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설날

장사라 사모 (텍사스 빛과소금의교회)

가정 가정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이들한테 꼭 그렇게 말해야 했냐고, 아이들하고 좀 놀아 줄 수 없냐고... 불평하는 하는 아내, 치우고 돌아서면 다시 발 디딜 틈이 없이 어질러 놓는 아이들, 맨날 그렇게 교회에 가야하냐고... 필요 없는 건 좀 사지 말라고... 짜증내는 남편, 이렇게 가족은 이런 사소한 일에도 감정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며 급기야는 이혼을 운운하기도 한다.

아내의 마음속에 남편의 마음속에 자식의 맘속에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단어 하나만 집어 넣어주면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그것이 없어서 서로 악악거리고 의심하고 아파하고...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은 길을 찾아줄 수 있지만 자기 가정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은 어떠하나.... 수억의 사람들 가운데 겨우 4-5명으로 엮어진 내 가족, 그들은 서로 닮았다. 코도 눈도 말하는 것도 닮았고 걷는 것도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심지어는 병도 닮아서 같은 병을 앓는다는데.. 이렇게 몇 안되는 나를 닮은 가족 속에서도 ’너 때문에‘ 라고 까닭을 찾고 생채기를 내고 조금만 더 섬겨달라고, 내가 더 힘들다고 목청을 높이는 우리네들....

사람이 태어날 때 그리고 본향으로 돌아갈 때는 누구나 다 혼자 오고 가지만, 이 땅에 와서 사는 동안에는 이 땅에서 작은 천국을 경험하라고 같이 사는 가족을 주신 것이리라. 사람이 함께 살 때의 가장 기본은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이든 부부는 ‘아프지 않는 게 서로를 가장 사랑하는 일이라고...‘ 그런데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데.... 그렇다. 가족이 함께 살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기보다 가능한 폐가 되지 않고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사는 것이리라.

부부 싸움도 그렇다. 받은 것보다 더 큰 것을 돌려주면 싸움은 영락없이 커지지만, 그보다 조금만 작게 돌려주면 그렇게 오고 가다가 그치게 될 텐데 말이다. 내 남편을 변화시키는 길은 내가 남편을 변화시키겠다는 의도를 내려놓는 데서부터 시작이 되리라. 사실 남편을 변화시키려는 내 의도는 내가 편하고 행복하겠다는 이기심에서이지 않을까. 남편은 지금 이대로도 별로 불편한 것도, 변하고 싶은 것도 없는 그냥 그대로 좋다는데 말이다. 사실 우리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알게 모르게 그들을 참 많이 노엽게 한다. 어리다는 이유로, 못한다는 이유로, 게으르다는 이유로...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그래서 언젠가 한번쯤은 이 맺힌 것들을 풀어주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자식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고백과 함께....

딸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무표정에 늘 화가 나있는 얼굴 같은 태도에 속이 상하고 답답해서 급기야는 잔소리를 해댄다. “너 왜 그래. 뭐가 그렇게 불만이니? 너 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기도하는 줄 알아?” 그래서 우리 딸은 엄마가 자길 위해서 기도하는 게 싫단다. 엄마가 자길 위해서 기도할 때는 속상할 때이니까.... 그런 딸이 이렇게 어른이 되어 이젠 엄마의 맘도 알아주고 엄마와 쓰잘떼 없는 문자도 주고받으니 행복은 이런 거다 싶다. 그렇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과 아픔과 혼동이 있어서 부모의 눈에 차지 않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 그들에게 가장 큰 사랑은 속이 터져도 기다리고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닐까.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기다려 주셨듯이... 그러면 언젠가는 분명히 부모의 마음도 알게 될 것이고 주님의 사랑도 깨닫게 되리라. 기다려야 영혼을 살릴 수 있으니까....

매년 맞는 설날은 ‘설익은 날’ ‘낯선 날’ ‘설레는 날’이리라. 그날이 그날 같게 지루하고 감동 없는 익숙해진 매일의 날들에서 다시 낯설고 새롭고 다시 설레는 설날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리라. 그렇다. 가족은 서로 너무 익숙해져서 서로의 고마움도 설렘도 무디어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매일 같이 대하는 남편을 보면서, 자녀들을 보면서, 교인들을 보면서 돌멩이처럼 흩어졌던 가족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주는 것만도, 한주 동안 삶에 찌들었던 교회 가족들이 주일이면 옷매무새를 여미며 멋지게 교회에 나타나 주는 것만도 눈물겹도록 고마운, 그래서 다시 가슴이 뛰는 ’가족의 설날‘을 맞이하면 좋겠다.

그렇게 어제도 만났고 오늘도 만나고 또 내일도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안보면 못 살 것 같은 하늘이 내 곁에 준 사람들… 그들의 기쁨과 슬픔, 고통까지라도 싸안으며 그들과 맺은 인연이 후회스럽지 않게, 그리고 나를 만나 행복했노라는 고백을 들을 때까지 죽도록 사랑만 하리라. changsamo10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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