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ì§€í˜œì˜ ë²•ì¹™

(잠언 2장 1-8절)

장성철 목사 (보스턴장로êµíšŒ)

ì‚¬íšŒì‹¬ë¦¬í•™ìž í† ë§ˆìŠ¤ 길로비치(Thomas Gilovich)는 ì¸ê°„ì—게 처ìŒì— ê°€ì¡Œë˜ ì„ ìž…ê´€ì´ë‚˜ ì‹ ë…ì„ ë’·ë°›ì¹¨ 하는 정보는 중요시하고 반대ë˜ëŠ” ì˜ë¯¸ì˜ 정보는 무시하려는 ‘편향 확ì¦(confirmation-bias)’ì´ëž€ ì‹¬ë¦¬ì  ê²½í–¥ì´ ìžˆë‹¤ê³  했습니다. 현대ì¸ë“¤ì€ ì„±ê²½ì˜ ë§ì”€ë³´ë‹¤ 세ìƒì—ì„œ 경험할 수 있는 것들 특히 과학ì , í•©ë¦¬ì  ë…¼ë¦¬ê°€ 마ìŒì˜ ì¤‘ì‹¬ì— ìžë¦¬ë¥¼ 잡게 ë˜ì—ˆìŠµë‹ˆë‹¤. 그래서 ì´ì„±ê³¼ ë…¼ë¦¬ì— ë°˜ëŒ€ë˜ëŠ” í•˜ë‚˜ë‹˜ì˜ ë§ì”€ì„ 접하게 ë˜ë©´ í¬ê²Œ 부정하지 않지만, 무시하는 “편향 확ì¦â€ì ì¸ 태ë„를 ë³´ì´ê²Œ ë©ë‹ˆë‹¤. ì´ê²ƒì„ 극복하기 위해 í•˜ë‚˜ë‹˜ì˜ ì§€í˜œê°€ 필요합니다. ì´ìŠ¤ë¼ì—˜ ë°±ì„±ë“¤ì€ ì§€í˜œëŠ” í•˜ë‚˜ë‹˜ì˜ ì„±í’ˆì´ê³  í•˜ë‚˜ë‹˜ì˜ ì˜ì´ë¼ê³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ì—서는 í•˜ë‚˜ë‹˜ì˜ ì§€í˜œê°€ 예수 그리스ë„ë¡œ ì¸ê°„ì—게 나타내신바 ë˜ì—ˆê³ , í•˜ë‚˜ë‹˜ì˜ ìžë…€ë“¤ì—게 선물로 주어졌다고 ë§ì”€í•©ë‹ˆë‹¤. 과학ì ì¸ 지ì‹ì— 근거한 지혜가 없어서 불행한 ê²ƒì´ ì•„ë‹ˆë¼, í•˜ë‚˜ë‹˜ì„ ì•„ëŠ” ì´ˆìžì—°ì ì¸ 지혜가 없기 ë•Œë¬¸ì— ì¸ìƒì€ ì ˆë§ì ì¸ 것입니다. 그래서 삶과 죽ìŒ, ë˜í•œ ì˜ì›ì„ ì´í•´í•˜ê¸° 위하여 í•˜ë‚˜ë‹˜ì˜ ì§€í˜œê°€ 필요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신령한 지혜로 ìš°ë¦¬ì˜ ìž˜ëª»ëœ ìžì•„와 ì´í•´ê°€ 깨어지고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신령한 지혜는 í•˜ë‚˜ë‹˜ì˜ ì„ ë¬¼ìž…ë‹ˆë‹¤.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â€(6ì ˆ).