 고학력, 고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도시와 교외지역을 뺀 시골 지역에서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복스(Vox)는 ‘공화당 주, 민주당 주’라는 기존의 분류 대신 이제는 주 내부에서 목격되는 도시-시골 간 차이가 두 당의 지지층을 가르고 있다고 짚었다(It could take days-or weeks-to find out which party won Congress).
교외 지역에 대한 민주당의 진출은 시골 지역에서 공화당이 크게 이기면서 상쇄됐다. 2012년에 미주리주에서 민주당 클레어 맥카스킬 상원의원은 시골 지역인 샐린 카운티에서 22.5%p 차이로 이겼다. 2018년에는 21.4%p 차로 졌고, 비슷한 시골 지역들이 돌아서면서 끝내 재선에 실패했다. 이러한 결과는 전국적으로 살펴봤을 때 다른 곳과 일맥상통한다. 플로리다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은 고학력 백인과 라티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심과 교외지역에서 그동안의 성적을 뛰어넘는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공화당은 플로리다의 덜 교육받은, 문화적으로 더 남부적인 시골 지역에서 엄청난 승리를 거둔 덕분에 모두 승리를 거뒀다.
물론 공화당에게도 고민이 있다. 공화당이 상대적으로 인구에서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고령층, 시골, 저학력 백인들의 지지 정당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의 경우 2016년 대선 이후 공화당을 등지고 넘어온 백인 고학력(고소득) 지지층을 기존 지지층과 묶어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를 떠안게 됐다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이는 민주당이 더 왼쪽으로 가야 하는지,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오랜 논쟁을 더 부추기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결론으로, 이번 중간선거에서 ‘엄청난 성공’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패배했다. ‘엄청난 실패’도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뿌린 ‘분열과 분노의 정치’란 씨앗은 전통적 보수 지역인 남부 일대와 ‘러스트 벨트’(중서부·북동부 일대 제조업 중심 지역)에서 확실히 뿌리를 내렸다. 2020년 대선까지 2년여, 하원을 중심으로 펼쳐질 정치권의 공방은 미국 사회의 분열을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