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선교사(A missionary 宣敎師)

송종록 목사

(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현대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선교의 대중화 시대가 되었다. 선교에 열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사역지를 쉽게 오고 갈 수 있다. 이에 많은 교회들이 여러 모양으로 선교를 하고 있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리되지 못한 문제들도 속출하고 있다. 그 중 하나 선교와 선교사에 관한 혼선이다. 요즈음 교회에서 선교란 말이 너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선교와 무관하면서 남선교회 여선교회라 지칭하는 것이 바른가? 더욱 선교사란 직함도 옛날과 달리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깊은 영적 고찰과 공동체의 인준 없이 쉽게 선교사란 명칭을 부여하거나 혹은 자칭하고 있다.

물론 선교사는 몇몇 특별한 단체나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선교에 직, 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는 모든 이를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광의적 이해는 교회의 질서와 선교사역 전선을 혼탁하게 만든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선교학자인 Stephen Neill에 의하면 “만일 모든 것이 선교라면 아무것도 선교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선교사라면 아무도 선교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 학자에 의하면 선교와 선교사를 좁은 의미에서 특수적 영역으로 해석했다. 어느 것이 맞는가? 둘 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 선교 장래를 위해서는 협의적 관점에서 선교와 선교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란 누구인가? 일반적으로 기독교 선교사(A missionary 宣敎師)는 성삼위 하나님에 의해 택정함을 입고 공교회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일정한 훈련과정을 거처 타 문화권이나 특정 영역에 보냄을 받은 자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통계에 의하면 2013년 12월까지 255개 교단과 선교단체에서 정식으로 파송 받은 한인 선교사 수는 169개국에 25,745명이다. 이 외에 개 교회 차원에서 파송한 자와 소속기관이 없이 자칭 선교사라고 하며 독립적으로 사역을 하는 사람들도 상당 수 있다. 이 수는 어림잡아 6000-7000명 정도이다.

문제는 선교사로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 자격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 선교지에서 이단들을 포함해 양의 탈을 쓴 삯군 목자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이들은 공식적 기관을 통해 파송 받은 자보다 독자적으로 나온 사람들 중에 더 많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대체적으로 은둔하며 현지 문화나 타 선교기관 등을 고려하지 않고 독불장군식 행동을 하기 일쑤다. 이러한 좌충우돌(左衝右突)식 활동은 연합전선을 펴야 할 사역현장에서 다른 사역자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만일 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면 그는 선교사와 한국인의 대표 격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 울 뿐만 아니라 조국의 명예를 실추시키며 선교지 문을 닫히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잔잔한 호수에 떨어지는 돌 하나의 파문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호수 전체로 퍼지게 된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당사자이든 파송하는 기관이든 신중하며 정직해야 한다. 선교사는 공인이며 교회의 일원이다. 따라서 아무리 선교적 열정이 불탄다 해도 절차와 질서를 무시한 채 영적 공동체에서 이탈해서 독단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 교회란 본시 나 홀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통치를 받는 거룩한 영적 공동체”이다. 한 몸에 여러 기관이 있듯 모든 성도는 무형교회와 유형교회의 일원이다. 이 점에서 선교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에 급한 성정을 지닌 바울도 독자적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안디옥공동체의 파송을 받았다. 아무튼 선교사는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아 일정한 훈련과정을 통해 교회에서 인준되어야 하며 사역적으로 사명감을 가진 자라야 한다. 물론 제도권 안에 있다고 다 옳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공동체 안에 있으면 서로 검증하며 연합하게 되고 문제발생 시 대책을 강구할 수가 있다.

선교와 선교사! 선교는 보통명사이고 선교사는 고유명사이다. 이는 선교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참여한 자들을 모두 다 선교사라고 말할 수는 없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의료업계와 비슷하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사 외 간호사, 약사, 행정요원 등 다양한 사람이 각기 자기 전문성을 합쳐 선을 베푼다. 이때 의료행위에 참여했다고 해서 모든 이를 의사라고 부르지 아니한다. 의사는 국가가 지정한 일정한 교육과정과 시험을 거쳐 공식적 인준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가정해보라. 만일 우리 사회에 공인되지 않는 의사나 약사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활개를 칠 때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하며 혼란스럽겠는가? 선교사도 마찬가지 경우가 되어야 한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이다. 이를 수행함에 있어 선교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헌신자들을 필요로 한다. 진정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각 분야에 전문적 실력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기독교는 만인 제사장주의이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존귀하며 평등하다. 그러기에 주님의 평가는 결코 외적 신분에 있지 아니하다. 간판이나 계급장에도 있지 않다. 선교에 있어 선교사 이름으로 사역했다고 상이 큰 것도 아니요 일반 신분으로서 참여했다고 상이 적은 것도 아니다.

따라서 선교에 열심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신분으로서 이를테면 집사나 권사로서 장로나 목사로서 헌신하면 된다. 굳이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런 것이 아름답다. 여자가 필요 이상으로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를 때 오히려 역겨울 수 있다. 그저 대외적 이미지나 계산된 목적을 위해 선교사란 이름을 도용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나아가 이는 사역현장을 어지럽게 하며 자기에게도 오히려 부덕을 낳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능력자보다 바른 자를 쓰신다. 하나님 앞에서 존재(To be)적 실존이 과업(To do)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이메일: jrsong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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