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ì•„ë‹Œ ê²ƒì€ ì„¸ìƒì , ì •ìš•ì , 마귀ì ìž…니다. ë°˜ë©´ì— ìœ„ë¡œë¶€í„° ë‚œ í•˜ëŠ˜ì˜ ì‹ ë ¹í•œ 지혜는 성결하고, í™”í‰í•˜ê³ , 관용하고, 양순하며, ê¸íœ¼ê³¼ ì„ í•œ 열매가 ê°€ë“하고, 편견과 ê±°ì§“ì´ ì—†ìŠµë‹ˆë‹¤(약3:15,17). í•˜ë‚˜ë‹˜ì€ ì´ëŸ° ì˜ì ì¸ 지혜를 선물로 í’성하게 주십니다. ì‚¬ë„ ì•¼ê³ ë³´ëŠ” â€œë„ˆí¬ ì¤‘ì— ëˆ„êµ¬ë“ ì§€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êµ¬í•˜ë¼ ê·¸ë¦¬í•˜ë©´ 주시리ë¼â€ê³  합니다(1:5). ‘부족하다’는 ì˜ë¯¸ëŠ” ‘빈곤하다’는 것입니다. ì‚¬ëžŒì˜ ì§€í˜œë§Œìœ¼ë¡œ í•˜ë‚˜ë‹˜ì„ ì•Œ 수 없습니다(ê³ ì „1:21). í—¬ë¼ì¸ì€ ì² í•™ì  ì§€í˜œë¥¼ 가지고, 유대ì¸ì€ ì‚¬ë¬¼ì„ ê´€ì°°í•˜ëŠ” 과학ì ì¸ 지혜를 가지고 í•˜ë‚˜ë‹˜ì„ ì´í•´í•˜ë ¤ 했습니다. í•˜ë‚˜ë‹˜ì— ëŒ€í•˜ì—¬ 알려고 ë…¸ë ¥ì„ í•˜ì§€ë§Œ í•˜ëŠ˜ì˜ ì‹ ë ¹í•œ 지혜가 ì—†ì´ í•˜ë‚˜ë‹˜ì„ ë°”ë¡œ ì•Œ 수 없습니다. ì˜ì ìœ¼ë¡œ 빈곤한 ê²ƒì„ ì¸ì •í•˜ë©´ì„œ ìžì‹ ì˜ 힘으로 ì¸ìƒì˜ ë¬¸ì œë“¤ì„ í•´ê²°í•  수 ì—†ìŒì„ 고백할 ë•Œ í•˜ë‚˜ë‹˜ì˜ ì‹ ë ¹í•œ 지혜를 선물로 ë°›ì„ ìˆ˜ 있는 것입니다. ì˜ì  ë¹ˆê³¤ì„ ëŠë¼ëŠ” 사람ì—게 í•˜ë‚˜ë‹˜ì˜ ì§€í˜œê°€ 나타나서 ì˜ì  계시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ì˜ì  ì„±ìž¥ì„ í•©ë‹ˆë‹¤. “우리가 온전한 ìžë“¤ 중ì—ì„œ 지혜를 ë§í•˜ë…¸ë‹ˆ ì´ëŠ” ì´ ì„¸ìƒì˜ 지혜가 아니요â€(ê³ ì „2:6). 어린 ì•„ì´ì— 대조하며 온전한 ìžëŠ” 성장한 어른ì´ëž€ ì˜ë¯¸ìž…니다. í•˜ë‚˜ë‹˜ì€ ì‹ ë ¹í•œ 지혜를 주실 ë¿ ì•„ë‹ˆë¼ ê·¸ë¦¬ìŠ¤ë„ì˜ ìž¥ì„±í•œ ë¶„ëŸ‰ì— ê¹Œì§€ ìžë¼ê²Œ 하시는 분ì´ì‹­ë‹ˆë‹¤. ì´ ì§€í˜œëŠ” 때를 ë”°ë¼ ë•ëŠ” ì€í˜œë¡œ í’족하게 우리를 ìžìœ ì¼€ 하는 í•˜ë‚˜ë‹˜ì˜ ì„ ë¬¼ìž…ë‹ˆë‹¤. 위로부터 오는 신령한 지혜를 찾고, 붙잡아야 합니다. 신령한 ì§€í˜œì˜ ì„ ë¬¼ì— ëŒ€í•˜ì—¬ 아는 것과 í•˜ë‚˜ë‹˜ì´ ì›í•˜ì‹œëŠ” 지혜를 붙잡는 ê²ƒì€ ë³„ê°œì˜ ë¬¸ì œìž…ë‹ˆë‹¤. ë³¸ë¬¸ì— ë‚˜ì˜¨ 4ìŒì˜ 8가지 ë™ì‚¬ëŠ” 우리ì—게 위로부터 오는 신령한 지혜를 어떻게 ë¶™ìž¡ì„ ìˆ˜ ìžˆëŠ”ì§€ì— ëŒ€í•˜ì—¬ 귀한 êµí›ˆì„ 주고 있습니다.

