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21세기 이 시대에 과연 선교 완성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지금의 상태로는 아무래도 회의적이다. 모두가 중심이 되는 각개전투 양상으로는 거친 도전들을 넘을 수가 없다. 이미 몇몇 선교지에서는 사역 한계의 임계점(臨界點, Critical point)에 도달해 있다. 이제 우리는 뭔가 혁신적인 방법으로 선교 패러다임(Paradigm)을 바꾸지 않는 한 이 세상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없다. 주된 관건은 공동의 목표를 향한 팀 사역이다. 앞으로 우리 선교가 연합하여 어떻게 팀워크를 발휘하느냐에 따라 역사적 평가도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선교는 오케스트라, 축구팀, 그리고 군대의 작전과 같은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홀로 종횡무진 뛰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지휘자를 중심으로 팀워크를 이룬다는 것이다. 북치는 사람, 축구선수, 총을 든 병사는 아무리 의욕이 불일 듯 일어난다 해도 맘대로 행동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연주나 작전을 망치는 것이 된다.
시대의 전쟁사를 보면 흥미롭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있기 전만해도 인간은 힘과 무예가 뛰어난 용장을 의존했다. 이들 장부들은 일당 천, 만 이상을 감당했다. 삼국지의 조자룡(趙子龍)은 주군 유비의 아들을 가슴에 품고 조조군 100만 속을 단기필마(單騎匹馬)로 헤쳐 나갔다. 이는 비록 소설이지만 풍자하는 바가 크다. 군졸은 군졸이다. 그들은 장수가 죽으면 낙엽처럼 흩어졌다. 이처럼 고대의 전쟁은 팀워크보다는 힘센 장수 위주였다. 그러나 현대는 아무리 람보 같은 신출귀몰한 자가 있다 해도 총 한방이면 끝난다. 지금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하고 있다. 이 작전을 위해 땅, 바다, 하늘 그리고 이억 만리 떨어진 미 국방성에서 임무가 수행되고 있다. 그야말로 지역을 뛰어넘은 글로벌한 입체작전이다. 세상 전쟁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영적 전쟁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이것은 시작부터 시공간을 뛰어넘어왔다. 더욱이 현대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촌이 하나의 선교지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킹덤(God’s Kingdom)을 위해 지역과 국가를 초월하여 대 연합적인 사역을 펼쳐야 한다.
팀 사역에 대한 최고의 본은 성경이다. 하나님 자신이 삼위일체라는 팀워크로 존재한다. 예수님께서도 문제 많은 제자들과 함께 일하셨다. 그들은 사역에 도움은커녕 때로 걸림돌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용납하시며 긴 안목으로 선교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셔서 그들로 하여금 선교의 유업을 잇게 하셨다.
바울도 확실한 팀 사역자였다. 그의 행선을 보면 홀로 움직이는 때가 없었다. 디모데, 마가, 누가 외 여러 일꾼들이 그 주위에 있었다. 로마서 16장에는 그와 동역했던 많은 일꾼들이 언급되고 있다. 바울 선교의 열매는 팀 사역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이처럼 선교에서 팀워크는 시너지 효과를 나타낸다. 이는 능률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곱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각 사람이 홀로 일을 하면 아주 제한적이나 10명이 풀링 시스템(Pooling System)으로 힘을 합치면 10배가 아니라 100배의 효율을 기대할 수 있다.
사실 사역에 있어 팀 사역의 중요성과 그 가치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을 한다. 그런데 이를 잘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1992년 선교한국에 주 강사로 섬겼던 Thomas Wang목사님이 명쾌하게 제시했다. 그것은 “누가 이 사역에서 중심이 될 것인가?(Who is a center in our ministry)”에 대한 헤게모니(hegemony 패권:覇權)적 싸움 때문이었다고 했다. 왕 목사는 이것 때문에 우리 기독교가 2000년 역사이래로 얼마나 많이 사탄에 이용되어왔으며 힘을 소진했는지 탄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사실 여기저기 대형교회와 교단 총회를 들여다보면 누가 크며 중심이 되느냐에 대한 치열한 쟁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러한 쟁론은 함께 팀워크로 힘을 발휘할 수 없도록 유도하는 사탄의 지배논리이다. 사탄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조직적이고 치밀하다. 사탄은 누구보다 우리 인간의 약점을 꿰뚫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선교사들은 일반적으로 개성이 강하다. 그래서 꼬리보다 머리가 되기를 원하며 누군가에게 간섭 받는 것을 힘들어 한다. 이에 팀을 이루어 사역하면 자기 고유영역이 제한되고 독창적인 색깔을 마음대로 드러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사역 자체도 버거운데 때로는 동료 때문에 심적 부담을 안을 수도 있다. 그래서 100명의 선교사가 합하여 1개의 빌딩을 짓기보다 각각 100개의 자기 텐트를 치려 한다. 자기가 친 텐트는 부담이 덜하고 신속하며 중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늘 피선교지에 요구되는 것은 100개의 텐트보다 1개의 빌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텐트는 오래갈 수가 없다. 바람만 세게 불어도 날아가 버린다. 그렇다면 이러한 텐트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무튼 사역에서 ‘홀로서기’란 위험하다. 성경적이지도 않다. 효율성도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해결할 길이 없다. 비록 팀 사역이 간단치는 않지만 그래도 독립사역의 약점을 상당수 커버하는 대안이다. 속담에 “한 사람의 100보보다 100사람의 한 보가 낳다”는 말이 그저 생겨난 것이 아니다.
모진 풍파에도 끄덕 없는 시온 성을 쌓으라! 이것이 21세기의 시대 논리라면 이제 우리는 대동단결하여 팀 사역으로 나가야 한다. 본시 우리 인간은 이것저것 할 만큼 능력이 많지 않다. 인생이 길지도 않다. 일평생 한 가지만 붙들고 씨름해도 정상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1인 다역(多役)보다 1인1역으로 분업화, 전문화, 조직화되어 팀 사역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간 우리의 관행처럼 저마다 자기 집을 지으려 할 때 한국선교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님의 집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마음을 비울 수 있다. 이에 사역자는 종말론적 시각으로 부르심의 소명을 따라 은사와 준비됨에 맞게 역할을 하면 된다. 보험의 원리처럼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돕고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쉬운 것부터 하나씩 시도하면 된다. 먼저 선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고 현지인과 함께 팀 사역을 이루며 나아가 타 기관 선교사들과 가능한 선에서 연합을 시도해 가는 것이다.
내가 중심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게 하면 모든 갈등은 사라지게 되어있다.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이메일: jrsong0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