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로서 헌신의 때

송종록 목사

(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세상만사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일어날 때가 있고 누울 때가 있다. 공부할 때가 있고 일할 때가 있다. 매사에 때를 안다는 것은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무리 의미가 있는 것이라도 실기(失機)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 우리는 세계 전쟁사에서 군인들이 공격할 때를 잘못 포착하므로 패전한 경우들을 본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여러 연주자도 자기 악기의 소리를 아무 때나 내는 것이 아니다. 선교사역도 마찬가지이다. 선교사로 준비할 때가 있고 장도에 오를 때가 있다. 만일 누군가 선교사로 헌신하기를 원한다면 어느 때에 나가야 하는가? 이는 결코 획일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 선교적 헌신은 빠를수록 좋다. 나이 들어 나가면 여러 이점이 있기도 하지만 치명적으로 언어를 잘 배울 수 없으며 문화적응도 더디게 된다. 가는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이 있다. 팔팔한 젊은 시절 다 보내고 인생의 단물이 빠진 다음에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래서 서구 선교사회는 대체로 선교사 허입 연령을 35세로 제한하고 있다.

개척 선교사들의 헌신의 때

1885년 4월 5일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기독교 선교역사의 공식적인 원년이다. 이날 뜻 깊은 부활절에 미국 장로교 파송의 언더우드와 감리교 파송의 아펜젤러가 제물포 항에 입항한 것이다. 이때 언더우드 선교사는 26세었으며 아펜젤러 선교사(Henry Gerhard Appenzeller)는 27세였다. 한국을 사랑한 마포삼열 선교사(馬布三悅, Samuel A. Moffett)는 1889년 4월 15일에 미국북장로회 선교부로부터 한국선교사로 임명돼 1890년 1월 인천 제물포를 거쳐서 서울 마포강변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1901년 평양에서 신학교육을 시작하였으며 1904년에 정식으로 평양신학교 교장(1904-1924)에 취임했다. 그는 한국에 건너와 45년 동안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초기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을 양성한 영적 아버지이다. 주목할 것은 그도 한국에 올 때 나이는 26세었다. 기독교의 최초 선교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는 1793년 32세의 나이에 영국에서 인도선교사로 나갔다. 최초의 해외 파송인 애도니럼 저드슨(Adoniram Judson)은 그 나이 23세 때 미국 조합교회 소속의 인도선교사로 임명받고 인도 캘커타에 입국하였다. 하지만 그는 동인도회사와의 갈등으로 선교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이때 저드슨은 윌리엄 캐리의 영향으로 침례교로 교파를 옮긴 후 당시 선교사가 없던 지역인 미얀마 랭군에 입국하였다. 아프리카의 성자라 일컫는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은 그 나이 27세 때 런던전도협회의 의료 선교사로서 아프리카로 떠났다. 중국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Hudson Tylor)는 21세가 되던 1853년 9월 19일 중국을 향해 떠난다. 그는 6개월의 항해 끝에 22살 되던 해인 1854년 3월 1일 상해에 도착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우리 기독교사에 별과 같이 위대한 역할을 했던 선교사들은 대부분 20대에 헌신했다.

한국 선교사들 헌신의 동향과 대책

한국선교의 커다란 난점 중 하나는 선교헌신 연령이 너무 늦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선교계 일각에서는 해외선교 훈련에 참가하는 인력과 해외 선교사 파송인력의 평균연령이 과거에 비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데 우려하고 있다. 한국 선교연구원이 2009년 중반에 발표한 2008년 말 통계자료에 의하면 개신교 선교사는 20대 6%, 30대 26.9%, 40대 42.7%, 50대 19.4%, 60대 4.9%의 연령분포를 보이고 있다. 또한 누적 자료를 근거로 선교사 증가율을 살펴볼 때 90년대에는 20%의 증가율을 보였지만 2000년대 상반기에 이르러서는 10%의 성장률을 보였고 후반기에는 그 증가율이 10% 이하의 한 자리 수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전체선교사 증가율은 본격적인 둔화의 시기에 접어든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 중 20대 신입선교사 증가비율은 낮아지고 있는 반면 40대와 30대는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전문인선교에 있어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선교사지원자 고령화 현상과 선교사 증감율의 둔화”는 현재 선교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경력과 전문성으로 무장된 시니어 선교의 활성화 측면에서는 동력을 얻었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는 젊은 선교 동력이 꺼져가는 것은 아닌지 심각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한국선교에 있어 헌신의 때를 어떻게 앞당길 수 있을까? 첫째는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을 가능한 빨리 보내도록 해야 한다. 그간 가는 자나 보내는 기관에서는 준비를 명목으로 시간을 소모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준비는 죽을 때까지 해도 다 못한다. 최고의 준비는 기본과정만 끝낸 후 빨리 선교현장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둘째는 청소년들에게 주기적으로 선교적 도전을 하며 헌신자를 일찍부터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이다. 비전트립 등도 대학생 위주에서 중고등부시절로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목회자 선교사에서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 위주로 나가야 한다. 사실 목회자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대학을 졸업 후 군대와 신학을 마치고 나면 30대가 훌쩍 넘어 버린다. 나아가 목사 안수와 선교훈련을 받고 필요한 선교비(Fund)를 모금하다 보면 세월이 훌쩍 가버린다. 그러나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는 이런 면에서 자유로우며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 그리고 선교지에서도 운신의 폭이 넓으며 신분의 안정을 가질 수 있다.

맺는 말

우리 인생은 유한하다. 이것저것 할 만큼 길지 않다. 오직 한 가지에 전념한다 해도 일정 선을 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타 문화권에 선교사로 가겠다면 그 한계성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선교사로 헌신한 자는 하루라도 빨리 현장으로 가야 한다. 차일피일 미루다보면 훗날 선교지에서 고생은 더해지고 사역적 효과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역적 열매는 나이에 반비례한다고 말할 수 없다. 특히 의료분야나 엔지니어 같은 전문성을 요하는 부분은 많은 경륜과 실력을 가질수록 좋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부르심의 때는 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선교사로 부르심이 확실함에도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에 결단하지 못하고 젊음을 낭비하는 것이다. 청춘의 때 육신의 소욕을 따라서 할 것 다해보고 기력이 쇠할 때서야 선교사로 나서는 자를 하나님이 과연 기뻐하실 까? 하나님은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으실 분이 아니다. 고로 일찍부터 자신을 통째로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 드리는 자는 뭔가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온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중국에 간 허드슨 테일러 그리고 아프리카에 간 리빙스턴 선교사들처럼! 만일 그들이 청년의 때가 아니고 장년의 때에 사역지로 갔다면 오늘 우리가 아는 별과 같은 선교사들이 되었을까? 이메일: jrsong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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