í•˜ë‚˜ë‹˜ì˜ ì§€í˜œë¥¼ ì˜ì‹¬ì—†ì´ 받고 ê°„ì§í•´ì•¼ 합니다. â€œë‚˜ì˜ ë§ì„ 받으며â€(1ì ˆ). í•˜ë‚˜ë‹˜ì€ ì•¼í›¼, 스스로 계신 분ì´ì‹­ë‹ˆë‹¤(출3:14). 우리는 í•˜ë‚˜ë‹˜ì˜ ì§€í˜œë¥¼ 그대로 받아야 하고, ë˜ ê·¸ì € 받기만 하면 ë©ë‹ˆë‹¤. í•˜ë‚˜ë‹˜ì˜ ì§€í˜œëŠ” ì„±ê²½ì— ë‚˜íƒ€ë‚˜ 있습니다. ì„±ê²½ì€ í•˜ë‚˜ë‹˜ì˜ ê°ë™ìœ¼ë¡œ ëœ ê²ƒì´ê¸° 때문입니다(딤후3:16). ë˜í•œ í•˜ë‚˜ë‹˜ì˜ ì§€í˜œëŠ” ê·¸ì˜ ì•„ë“¤ 예수 그리스ë„ì— ë‚˜íƒ€ë‚˜ìžˆìŠµë‹ˆë‹¤. 죄로 ì£½ì„ ìˆ˜ë°–ì— ì—†ëŠ” 우리를 구ì›í•˜ì—¬ 주시는 예수 그리스ë„ì˜ ì‹­ìžê°€ì˜ 죽ìŒê³¼ ë¶€í™œì„ ë¯¿ê³  회개하는 마ìŒê³¼ 예수를 구주로 ì˜ì ‘하는 ê°ì‚¬í•˜ëŠ” 마ìŒì´ í•˜ëŠ˜ì˜ ì§€í˜œë¥¼ 받는 첫 단계입니다. ì´ëŸ¬í•œ 회개와 ê°ì‚¬ì˜ 마ìŒì´ 없는 ì‚¬ëžŒì€ ì–´ë¦¬ì„ì€ ìžê°€ ë˜ëŠ” 것입니다(ìž 1:7). â€œë‚˜ì˜ ê³„ëª…ì„ ë„¤ê²Œ ê°„ì§í•˜ë©°â€(1ì ˆ). 오늘날 ë§Žì€ í¬ë¦¬ìŠ¤ì²œë“¤ì´ í•˜ë‚˜ë‹˜ì˜ ê³„ëª…ì„ ì£¼ì¼ë§ˆë‹¤, ë§¤ì¼ ê°™ì´ ì¸í„°ë„· 설êµ, ì„¤êµ CD, 설êµì§‘ë“¤ì„ í†µí•˜ì—¬ ë³´ê³  듣고 있지만 금방 잊어버리는 “ì˜ì  치매â€ì— 걸려있습니다. “...누구든지 ë„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ìžê¸°ì˜ ìƒê¸´ ì–¼êµ´ì„ ë³´ëŠ” 사람과 같으니 ì œ ìžì‹ ì„ ë³´ê³  가서 ê·¸ ëª¨ì–‘ì´ ì–´ë– í•œ ê²ƒì„ ê³§ 잊어버리거니와...â€(약1:22-24). 우리가 ì§„ë¦¬ì˜ ë§ì”€ì„ ê°„ì§í•˜ê³  ë§ì”€ëŒ€ë¡œ 행하지 못한다면 능력 있는 í•˜ë‚˜ë‹˜ì˜ ë§ì”€ì´ ìš°ë¦¬ì˜ ì‚¶ì— ì˜í–¥ë ¥ì„ 미치지 못하ë„ë¡ ê±°ëŒ€í•œ ë²½ì„ ìŒ“ëŠ” 것과 ê°™ì€ ì¼ìž…니다. í•˜ë‚˜ë‹˜ì˜ ì§€í˜œì— ê·€ë¥¼ 기울ì´ê³  마ìŒì„ ë‘어야 합니다. “네 귀를 ì§€í˜œì— ê¸°ìš¸ì´ë©°â€(2ì ˆ). ì›ì–´ì  ì˜ë¯¸ëŠ” “귀를 날카롭게 하며â€ë¼ëŠ” 뜻으로 í•˜ë‚˜ë‹˜ì˜ ë§ì”€ì— 존경과 ê²½ì˜ë¥¼ 표하는 ê²ƒì„ ê°€ë¦¬í‚µë‹ˆë‹¤. í•˜ë‚˜ë‹˜ì„ ê¼­ 붙잡지 못하는 ì´ìœ ëŠ” 우리가 í•˜ë‚˜ë‹˜ì˜ ë§ì”€ì„ 심ê°í•˜ê²Œ ìƒê°í•˜ì§€ 않기 때문입니다. ì–´ë–¤ ì‚¬ëžŒì„ ì¡´ê²½í•˜ê²Œ ë˜ë©´ 귀를 “쫑긋하고†듣고, ë”°ë¼ í–‰í•©ë‹ˆë‹¤. ë°˜ë©´ì— ì¡´ê²½ì‹¬ì´ ì—†ìœ¼ë©´ â€˜ë‹¹ì‹ ì€ ë– ë“¤ì–´ë¼â€™í•˜ë©´ì„œ í•œ 귀로 듣고 다른 귀로 í˜ë¦¬ëŠ” 것입니다.

