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혜 박사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우리 집 문 앞에는 화분이 몇개 있다. 그 중 대부분은 몇년전에 제자가 다른 주로 이사 가면서 남기고 간 화분이다. 그 제자가 선인장을 좋아하는지 고무나무 한 그루를 제외하고는 다 선인장이다. 화초를 돌볼 여유 없이 사는 나에게는 선인장은 별로 손갈 것이 없어서 키우기가 좋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면 되지만 어떨 때 바빠서 깜빡 잊어버려도 선인장은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모처럼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화분을 살펴보니 한 선인장이 너무 커져 버린 키를 지탱하지 못해서 한 쪽으로 휘어지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선인장도 뿌리 쪽 잎사귀들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아무리 선인장이라지만 너무 무심했었나 싶어서 분갈이를 해주고 흙을 조금 더 돋아주었다. 잎을 정리하자니 보기에는 단단해 보이는 잎이 손이 닿으니까 똑똑 부러지는 것이었다. 조심스레 잎을 정리하면서 “잘 안 돌봐주어서 미안해, 그런데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하다보니 그 전날 저녁에 만난 이름도 묻지 않은 부부가 생각났다. 아침에 아내 되는 분이 텍스트 메시지로 부부상담을 해줄 수 있을지 물었다. 나는 상담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서 전문적인 도움을 줄 수 없지만 경청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녁시간에 부부를 만나기로 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 것일지, 나와의 만남이 그 분들에게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지를 오전 내내 생각하면서 이 주 동안 계속 마음에 머물고 있는 찬양 “아름답고 놀라운 주님”을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찬양사역자가 찬양 끝부분에 우리의 삶에 에스겔서의 마른 뼈가 살아서 움직이는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는 멘트를 했다. 처음 듣는 말씀도 아니고 너무 익숙한 말씀인데 그 말씀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부부에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서 큰 소리로 “아멘”을 했다.
저녁에 그 분들을 만났다. 짧은 인사가 오간 후 서로에 대한 불만과 비난이 경쟁이라도 하듯 이어졌다. 대화의 흐름을 보면 아무런 희망도 없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오전에 전문 상담인을 만났는데 헤어지라고 했다고 한다. 기독교 상담인이 아니면 쉽게 할 수 있는 권면이었다. “교회도 나가고 예수님도 아는데 정말 이렇게 서로를 비난하면서 쓰고 쓴 마음으로 헤어져야 할까? 그동안 들은 많은 설교와 여러 종류의 훈련은 이 부부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생의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짧은 시간 동안에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오갔다. 일단 감정 표현을 다 한 후여서 조금은 더 이성적인 생각을 할 준비가 된 아내와 차분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서로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다 보면 둘 사이는 점점 더 벌어지지만 이미 너무 벌어진 것 같은 틈을 좁힐 수 있는 유일한 공통분모인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남편의 장점만을 볼 수는 없을지, 마지막 선택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믿음으로 서로를 대해볼 수 없겠는지를 부탁했다. 감사한 것은 서로에 대한 실망과 미움 뒤켠에 사실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이 숨겨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또 두 분 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가정을 살릴 수 있는 끈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름을 알면 불편할까봐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채 함께 짧은 기도를 하고 헤어져 집으로 왔다.
요즘에는 황혼이혼이니, 졸혼이니 하는 단어도 있지만 부부에게는 결혼 후 십년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한다. 이런 저런 모양으로 쌓이는 불만을 이용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가장 최초의 공동체인 가정을 파괴하고자 하는 사탄의 전략을 이기려면 한 주일에 한 번 물만 겨우 주는 것 같은 최소한의 돌봄이 아닌 사랑이 담긴 규칙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마음은 어떤지, 일상의 일에 지치고 피곤한 것은 아닌지, 영혼의 건강은 또 어떤지 잘 살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어야 한다. 어려움을 겪는 부부들이 그동안 서로에게 소홀했던 것을 사과하며 주님을 뿌리로 삼아 건강하게, 행복하게 가정이 잘 살아 남도록 노력할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lpyun@ap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