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라 사모 (텍사스 빛과소금의교회)
때로 우리의 삶에서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내 속사람이 그냥 알 때가 있다. 그런 변화의 때가 왔다는 것을 내 안에서 알아차릴 때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다니엘처럼 얼굴을 주께 고정하고 집중하며 간구해야 하지 않을까. 기회는 언제나 우리 곁을 지나가니까 말이다.
늘 조그만 문제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금 언짢은 일에도 쉽게 포기해 버리며 스쳐 지나가는 말들에도 미움을 차곡차곡 쌓아서 도대체 너그러움이란 모양조차 없는 좁디 좁아터진 내 마음속을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그렇게 썩고 냄새나는 고인 물처럼 한 치의 진전도 없이 정체된 나의 삶이 어쩌면 생명의 근원과도 이어지지 않은 것 같은 두려움을 문득 느낀다. 나이가 들어도 끝까지 변하지 않고 우리가 원하고 원하는 것은 주님 닮는 것인데... 우리의 가슴이 하늘을 쳐다보며 점점 넓어져 가고 바다를 바라보며 점점 깊어져 간다면 그래서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다 합하여 서로를 그런 마음으로 바라봐 줄 수 있다면 우린 오늘을 살며 가진 게 그리 많지 않아도 정말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그렇게 생을 마감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 나이가 먹어 갈수록 우리의 육체는 쇠잔해가며 그것에 걸맞게 우리의 의지도 점점 약해져 가지만 은총으로 주어진 나의 삶이 저 구름 너머의 푸른 하늘에서 쏟아 부어 주시는 신령한 은혜들을 아주 조금만이라도 맛본다면 다시 나의 꺼져가는 영이 아이처럼 살아나서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라고 했다. 그걸 거꾸로 말하면 증거가 없으면 우리의 믿음이 꽝이라는 말일게다. 증거란 어떤 것을 입증하기 위한 내용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입증해보일 내용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내용물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그냥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이리라. 그래서 우리가 선포한다는 말과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이 일치될 때 믿음은 거기에서 역사하지 않을까.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14:21)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어려운 계명을 주셨을까? 어린아이가 큰 물통을 들고 엄마를 도와준다고 끙끙대며 물을 나를 때 비록 물은 반은 다 쏟았지만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운 것처럼 주님은 그저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키려고 애쓰는 그 마음만 보시고도 ‘그래,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구나’라고 말씀하실 것 같다.
그렇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가장 축복된 일 중에 하나는 가정을 만들고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이 성장해서 또 자손을 이어가는 일일 텐데.... 어떤 아이는 이런 말을 한다. “사모님 우리 집은 완전 교인 수준이에요.”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교회에 와서 교인들과 인사말 나누는 것만큼만 대화한단다. 아니 오히려 교회 와서 부모님 얼굴을 더 오래 본다고... 그렇다. 우리는 가족 중에 누구라도 한사람이 먼저 변하고 새 맘을 가져야 다른 가족들도 소망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바깥 외면의 삶도 잘 살아내야겠지만 우리 가족안의 내면의 삶이 더 소중하고 풍성해져야 하리라. 그래서 사실은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화려하고 부요한 우리 가족 모습보다 가족 안에서 진짜 돌봐주고 사랑하는 풍성함이 더 값지고 귀한 것이리라.
그렇다. 너무 익숙해져서 잊혀진 서로의 고마움, 설렘, 감동들을 되찾는 변화가 나부터 시작되어 그냥 돌멩이처럼 흩어졌던 식구들이 다 건강하게 돌아와 준 것만도 너무나 감사요 설렘이요 감동인 찬란한 변화를 만끽하면 좋겠다. changsamo102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