“네 마ìŒì„ ëª…ì² ì— ë‘ë©°â€(2ì ˆ). 신령한 지혜를 구하는 목ì ì´ ì—¬ê¸°ì— ìžˆìŠµë‹ˆë‹¤. ‘마ìŒì„ ëª…ì² ì— ë‘”ë‹¤â€™ëŠ” ê²ƒì€ í•˜ë‚˜ë‹˜ì˜ ë§ì”€ì„ 삶 ê°€ìš´ë° ì ìš©í•˜ëŠ” ê²ƒì„ ì˜ë¯¸í•©ë‹ˆë‹¤. ì‚¶ì„ ì••ë°•í•´ì˜¤ëŠ” ë¬¸ì œì˜ ëŒ€ë¶€ë¶„ì€ ì‹ ë ¹í•œ 지혜가 아니면 대처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ì‚¶ì„ ë³µìŒì˜ ì›ë¦¬ì— ì ìš©í•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환란과 ê³ í†µì„ ì œê±°í•´ 달ë¼ê³  기ë„하지 않습니다. í˜„ìž¬ì˜ í™˜ëž€ê³¼ ê³ í†µì€ ìš°ë¦¬ë¥¼ 향하신 í•˜ë‚˜ë‹˜ì˜ ì„ í•˜ê³  기ë»í•˜ì‹œë©° 온전하신 ëœ»ì„ ì„±ì·¨í•˜ì‹œê¸° 위하여 필요한 ê²ƒì„ ì•Œê³  ì´ê²¨ë‚¼ íž˜ì„ ë‹¬ë¼ê³  지혜롭게 기ë„í•  것입니다. í•˜ë‚˜ë‹˜ì˜ ì§€í˜œì™€ ëª…ì² ì„ ì–»ìœ¼ë ¤ê³  기ë„해야 합니다. “지ì‹ì„ 불러 구하며â€(3ì ˆ). 순간마다 새로운 ë„ì „ë“¤ì´ ê¸°ë‹¤ë¦¬ê³  있습니다. 그래서 í•˜ë‚˜ë‹˜ì˜ ì§€í˜œë¥¼ 구해야 합니다. ‘불러 구하ë¼â€™ëŠ” ê²ƒì€ â€˜ì§€í˜œë¥¼ 구하는 기ë„를 하ë¼â€™ëŠ” ë§ì”€ìž…니다. 그리고 ‘구한 ê²ƒì€ ë°›ì€ ì¤„ 믿으ë¼â€™ëŠ” ì˜ë¯¸ì´ê¸°ë„ 합니다. 지혜는 ìžë™ì ìœ¼ë¡œ 찾아오는 ê²ƒì´ ì•„ë‹™ë‹ˆë‹¤. í•˜ë‚˜ë‹˜ì€ ìš°ë¦¬ë¥¼ ë¡œë´‡ì´ ì•„ë‹ˆë¼ ìžë…€ë¡œ 대하십니다. ìžë…€ê°€ 물어 보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íŠ¹ê¶Œâ€™ì„ ì‚¬ìš©í•  ë•Œ í•˜ë‚˜ë‹˜ì€ í›„í•˜ê²Œ 주십니다.

