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한 달째가 되간다. 하지만 우리 조국 한국에는 여전히 아픔이 계속되고 있다. 이 여진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해외에 있는 모든 한민족에게까지 전달되고 있다. 원컨대 속히 이 어두움의 터널을 빠져나와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향한 희망찬 발걸음이 띄어지기를 기대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분야에 기본과 상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관치(官治)나 인치(人治) 사회가 아니라 메뉴엘(manual)에 따른 사람 중심의 사회정의가 도처에 흘려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주의 법도이다. 한국선교도 마찬가지이다. 사역의 기초가 불분명하고 사람 눈치를 보는 사역은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다. 이는 언제 세월호처럼 무너질지 모른다.
한국선교의 기초가 되는 신앙원리는 무엇인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다. 이를 현상적으로 보여준 곳이 있다. 서울 합정동 양화진 있는 외국인 선교사 묘역이다. 여기에는 조선에 와서 선교하다 돌아가신 선교사와 평신도들의 묘가 167기나 있다. 그렇게 크지 않은 한반도에 지난 129년 동안 3000여명의 선교사, 비공인 1220여명이 와서 오늘의 한국교회 터를 놓았다. 그들은 한마디로 우리 민족을 위해 썩어지는 밀알이 된 것이다. 그 기초 위에서 오늘의 한국교회와 한국선교가 있다. 따라서 이렇게 민족적으로 어렵고 시대적으로 산적한 난제들에서 우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보다 선교의 원천인 주님 앞에 설 필요가 있다. 나아가 예수의 이름으로 자신들을 산화한 믿음의 선진들을 생각하며 우리를 추스려 보아야 한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내가 가는 방향이 틀리지는 않는지?” 내 사역은 영적으로 견고한지?
그런 점에서 여기 조선 땅에서 숭고한 정신으로 살다간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다. 그녀는 루비 켄드릭(Ruby R. Kendrick, 1883-1908)이라는 여 선교사이다. 루비 켄드릭은 미국 텍사스 남감리교회의 독실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07년 9월에 남감리교회 여자 외국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조선에 왔다. 그녀는 황해도 개성에서 한국말을 배우면서 사역을 하다 24세 젊은 나이로 순교했다. 조선에 온지 불과 8개월 만이다. 그녀는 "만일 나에게 천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죽기 전 부모님께 보낸 한통의 편지는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이곳 조선 땅에 오기 전 집 뜰에 심었던 꽃들이 활짝 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루 종일 집 생각만 했습니다. 욕심쟁이 수지가 그 씨앗을 받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니 너무나 대견스럽군요. 아마 내년 봄이 되면 온통 우리 동네는 내가 심은 노란 꽃으로 덮여있겠군요. 아버지 어머니, 이 곳 조선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습니다.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 년이 지나면 이곳은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복음을 듣기 위해 20km를 맨발로 걸어오는 어린 아이들을 보았을 때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히려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예수님을 영접한지 일주일도 안 되는 서너 명이 끌려가 순교했고, 토마스 선교사와 제임스 선교사도 순교했습니다. 선교본부에서도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순교를 할 작정인가 봅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국인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부두에서 저를 끝까지 말리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제 눈앞에 어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뒤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으로 이제 내년이면 온 동네가 꽃으로 가득하겠지요.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 내겠지요. 저는 이곳에서 작은 씨앗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씨앗이 되어 이 땅에 묻히게 되었을 때 아마 하나님의 시간이 되면, 조선 땅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그들도 여러 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조선을 향하는 저의 열정이 아니라,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녀는 아직 한국말을 하지 못했지만 아이들과는 사랑이란 언어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재미있게 선교사역을 시작하던 중 이듬해인 1908년 6월 9일에 병이 난 것이다. 당시 개성에는 서양병원이 없었으므로 서울 제중원으로 급히 옮겼으나 열흘 뒤인 6월 19일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녀는 죽기 전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회원들에게 열씩, 스물씩, 쉰씩 아침저녁으로 한국으로 나오라고 전해주세요”라고 하였다. 그녀의 생은 한반도에서 무슨 사역을 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았다. 하지만 그녀는 생명을 바쳤다. 이 죽음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수십 배의 선교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녀의 마지막 편지는 바로 텍사스 웹윗청년회의 연합대회 기간 중에 배달되었다. 편지를 읽은 청년들은 그녀의 뜨거운 선교열정에 큰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뒤 3년 동안 텍사스 웹윗청년회에서는 20명이 선교사로 자원했고 이들 중에서는 한국으로 파송된 이들도 많이 있었다.
이처럼 믿음의 제사는 사역을 얼마나 많이 오래했느냐에 비례하지 않는다. 헌신자의 순전한 믿음과 태도에 달려있다. 성령께서 그것을 쓰시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양화진의 Ruby R. Kendrick같은 선교사 외 헌신한 이름 모를 수많은 주의 종들이 있었다. 한국교회는 그들의 땀과 눈물과 생명 위에 서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인본주의와 쾌락 그리고 물질주의와 신앙적 절대기준이 무너져 가는 이때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생각을 어디에 놓아야 하는가? 우리는 더 낳은 선교나 목회를 위해 출중한 전략을 개발한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이론과 방법들도 요구된다. 그러나 아무리 천기(天氣)를 읽는 제갈량(諸葛亮)같은 지략이 있고 첨단의 무기로 장착했다 할지라도 이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십자가의 믿음으로 서 있지 아니하면 무용하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주의 사명을 위해 우리의 생명까지 담보할 수 있는 신앙적 기초와 원리가 있다면 무엇인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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