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오셔서 우리안에 계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2018년 성령강림주일 맞아 고대교회 예전 전통 통해 성령강림 의미 재확인
성령이 오셔서 우리안에 계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신다!

[부활 후 50일의 마지막 날은 부활절 여덟째주일인 성령강림주일이다. 오순절이 부활절 여덟째 주일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고대교회가 주일을 제8일이라고 불렀듯이, 또한 파스카팔부의 여덟 번째 날을 성대하게 축하했듯이 부활절 여덟째 주일을 ‘주일 중의 주일’, ‘큰 주일’이라고 불렀다. 서방교회는 부활절 전야에 미처 세례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성령강림주일에 세례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부활절의 의미가 성령강림절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사실, 세례 받는 것은 물로만 세례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 받는 것이기에 성령강림주일에 세례 받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

고대 교회는 성령강림주일을 크게 축하했다. 부활 전야제처럼 성령강림 전야예배를 드렸다. 이 전야 예배 때는 구약의 네 본문을 읽었다. 이 네 본문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신비를 잘 포착하여 드러내어 주는 본문들이다. 첫째 본문은 창세기 11장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이 죄로 인해 수없이 분열되어 있는 인간모임을 하나로 만드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둘째 본문은 출애굽기 19장인데,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해 주님의 교회에 새로운 법을 선포해 주신 것을 축하한다. 셋째 본문은 에스겔 37장인데, 성령께서 오심으로 죽었던 자들 가운데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넷째 본문은 요엘 2장인데, 오순절 성령강림 때 사도 베드로가 인용했던 바로 그 구절이다. 이제는 말세가 되었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복된 시대가 펼쳐졌다는 것을 선포한다. 오순절은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로, 이 날에 신약교회가 세워졌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제자들이 성령님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고, 성령님이 임하자 제자들이 방언을 하기 시작한다. 각국에서 오순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왔던 유대인들과 경건한 이방인들이 제자들의 입에서 자기들이 사용하던 말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이것은 구약시대 바벨탑 사건으로 나누어졌던 언어가 통일되는 굉장한 사건이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의 무리, 즉 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다. 이스라엘이라는 구약교회가 하지 못했던 복음전파의 사역을 새로운 이스라엘, 즉 신약교회가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출현했다. 성령께서는 창조의 영이셨고, 구약시대에도 활동하셨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께 요청하여 이 땅에 오셨다. 이제 성령께서는 교회를 통해 일하신다.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은사도 주시고, 능력도 베풀어 주시지만 교회를 통해 역사하신다. 그래서 사도신경에도 ‘나는 성령을 믿사오며’라고 고백한 후에 성령께서 수행하시는 첫째 사역이 ‘거룩한 공교회를 세우시는 것과 성도의 교통을 이루시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성령강림절이 가까워지면 강단장식이 화려(?)해진다. 계절이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다양한 꽃들로 강단을 장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부활 후 50일간에 부활초를 켜 놓았다. 부활의 빛이 온 땅을 밝히 비춰주실 것에 대한 기대이다. 성령강림절에는 붉은색 꽃들로 마치 불꽃이 일어나는 것 같은 장식을 하기도 한다. 부활 후 50일간 독서는 사도행전과 요한복음이 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부활주일에 요한복음 서론(1:1-18)을 여러 언어로 읽으므로 이후로는 요한복음에 대한 전체 독서를 시작한다. 부활은 충만한 절기이다. 그래서 단 하루만이 아니라 부활 이후 성령강림주일에까지 이르는 50일간을 축하한다. 성령강림절에 이르면 충만도 절정에 달한다. 부활과 성령강림을 통해 우리는 충만이 무엇인지를 체험할 수 있다. 세상적인 결핍속에서도 영적인 충만을 누릴 수 있다.

성령강림절은 우리가 성령님을 체험해야 하는 날이기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우주만물위에 높아지신 것을 묵상하는 복된 절기이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께 요청하셔서 성령님을 보내어 주셨다. 높아지신 그리스도께서는 멀어지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신(?)인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므로 가장 가까이 다가오셨고, 가장 충만해 채워주신다. 떠나가신 분이 항상 함께 하시면서 교회를 채우신다.

그러나 미국교회는 성령강림주일에 인색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아주사 대부흥의 유산을 지키고 있는 교회들은 성령의 임재와 역할에 강조를 두고 있지만, 성령의 역사는 단지 “영적 생활” 영역으로 한정되어지고 만다. 갤럽이나 바나에서도, 성령에 관한 실제적인 설문 조사는 거의 없고, “영적 영역(Spiritual care/life)”라는 분야에서만 미국인들에게 설문을 하고 있을 뿐이다. 성령강림이 바로 교회 즉 공동체의 탄생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교회에서 강조하는 성령의 역사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강조되는 것도 아쉽다. 개인의 영적 성장, 능력에서 성령의 사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가정, 교회 그리고 사회가 성령으로 변화되고 새롭게 탄생할 수 있도록 강단에서 선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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