â€œëª…ì² ì„ ì–»ìœ¼ë ¤ê³  소리를 높ì´ë©°â€(3ì ˆ). ëª…ì² ì€ ì§€í˜œì— í° íž˜ì„ ì‹¤ì–´ì¤ë‹ˆë‹¤. ë°”ìš¸ì€ â€œí˜•ì œë“¤ì•„ 지혜ì—는 ì•„ì´ê°€ ë˜ì§€ ë§ê³  ì•…ì—는 어린아ì´ê°€ ë˜ë¼ ì§€í˜œì— ìž¥ì„±í•œ ì‚¬ëžŒì´ ë˜ë¼â€ê³  했습니다(ê³ ì „14:20). ‘ì˜ì  ì €ëŠ¥ì•„â€™ë§Œí¼ ë¶ˆí–‰í•œ ê²ƒì€ ì—†ìŠµë‹ˆë‹¤. ì˜ì ì¸ 저능아란 ì§€í˜œì— ìžˆì–´ì„œ 어린 ì•„ì´ì˜ ìƒíƒœë¥¼ 벋어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ì˜ì  성장과 ëª…ì² ì€ ì•„ì´ì™€ ê°™ì´ ì›€ì¶”ë¦° 신앙으로부터 어깨를 펴고 ë‘ ì†ì„ 움켜쥔 í™•ì‹ ì— ì˜ê´‘스런 모습입니다. í•˜ë‚˜ë‹˜ì˜ ì§€í˜œë¥¼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ì€ì„ 구하는 ê²ƒê°™ì´ ê·¸ê²ƒì„ êµ¬í•˜ë©°â€(4ì ˆ). 새로운 ê²ƒì„ ì°¾ì•„ë‚´ë ¤ëŠ” 연구ìžì˜ ì—´ì •ì„ ì˜ë¯¸í•©ë‹ˆë‹¤. í•˜ë‚˜ë‹˜ì˜ ì§€í˜œëŠ” 마치 ì¸ìƒì— ê°ì¶”ì¸ ë³´í™”ì™€ 같습니다. 열심으로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ê²½í—˜ì´ ë§Žì€ ì„¸ê´€ì›ì´ 여행ìžì˜ ê°€ë°©ì— ê°ì¶”어진 ë¬¼ê±´ì„ ì°¾ìœ¼ë ¤ê³  플래시ë¼ì´íŠ¸ë¥¼ 비추ì´ëŠ” ê²ƒê°™ì´ ê²¸ì†í•œ 마ìŒìœ¼ë¡œ ì„±ê²½ì— ê¹Šì´ ê°ì¶”어진 ë³´í™”ì˜ ë§ì”€ì„ ì„±ë ¹ì˜ ì¡°ëª…í•˜ì‹œëŠ” 빛으로 찾으려는 모습입니다. í•˜ë‚˜ë‹˜ì˜ ì§€í˜œë¥¼ 연구한다는 ê²ƒì€ ì˜ˆìˆ˜ë‹˜ì˜ ì€í˜œì™€ 그를 아는 지ì‹ì—ì„œ ìžë¼ê°€ëŠ” 것입니다(벧후3:18).

“ê°ì¶”ì¸ ë³´ë°°ë¥¼ 찾는 ê²ƒê°™ì´ ê·¸ê²ƒì„ ì°¾ìœ¼ë©´â€(4ì ˆ). í•˜ë‚˜ë‹˜ì˜ ì§€í˜œë¥¼ 붙잡는 ê²ƒì˜ ìµœê³  ì ˆì •ì„ ë§ì”€í•˜ê³  있습니다. 옛날ì—는 ë³´ë¬¼ì„ ì•ˆì „ížˆ 보관하기 위하여 ë•…ì— ë¬»ì–´ë‘었습니다. 그리고 í›„ì— ë³´ë¬¼ì„ ë‹¤ì‹œ 찾기 위하여 지ë„나 ë•…ê³¼ ë‚˜ë¬´ì— ì¼ì •í•œ 표시를 í•´ ë‘었습니다. ê²°êµ­ ë‚˜ì¤‘ì— ë‹¤ì‹œ 찾기 위해서 부지런하게, ì¸ë‚´í•˜ë©°, ëˆì§ˆê¸´ ê·¼ì„±ì´ ìžˆì–´ì•¼ 합니다. ì€í˜œì˜ ë§ì”€ê³¼ 새로운 깨달ìŒì„ 메모해 ë†“ì€ ê²ƒì„ ë‹¤ì‹œ ë³´ë©° 기억ì—ì„œ í¬ë¯¸í•´ 진 ê²ƒë“¤ì„ ë‹¤ì‹œ 추ì í•˜ì—¬ 묵ìƒí•˜ê³  마ìŒì— 새롭게 ë‘어야 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ì§€í˜œì— ëª©ì ì´ 있습니다. 