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근 목사 (주사랑선교교회 담임)
아버지의 날은 미국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09년에 워싱턴 스포케인(Spo kane, Washington)의 소노라 스마트 도드(Sonora Smart Dodd)부인이 어머니날 설교를 듣다가 아버지날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도드 부인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다섯 자녀를 키운 아버지 헨리 잭슨 스마트(Henry Jackson Smart)의 깊은 사랑과 희생에 감사하기 위해 1910년에 아버지가 태어난 6월 19일을 아버지의 날로 정해 기념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교회와 YMCA 등을 중심으로 지켜왔던 아버지의 날은 1924년에 켈빈 쿨리지 대통령(President Calvin Coolidge)이 6월 셋째 주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정하여 공포했습니다. 1926년에는 뉴욕에서 아버지의 날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1956년에는 미 의회에서 처음으로 공식 인정되었습니다.
국가기념일이 된 것은 1972년 닉슨 대통령(President Nixon)이 6월 셋째 주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정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어머니의 날’(5월 둘째 주 일요일)과 함께 매우 중요한 기념일로 취급되고 있으며, 아버지날의 꽃은 장미인데,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빨간 장미를, 돌아가셨으면 흰 장미를 가슴에 다는 것이 풍습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외국에서는 아버지의 날을 국가의 중요한 기념일로 정하고 있는 나라가 20여 개국에 이릅니다. 호주에서는 매년 9월 6일을 아버지의 날로 정해 특별한 행사를 갖기보다는 가족 모두가 아버지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무엇이든 한 가지씩 하는 것을 관습으로 하고 있고, 이탈리아에서는 3월 19일을 아버지의 날로 정해 자녀들이 케이크나 음식 등을 준비해 아버지와 함께 즐기면서 넥타이나 열쇠고리 등 작은 마음의 선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국가기념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 1992년부터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좋아모)”를 중심으로 5월 1일을 아버지의 날로 정하고, 올해의 아버지를 선정, 수상하는 등 작은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6월의 ‘아버지의 날’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한국에서 ‘아버지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물론 혹자는 말하기를, “언젠가 좁쌀 같은 남성들이 모여 ‘어머니날’은 있는데, 왜 ‘아버지날’은 없냐고 항의를 했더니, 그 이후 ‘어머니날’은 ‘어버이날’로 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잘못된 권위주의적 한국의 남성문화”라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국제적인 세계화의 흐름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혹자는 말하기를, “어머니날은 한 날을 정하여 지키지만, 아버지날은 1년 365일이 모두 아버지날이라고 할 수 있기에 특별히 한 날을 정하여 지킬 것까지는 없다”고 하지만 타당성이 결여된 주장입니다. ‘어머니의 날’은 있는데 ‘아버지의 날’은 없다고 하여 얼렁뚱땅 땜질하듯 ‘어버이의 날’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아버지의 날’을 제정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날’을 최초로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던 미국의 관례를 거울삼, ‘어머니 날’은 전과 같이 5월 8일로 하고, ‘아버지날’은 현충일(6월 6일)을 피하여 6월 중에 한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하면 좋겠다고 사료되어 제안합니다. 그래서 실추된 아버지의 권위가 회복되고, 거꾸로 된 가정의 질서가 바로 세워짐으로 가정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같은 일을 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사회화 운동으로 전개됨으로 국가적인 기념일로 제정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jaekunlee0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