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일기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겠지만…

김재열 목사 (뉴욕 센트럴교회)

청소년 시절에 폐결핵을 치료하기 위해서 농촌에서 2년간 요양 생활을 할 때였다. 농촌의 풍경이 겉으로 보기에는 풍경화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정작 그 그림 속에 들어가 보니 실제로는 가는 곳마다 역겨운 냄새로 가득했다. 우선 들이나 밭에 가면 고약 퇴비와 인분 냄새로 코를 막아야 했다. 집에는 마당 한 켠에 돼지우리의 구린내가 진동을 했고 뒷 켠에는 염소와 소들의 배설물 악취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게다가 온종일 닭들은 날카로운 두 발로 거름더미들을 해치면서 먼지와 고약한 냄새들을 풍기며 진동하고들 있었다. 처음에는 도저히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역하게 풍기는 냄새들이 싫어서 내 방에서 문을 꼭 닫고 나오지 않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사촌 형수께서 급하게 달려와 도움을 청했다. 따라가 보니 거대한 어미 돼지가 구렁텅이 속에 가로 누워 숨을 헐떡거리며 산고의 신음을 하고 있었다. 형수는 어미 돼지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한 마리 한 마리씩 새끼 돼지들을 받아냈다. 난 탯줄을 잘랐고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이렇게 받아낸 새끼 돼지들이 자그마치 열한마리나 되었다. 얼마나 부드럽고 귀엽고 예쁘던지… 눈도 겨우 뜬 녀석들이 꿀꿀거리면서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아기 돼지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후 정신을 차려보니 내 온몸은 오물 범벅이 되었지만 이상하게 그 냄새들이 싫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도 많은 새끼들을 쏟아준 어미돼지가 믿음직해 보였고 가난한 농가에 큰 몫을 보탰다는 대견함에 사랑스럽게 보였다.

닭똥 냄새가 진동하는 닭장에서 꼬꼬댁 울어재끼는 암탉의 둥지에는 매일 따뜻한 달걀들을 쏟아 놓았고, 말썽꾸러기 염소도 새끼를 낳고, 조용한 토끼도 새끼를 늘리고… 그래서 농가가 풍요롭게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떠올랐던 성경말씀이 이 구절이었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잠14:4). 이때 농가에서 체험한 살아있는 말씀이 내 인생과 사역에 이렇게도 큰 힘이 될 줄을 몰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전한 것을 선호하고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새로운 일을 하려면 우선 많은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 앞으로 나가려면 맞바람을 피할 수 없다. 그 맞바람이 싫으면 그냥 제자리에 앉아 있으면 된다. 자전거 페달을 세게 밟을수록 맞바람은 더욱 세차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고 대어를 낚으려면 커다란 파도를 넘어 깊은 바다로 나가야 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고 밤을 밝히며 책 읽는 자가 앞서 간다.

최고의 등반가는 동네 뒷산을 오르지 않는다. 겁쟁이들은 언제나 핑계가 많다. 길거리에 사자가 있다고 하면서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게으른 농부들은 비가 올 것 같아서 파종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농부는 비를 맞고라도 씨를 뿌린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이라도 반드시 거기에는 반대세력이 있고 방해꾼들이 있기 마련이다. 반대가 싫고 방해꾼들이 무서우면 그냥 있으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지내라. 그리하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소로부터 얻는 유익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jykim4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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