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킹덤(Kingdom)을 향한 4P 원리

선교의 창 (9)
송종록 목사

(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선교는 하나님의 킹덤을 향한 사탄과의 영적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군사가 있어야 한다. 군사는 많을수록 좋다. 훈련될수록 좋다. 무장할수록 좋다. 조직화될수록 좋다. 그렇다면 어떻게 군사들을 훈련하여 전진배치 할 것인가? 세상만사 어디에나 질서와 단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시작-가속-전력-매듭”이라는 과정이다. 이것을 소설로 말하면 기(起)승(承)전(轉))결(結)이다. 선교도 하나의 패턴이 있다. 개척(Pioneer), 양육(Parent), 협력(Partnership), 참가(Participant)라는 4P원리이다. 이것은 현대선교의 대표 격인 랄프 윈터(Ralph D. Winter)박사에 의해 주창되었다. 그는 성경에 나타난 여러 사역내용을 이와 같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에 우리의 선교도 출구를 생각하며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개척(Pioneer) 단계

이는 선교사에게 가장 힘든 때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곳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이 단계는 건축물의 기초공사를 하는 때와 같다. 기초공사가 튼튼하지 못하면 큰 빌딩을 지을 수 없다. 하지만 기초공사는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기에 겉으로 표시가 안난다. 이에 성질 급한 사람들은 이 과정을 가볍게 여기거나 건너뛴다. 그들은 통역을 써서라도 속히 가시적 사역을 나타내기 원한다. 준비도 안 되는데 판을 벌리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 된다. 그간 한국선교는 1단계에서 많은 오류를 범해왔다. 사역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모든 것이 때가 있다. 이 개척 단계에서는 언어습득과 문화적응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은 사역을 위한 수단이면서 또한 그 자체가 사역이다. 선교사는 이 기초 위에서 하나님이 붙여주신 영혼들을 관계해야 한다. 멀리 내다보고 성령께서 인도해주신 대상인지를 분간해야 한다. 이것은 정보적 만남에서 시작되어 인격적 만남으로 발전되고 영적만남으로 승화된다.

양육(Parent) 단계

이는 부모가 자녀를 키우듯이 영적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이다. 이때는 무엇보다 인내를 필요로 한다. 속담에 “아기를 낳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아기를 키우는 일은 가장 힘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복음 선포에 의한 영혼구원은 순간이지만 제자양육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일꾼양성은 결코 한, 두 사람에 의해 될 수가 없다. 공수부대 요원을 생각해보라. 특수요원 훈련을 위해서 여러 전문교관들이 관여한다. 그런데 우리의 제자양육은 행여 다른 사람이 내 양을 체 갈까 염려하여 지체들을 자기 울타리 속에 가두어두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부모가 자녀를 학교도 안보내고 자기 품속에 안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소심증은 하나님의 킹덤을 바라보지 못한 연고이다. 고로 양육단계에서 목자는 일만 스승이 할 수 없는 참된 영적부모 역할을 하되 또 한편으로 양들을 일만 스승에게로 내어놓아 다양한 훈련을 받게 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네 양(羊)이 아니고 내(주님의) 양”을 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협력(Partner) 단계

이는 인격적으로 동등한 대우에서부터 시작된다. 설사 부모가 낳고 키웠다 할지라도 이제 자녀가 성년이 되면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전환을 해야 한다. 이때는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한 방향을 바라보며 동역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분야에서 의도적으로 같이 상의하고 진행할 필요가 있다. 가능한 현지인에게 여러 기회를 주며 그들을 통해서 일을 시도함이 바르다. 때로는 현지인 사역자가 미덥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한다 할지라도 선교사는 관성적으로 그들을 판단하면 안된다. 항상 프로다운 태도로 그들의 허물을 용납하며 격려해야 한다. 사람은 실수를 통해서 깨달음을 갖게 되고 일취월장(日就月將)한다. 따라서 그들을 바라보는 눈높이를 낮추어야 한다. 매사에 현지 사역자를 세우는 차원에서 코치하면 뒤탈이 없다. 그렇지 아니할 때 그들은 소외감을 느끼게 되며 여차하면 딴 마음을 품을 수도 있다.

참가(Participant) 단계

이는 때가 차고 현지인 동역자가 어느 정도 자립 가능성이 있을 때 선교사는 사역을 위임하고 일선에서 빠져주는 것이다. 비록 가슴이 쓰리고 아프지만 “너는 흥하고 나는 쇠하리라”는 마음으로 사역권을 현지인에게 내어주고 새로운 개척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옥이야 금이야 키운 딸을 출가 보내는 부모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매우 서운하고 가슴이 아프다 할지라도 분가해 줌이 그녀의 장래를 보장해주는 것이 된다. 선교사역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정들고 영원토록 같이하고 싶다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며 사역을 과감히 위임해야 한다. 이후 선교사는 애정 어린 사역지에서 시공간적으로 떨어지고 실제적 결정권이 없다 할지라도 멀리서 현지 사역자를 지켜보며 기도로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주 안에서 사랑의 동역관계를 유지하며 필요시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참가단계는 이론처럼 그렇게 간단치 않다. 자칫하면 서로에게 큰 부담과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위임 문제로 얼마나 많은 시험 가운데 있는가? 헤게모니(hegemony)의 싸움은 사탄의 노림수다. 진정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의 킹덤을 사모하지 않는 한 인간 욕망의 패권적 갈등은 끝이 없을 것이다.

맺는 말

선교사는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일을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나의 킹덤(Kingdom)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헌데 선교사가 한 곳에 정착하여 피선교지 사람들로 하여금 종신토록 자기를 의존하며 돕는 역할만을 하도록 안배하기 쉽다. 그것은 또 다른 양태의 바벨탑이다. 선교사는 개척자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한 곳에 정착하면 안 된다. 사도바울은 끝까지 개척자로서 살았다. 그는 결코 자기 왕국을 세우지 않았으며 한 곳에 안주하지도 않았다. 바울은 가는 곳곳마다 말씀으로 주의 제자들을 양육하며 그들 중심으로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때가 되면 과감히 위임해주고 미지의 땅으로 나아갔다. 허드슨 테일러도 이러한 패턴을 따랐다. 오늘 한국선교는 어떠한가? 혹시 여기저기 수많은 산봉우리들처럼 우리들의 킹덤들이 세워지고 있지는 않는가? 선교는 개척의 연속이어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4P원리를 사역에 실제적으로 접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선교가 더 역동적이고 속도감을 내기 위해서. 그리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해서! 이메일: jrsong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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