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현대선교는 선교사와 후원교회 그리고 선교본부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선교사역을 추진하는데 있어 효과적인 선교를 이루기 위해서는 뭔가 새로운 혁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지금껏 해왔던 개인이나 개 교회 중심의 아마추어식(Amateur) 선교를 지양하고 전문적인 선교사 파송기관과 협력을 통해 좀 더 프로적인(Professional)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시대상황(Context)이 급변하고 있다. 익히 아는 바 선교지는 한국 문화권의 연장이 아니다. 목회도 아니다. 그런데도 오늘의 선교를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 안일하다. 선교가 별 것인가? “그냥 해외 나가 전도하고 봉사하면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다. 선교를 단순히 목회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것은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다. 문화가 다른 토양의 여러 족속을 선교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더 이상 근시안적 선교를 지양하고 겸손함으로 오랜 노하우를 가진 서구 선교를 거울삼아 토착화, 그 방안 중 하나로 선교의 “거룩한 삼각관계(Holy Triangle)”라는 구조를 들 수 있다. 이는 선교사와 후원교회 그리고 파송단체가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한 틀 속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선교사(a missionary 宣敎師) 선교사는 사도라는 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즉 복음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보냄을 받은 자란 뜻이다. 선교사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바로 소명(Calling)과 사명(Mission)이다. 소명(召命)이란 어떤 특정한 일과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누구의 부름을 받은 목숨이며 사명(使命)이란 누구의 부탁을 받고 심부름하는 목숨이라는 뜻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기가 맡은 일에는 목숨을 걸고 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명의식은 반듯이 사명감에 선행된다는 것이다. 소명의식이 없거나 있더라도 망각하면 그의 하는 일은 사명감이 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선교사역은 결코 낭만적이거나 쉽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선교사는 견디기 힘든 수많은 심리적, 영적, 육체적, 환경적 압박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확고한 소명의식이 결여되면 선교지에서 찾아오는 역경과 시련을 이겨낼 수 없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는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가능하면 목회의 길에 들어서지 말고 일단 선택했으면 생명을 걸고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문화권에 목회자로 부름 받은 것도 이러할진대 선교사는 오죽하겠는가?
아무튼 선교사로 파송 받은 자는 영적 전선의 최전선에 있게 된다. 이때에 비록 낯선 곳에 홀로 있다 할지라도 망각해서는 안 될 일은 자신이 공적기관으로부터 후원과 파송을 받은 유기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선교부의 지시에 무조건 맹종해서도 안 되지만 반대로 자신을 파송하는 지교회의 바램이나 선교본부의 전략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지휘부를 무시한 독불장군식의 선교는 성경적이지도 않으며 많은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후원 교회(Sending Church) 일반적으로 본국에 있는 후원자나 교회는 선교를 이원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경기장에서 목회자들은 뛰고 성도들은 스탠드에 앉아 응원하는 격이다. 선교란 전방에 있는 선교사의 몫이고 후원자는 단지 뒤에서 기도와 헌금으로 밀어준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사고의 틀은 옳지 못하며 선교를 위축시킨다. 선교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하시되 헌신자들을 통해서 하신다. 성령이 선교의 주체이다. 그러므로 후원이란 말은 어패가 있다. 오직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각기 자기가 가진 옥합을 깨뜨릴 때 그 자체가 선교이다. 중요한 것은 전방에 나가 있는 선교사와 후원교회가 일체감 있게 동역하는 것이다. 선교사가 갖는 아픔과 짐을 같이 나누며 함께 전진하는 것이다. 많은 후원교회들이 후원금 보내는 것 외에 너무 무관심 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어떤 교회는 필요 이상으로 선교사를 달달 볶기도 한다. 매달 사역보고를 하라는 것이다. 전쟁터에 나가 있는 전사가 람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매달 승전보를 전하겠는가? 후원교회는 선교사를 인도하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를 편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할 때 선교사는 삼중의 스트레스 속에서 자기 페이스(pace)를 잃을 수도 있다.
선교본부(Mission Headquarters) 선교본부는 이 땅에 하나님의 선교가 신속하고 원활히 펼쳐질 수 있도록 선교사와 후원자 사이에서 교량적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주된 목표는 사역의 극대화이다. 이를 위해 지혜를 짜고 힘을 모으며 여러 관계자와 연대한다. 본부는 결코 선교사를 다스리는 상급기관이 아니라 그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섬기는 행정기관이다. 그 기능은 크게 인사, 교육, 재정, 홍보 분야로 나눈다. 이 업무는 전문성, 다양성, 창조성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선교본부에는 유능한 실무자들이 선교사를 파송하는 이상으로 보강되어야 한다.
한국선교의 가장 큰 아킬레스(Achilles)건은 선교본부 사역에 대한 인식도가 너무 낮은데 있다. 그 여파로 대다수 선교부들은 정보나 행정 그리고 재정에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구심점을 잡고 지휘를 해야 할 본부사역이 부실하니 선교가 짜임새 있게 될 리가 없다. 심장이 없는 몸통을 가정할 수 있을까? 전략 사령부가 없는 전선은 어떻게 될까? 문제는 이 사역의 중요성, 특수성, 시급성을 알면서도 우선순위에서 늘 뒤로 밀린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거룩한 삼각관계(The Holy Triangle)라는 선교적 구도 속에서 기관별 실태를 살펴보았다. 첫째는 선교사들이다. 의외로 많은 선교사들이 ‘나홀로’ 사역을 하고 있다. 그들은 소속 선교부가 아예 없는 자도 있고 설령 있다 해도 본부가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후원 교회들이다. 적지 않은 교회들이 전문성이 결여된 체 직접적으로 선교를 하고 있다. 곁에 파송기관이 있음에도 의뢰하기를 꺼려한다. 그렇게 하면 내 교회가 선교의 중심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선교본부이다. 한국에는 약 120개의 자생 선교단체가 있다. 그 중 전략본부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곳은 1/10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본부사역이 취약한 것은 가치 인식도가 낮고 지원이 약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은 한인 열방선교! 이제는 미래의 공동 과업을 위해 선교적 구도를 좀 더 짜임새 있게 실제화 해야 한다. 그것은 릭 워렌(Rick Warren) 목사가 주장하는 “목적이 이끄는 교회”처럼 선교도 사람의 소견보다 선교적 목적에 따라 거룩한 삼각관계의 유기적 조합으로 엮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와 후원교회 및 선교본부가 맞물리되 서로 엇박자를 내기보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돌아갈 때 견실한 내일의 선교를 기약할 수 있다. 이메일: jrsong0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