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루터의 종교개혁 성공이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구텐베르그의 인쇄술 발달이 한 몫을 했다고 목사님을 통해 들었는데 좀 더 구체적인 것을 알고 싶습니다. -팔로스 버디스 김난경 권사
A: 우리는 현재 모두가 자기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500년 전만해도 사정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보통 성도들이 개인 성경을 가진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1500년 동안 수도원 수사들은 성경을 일일이 필사해야 했습니다. 주로 식물 파피루스나 동물가죽에 썼는데 가격이 매우 비쌌습니다. 전문가를 시켜 필사하면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약 300만불 정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66권을 제작하는 데는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들었고 성경전체를 하나 가지려면 거의 농장 하나, 작은 성 하나를 팔아야 할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성경을 한권 소유하는 것은 왕이나 엄청난 부자나 귀족 아니면 불가능했습니다. 성경은 성전이나 왕궁에 하나씩 있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로마 교황청이 4세기 말에 만들어서 중세교회가 천년이 넘게 사용해온 불가타 성경(Vulgate)은 라틴어로 사용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직자나 극소수의 학자들 외에는 성경이 있어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교황청은 사람들을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군중이 무지해야 통치하기가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카톨릭 사제들이 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해주는 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세기 교황청이 저지른 가장 큰 죄 중에 하나가 “십자군 전쟁인데 그 잔혹한 죄를 저지르면서도 교황청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교황청이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해도 성도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도 각자가 말씀을 직접 읽고 검증할 수 없으니까 로마교황청이 잘못된 길로 가도 그냥 묵과하고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루터는 성도들이 자기 나라 언어로 성경을 읽게 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루터가 태어나기 150년 이전에 종교개혁의 계명성과 같은 존 위클립(John Wycliffe 1320-1384)은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도록 해주기 위해 옥스포드의 학자들을 모아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착수하였습니다. 이 성경이 훗날 최초의 영어 완역본 “위클리프 성경”이 됩니다. 그러나 1382년, 교황청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그가 죽은 뒤 몇십 년이 흐른 뒤 그의 적들은 그의 시신을 파내어 화형에 처하고 그 재를 강에 뿌리기까지 했습니다. 루터는 나중에 바르트부르크 성(Wartburg Castle)에 숨어 지낼 때 수염을 기르고 이름도 바꾸고 신분 세탁을 한 후에 10개월 정도 숨어 지내면서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이후 10년 뒤인 1534년에 신구약 성경이 모두 완성되어 출간한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무려 50만 권이상이 팔리게 되었습니다. 1440년대 요한 구텐베르그(Johannes Gutenberg 1398-1468)라고 하는 독일의 기술자가 금속활자를 발명해서 인쇄술을 혁신시켰습니다. 수십 년 뒤에 말틴 루터가 이 세상에 태어나던 무렵에는 유럽의 모든 나라들은 대부분 인쇄 기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이 빠른 시간 내에 민중들에게 지지를 얻으면서 확산되는 데는 이 인쇄술의 발달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은 종교개혁을 가능케 했던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자기 나라 방언으로 성경을 번역하는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사제나 교황의 중재 없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