지혜 ì—†ì´ ì§€ì‹ì„ 가질 수는 있지만, 지ì‹ì´ ì—†ì´ ì§€í˜œë¥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신령한 ì§€í˜œì˜ ëª©ì ì€ í•˜ë‚˜ë‹˜ì„ ì•„ëŠ” 지ì‹ì— 있습니다. 신령한 지혜는 ìµœê³ ì˜ ì„ ìƒì´ ë˜ì‹œëŠ” 주님으로부터 배워야합니다. ì£¼ë‹˜ì€ â€œë‚´ê²Œ ë°°ìš°ë¼â€ê³  ë§ì”€í•©ë‹ˆë‹¤(마11:29). 주님께 배울 ë•Œ 신령한 지혜는 í•˜ë‚˜ë‹˜ì´ êµ¬ì›ìžìž„ì„ ì•Œê²Œ í•´ì¤ë‹ˆë‹¤. “그는 ì •ì§í•œ ìžë¥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â€(7ì ˆ). ‘완전한 ì§€í˜œâ€™ì˜ ì˜ë¯¸ë¥¼ NIV성경ì—서는 ‘정ì§í•œ ìžë¥¼ 위하여 승리를 예비하셨다â€ê³  번역하고 있습니다. ì •ì§í•œ ìžì˜ 승리는 죄로부터 구ì›ìž…니다. â€œì„±ê²½ì€ ëŠ¥ížˆ 너로 하여금 ê·¸ë¦¬ìŠ¤ë„ ì˜ˆìˆ˜ ì•ˆì— ìžˆëŠ” 믿ìŒìœ¼ë¡œ ë§ë¯¸ì•”ì•„ 구ì›ì— ì´ë¥´ëŠ” 지혜가 있게 하ëŠë‹ˆë¼â€(딤후3:15). í‘œì ì„ 구하는 유대ì¸ì—게는 ì‹­ìžê°€ì˜ 예수 그리스ë„는 걸림ëŒì´ ë˜ì—ˆìŠµë‹ˆë‹¤. 그리고 ì² í•™ì  ì§€í˜œë¥¼ 구하는 í—¬ë¼ì¸ì—게는 ì‹­ìžê°€ì˜ ë³µìŒì´ 어리ì„ê³  미련한 것ì´ì—ˆì§€ë§Œ â€œë¶€ë¥´ì‹¬ì„ ìž…ì€ ìžë“¤ì—게는 유대ì¸ì´ë‚˜ í—¬ë¼ì¸ì´ë‚˜ 그리스ë„는 í•˜ë‚˜ë‹˜ì˜ ëŠ¥ë ¥ì´ìš” í•˜ë‚˜ë‹˜ì˜ ì§€í˜œâ€ê°€ ë˜ì‹­ë‹ˆë‹¤.

신령한 지혜는 í•˜ë‚˜ë‹˜ì´ ìš°ë¦¬ì˜ ë³´í˜¸ìžìž„ì„ ì•Œê²Œ í•´ì¤ë‹ˆë‹¤. “여호와는… í–‰ì‹¤ì´ ì˜¨ì „í•œ ìžì—게 방패가 ë˜ì‹œë‚˜ë‹ˆâ€(7ì ˆ). í•˜ë‚˜ë‹˜ì˜ ë³´í˜¸í•˜ì‹œëŠ” íž˜ì— ëŒ€í•˜ì—¬ëŠ” ì„±ê²½ì˜ ì—¬ëŸ¬ ê³³ì—ì„œ 찾아 ë³¼ 수 있습니다(ì°½15:1, ì‹œ33:20, 84:11,ì‹œ 89:18). ë§ì”€ì— 순종하며 ì‚´ì•„ê°ˆ ë•Œ, 순간마다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í•˜ë‚˜ë‹˜ì„ ì²´í—˜í•  수 있습니다. ì‚¬ë„ ë² ë“œë¡œëŠ” “너í¬ê°€ ë§ì„¸ì—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ì›ì„ 얻기 위하여 믿ìŒìœ¼ë¡œ ë§ë¯¸ì•”ì•„ í•˜ë‚˜ë‹˜ì˜ ëŠ¥ë ¥ìœ¼ë¡œ ë³´í˜¸í•˜ì‹¬ì„ ìž…ì—ˆë‚˜ë‹ˆâ€ë¼ê³  ë§ì”€í•©ë‹ˆë‹¤(벧전1:5). 