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 750만 디아스포라 한민족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이렇게 민족적으로 전체가 아파하는 때에 조국을 떠나 있는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선교사이니까 이민자이니까 눈앞의 자기 일에만 몰입해도 되는 것인가? 진정 조국이 없이는 우리의 설 자리도 없다. 이제 모두 마음을 가라 앉히고 통회하며 하나님께 탄원해야 한다. 그간 우리는 민족과 국가 앞에 선지적 사명과 제사장적 직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참에 한국교회 선교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한 사역이 없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의식한다는 것은 영적 원리를 우선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선교를 내다보며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첫째는 진리를 사랑하는 정신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영원하며 불변해야 하고 인간의 생명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예수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다. 따라서 진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사모하고 추구함이요 그 진리에 인생의 최고 가치를 두고 사는 것이다. 교회사를 보면 베드로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도들이 진리이신 예수께 인생을 걸었다. 저 유명한 순교자 폴리캅을 비롯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진리를 좇았다. 여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젊음을 송두리째 불태운 한 사람이 있다. 짐 엘리옷(Jim Elliot)이다. 그는 휘튼 대학을 졸업한 후 세상의 미련을 버리고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리고 그 인생 꽃을 피우기도 전인 나이 29살 때인 1956년 1월 8일 에콰도르 쿠라라이 강변에서 순교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그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며 진리를 목말라했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 마른 막대기 같은 제 삶에 불을 붙이사 주님을 위해 온전히 소멸하게 하소서. 나의 하나님, 제 삶은 주의 것이오니 다 태워주소서. 저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주 예수님처럼 꽉 찬 삶을 원합니다.” 선교란 이처럼 예수님으로 자기를 채우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것을 위하여 유한한 것을 버리는 것이다. 더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을 던지는 것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하여 덜 가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굳이 순교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후자는 전자의 귀결일 뿐이다.
둘째는 도전하는 개척정신이다.
선교는 항상 개척일 수밖에 없다. 선교사는 개척해서 안정을 이루면 현지인에게 이양하고 또 새로운 개척지로 떠나야 한다. 한 곳에 터를 잡고 자기 성을 구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리므로 프런티어 정신없이는 선교를 잘 할 수가 없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면서 기독교 저술가였던 폴 투르니(Paul Tournier)는 인간의 본능을 두 가지로 설명했다. 안정을 추구하는 정착 본능과 새 것에 도전하는 모험본능이 있다고 했다. 대개 인간은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꿈 많은 청소년시절에는 저마다 찬란한 이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학 졸업반이 되면 취직문제로 전전 긍긍한다. 하루 세끼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비전을 포기하고 안정위주로 진로를 선택한 자들이 많다. 죽도록 희생하며 섬긴 지체들이 이러할 때 비애감을 느낀다. 역사는 창조적 소수에 의해 이끌어져간다. 창조적 소수란 개척정신을 가진 자들이다. 세상 어느 분야든 개척자들이 없는 곳에는 역사의 진보가 없다. 그들은 결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셋째는 하나 되는 연합정신이다.
석양에 떠있는 무지개는 아름답다. 무지개는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일곱 색깔로 구성되어 있다. 만일 무지개가 한 단색이라면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을 것이다. 무지개에는 다양한 색깔이 있고 그 색깔들이 한 몸체 안에서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왜 연합을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 한 지체이기 때문이다. 만일 한 몸 안에 있는 지체들이 유기적인 교통함도 없이 각각 따로 놀 때 그 몸은 심각한 문제에 놓이게 된다.
성경은 “진리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21). 성도들의 연합은 하나님의 뜻이다. 사단이 역사하는 곳은 분열이다. 연합은 결코 통합이 아니다. 교회 연합은 그 본질상 다양성 속의 통일(Unity in Diversity)을 추구한다. 파스칼은 그의 명저 ‘팡세’에서 말하기를 통일성이 없는 다양성은 혼란(Confusion)을 불러일으키고, 다양성이 빠진 통일성은 독재(Tyranny)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연합의 원리는 무엇인가? 1)비전의 연합이다. 2)예수 생명의 연합이다. 3)서로 보완해주는 형제의 연합이다.
맺는 말
한국의 세월호 참사로 가슴이 먹먹하고 화가 치민다. 슬픔과 울화로 인하여 우울증 환자가 늘어난다고 한다. 문제는 침몰하고 있는 것이 어찌 세월호 뿐이겠는가? 고속성장에 가려진 우리 사회 허실한 부분이 어디 한두 곳 뿐이겠는가? 한국교회 그리고 선교현장은 어떠한가?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가 아니면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가? 우리는 냉정히 돌아보아야 한다. 모든 과업은 정신에서 출발한다.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운명을 낳는다. 그러므로 선교적 정신세계는 결과를 좌우한다. 이에 21세기 요구되는 선교적 DNA란 무엇인가? 이는 진리를 사랑하는 정신이요, 도전하는 개척 정신이며, 하나 되는 연합정신이다. 이 고귀한 정신적 DNA를 나로부터 고양하며 나아가 피 선교지민에게 이식하는 선교이어야 한다. 세월호처럼 우리 사역이 침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메일: jrsong0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