우리는 온갖 위험과 죄로 ì˜¤ì—¼ëœ ì„¸ìƒì„ 살아가고 있습니다. í•˜ë‚˜ë‹˜ì˜ ë³´í˜¸í•˜ì‹¬ì´ ì—†ë‹¤ë©´ ì‚´ì•„ë‚¨ì„ ì¸ìƒì€ í•˜ë‚˜ë„ ì—†ìŠµë‹ˆë‹¤. 아무리 과학과 ê¸°ìˆ ì´ ë°œë‹¬í•œë‹¤ê³  í•´ë„ ì„¸ìƒì— ê°€ë“í•œ 파괴ì ì¸ íž˜ì„ ë§‰ì„ ìˆ˜ëŠ” 없습니다. 옛부터 ì¸ê°„ì€ ì§€í˜œë¥¼ 구하고 찾아왔습니다. “ìƒê°í•œë‹¤. 그러므로 존재한다â€(Cogito ergo sum). 필요한 지ì‹ì€ 암기하는 ì •ë³´ê°€ ì•„ë‹ˆë¼ ìƒê°í•˜ëŠ” 힘입니다. 현학ì ì¸ 수사가 ì•„ë‹ˆë¼ ë§ˆìŒì„ 움ì§ì´ëŠ” 메시지입니다. ë³µìŒì˜ 메시지! 빈틈없는 논리가 ì•„ë‹ˆë¼ ë¹„ì–´ìžˆëŠ” 공간입니다. í•˜ë‚˜ë‹˜ì˜ ì€í˜œë¡œ ê°€ë“ ì±„ì›Œì§ˆ 공간! 사고를 구ì†í•˜ëŠ” ê²ƒì´ ì•„ë‹ˆë¼ ë”ìš± ìžìœ ë¡­ê²Œ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ìžìœ í•˜ê²Œ 합니다! “ëŠë‚€ë‹¤. 그러므로 존재한다â€(Sentio ergo sum).

필요한 지ì‹ì€ 엄격히 구분하는 잣대가 ì•„ë‹ˆë¼ ê²½ê³„ë¥¼ 넘나드는 ì´í•´ìž…니다. 율법보다 ì‹­ìžê°€ì˜ ì€í˜œ! ë§í•˜ëŠ” ìª½ì˜ ìž…ì´ ì•„ë‹ˆë¼ ë“£ëŠ” ìª½ì˜ ê·€ìž…ë‹ˆë‹¤. 마ìŒì˜ 묵ìƒì„ ë§í•©ë‹ˆë‹¤. ì±…ì˜ ê¹¨ì•Œ ê°™ì€ ê¸€ì”¨ê°€ ì•„ë‹ˆë¼ ì±…ì„ ì¥” ì†ì— 맺힌 ìž‘ì€ ë•€ë°©ìš¸ìž…ë‹ˆë‹¤. í–‰í•¨ì´ ìžˆëŠ” 믿ìŒ! 머리를 높게 하는 ê²ƒì´ ì•„ë‹ˆë¼ ë§ˆìŒì„ 낮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ë„ì˜ ê²¸ì†ì„ 닮아가는 지혜! 신령한 ì§€í˜œì˜ ê¶ê·¹ì ì¸ 목ì ì€ 삶 ê°€ìš´ë° í•˜ë‚˜ë‹˜ê»˜ì„œ 구ì›ìžì™€ 보호ìžìž„ì„ ì•Œê³  ê·¸ í•˜ë‚˜ë‹˜ì˜ ì„±í’ˆì„ ë‹®ì•„ê°€ë©° í•˜ë‚˜ë‹˜ì˜ ì§€í˜œë¥¼ 나타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í•˜ë‚˜ë‹˜ì„ ì•„ëŠ” 온전한 지ì‹ì— ì´ë¥¼ 때까지 열심히 위로부터 오는 신령한 지혜를 구하고, 찾고, ë˜ ë‹¤ì‹œ 찾아가면서 마ìŒì— ê°„ì§í•˜ëŠ” ìš°ë¦¬ë“¤ì´ ë˜ê¸°ë¥¼ ì£¼ë‹˜ì˜ ì´ë¦„으로 축복합니다. schang@bostonkorea.org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