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측면에서 본 수정교회(Chrystal Cathedral)

송종록 목사

(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지난 반세기를 풍미했던 로버트 슐러 목사가 금년 4월 2일 별세했다. 향년 88세이었다. 그는 미국의 메가 처치 가운데 하나였던 수정교회의 창립자이자 유명한 TV설교가였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 앞에 서야 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비록 사람이 가도 교회는 주님 오실 때까지 남아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데 그와 함께 수정교회 역시 사라졌다는 데 유감이 있다. 미국교회의 자존심이자 예술적 가치가 큰 예배당이 어찌하여 팔리고 말았는가? 그것도 건축한지 불과 32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됨은 무슨 연고인가? 이는 비단 수많은 교회 중 하나이지만 가벼이 넘길 수 없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에서 비극을 배우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것이라 했다. 시대적으로 어려운 때에 우리 기독교회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 선교적 시각으로 분석하며 제2, 제3의 이런 교회가 나오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1. 수정교회의 역사 3. 로버트 슐러(Rev. Robert Schuller) 목사는 1955년 자동차 영화관 스낵가게 지붕에서 Drive-in-church(교회)를 시작했다. 긍정적인 사고의 힘을 강조한 그의 설교는 많은 호응을 얻으면서 TV 설교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권능의 시간(Hour of Power)”이라는 그의 설교방송은 한 때 130만 명이 년 예산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이를 계기로 슐러 목사는 교회 건물을 유리로 짓도록 했고 이름을 수정교회(Crystal Cathedral)로 명명했다. 교회는 1,800만 달러를 들여 3년간의 공사 끝에 1980년 완공되었다.

필립 존슨 이 설계한 중앙 성전에는 사각형의 유리 1만664장으로 볼트 하나 없이 특수 접착제로 부착했으며 건물은 8.0강도의 지진이 와도 끄떡없게 제작되었다. 내부에는 세계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 중 하나가 설치되었다. 바닥을 제외한 벽과 지붕 전체를 유리로 지은 이 세계적인 건물은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 불신자들이라도 구경하고 싶은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2006년 슐러 목사가 은퇴한 후 교회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했고 2010년 10월 5,500만 달러의 빚을 갚지 못해 파산신청을 했다. 결국 수정교회 건물과 캠퍼스의 소유권은 2012년 6월 9일 천주교 오렌지카운티 교구로 넘어간다. 5,750만 달러에 팔린 것이다. 20세기 후반 미국 개신교의 자존심이자 얼굴이며 세계교회의 선두에 섰던 수정교회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5. 2. 수정교회의 몰락 원인 수정교회의 주된 몰락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는 신학적인 요인이다. 그는 적극적인 사고(Positive thinking)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노만 빈센트 필 목사의 계승자이며 그 스승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세상에 지치고 소망 없는 사람들이 교회까지 와서 죄와 십자가의 설교로 눌림을 받아야 되는가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위로와 힘을 얻도록 성공한 영화배우, 운동선수, 미술가, 음악가, 사업가, 군인, 소설가, 노벨상 수상자 등 각 분야에서 최고를 달성한 명사들을 간증자로 세웠다.

설교 의 내용도 긍정적 사고로서 야망을 이루라는 것이 중심이었다. 그리고 매년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때는 생동감 있는 호화무대를 만들어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에 존 파이퍼, 존 맥아더 등 개혁주의권 목회자들은 입장을 달리 했다. 슐러 목사가 외쳐온 “성공”의 의미는 성경과 다르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기독교의 본질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비록 인간이 듣기 거북해해도 교회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려 오신 예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기독교의 핵심진리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치될 수 없다. 복음의 절대성이 가려진 선포는 인간의 입맛에 맛을 지는 몰라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기대할 수는 없다.

둘째는 교회세습과 리더십 이양이다. 슐러 목사는 만80세까지 담임목사로 있다가 2006년 은퇴하면서 그의 아들인 로버트 안토니 슐러(Robert A. Schuller) 목사에게 담임을 인계하였다. 그러나 완전한 은퇴라고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교회 조직에서 운영실권을 가지고 있는 ‘이사회의 이사장’으로서 교회의 모든 대소사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아들인 안토니 슐러 목사가 2년 간 담임을 맡았지만 그의 영역은 제한적이었다. 그는 교회개혁을 둘러싸고 그 아버지가 중심인 이사회와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08년 슐러 목사는 아들과의 갈등이 심해지자 그를 담임목사 직에서 해임시킨 후 그의 장녀 Sheila Schuller Colemam을 후임자로 세웠다. 이렇게 가족 간의 내분은 교회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마침내 슐러 목사는 2010년 7월, 만 83세가 되어서야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교회 형편이 회생불가 상태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이로서 슐러 목사의 50년간의 그 ‘빛나던’ 목회사역은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끝이 나고 말았다. 참으로 애석하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세습을 하는가? 피땀 흘려 일군 업적을 아무한테나 줄 수 없다는 소유욕과 나아가 은퇴 후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이다. 재벌들의 특징이 그러하다. 하지만 교회는 이익집단이 아니다. 주님이 교회의 머리이고 성령께서 운행하신 곳이다. 사람이 설치면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가 나타나지 않는다. 셋째는 수직선교를 등한시 한 것이다.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다. 어둠의 세력과 싸우는 전투함이어야 한다. 가진 자들끼리 쾌적한 자리에서 공연을 관람하며 여유작작(餘裕綽綽)할 때가 아니다. 선교적 안목으로 수평적 그리고 수직적 선교에 힘을 쏟아야 한다. 특히 자녀 세대들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일은 적당히 해서 될 수 없다. 만약 크리스털교회가 최고급 건물, 사회적 명사, 최고의 음악, 웅장한 행사, 화려한 가운 대신 차세대를 예수님의 제자로 키우는 일에 집중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를 교회의 중요 사역과 결정권 자리에 나오게 해야 한다. 그간 수정교회는 슐러 목사 세대들이 교회안내, 주차관리, 서점봉사, 예배주관, 이사회 등 교회 행사를 거반 주관했다.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보호만 받고 활동이 없으며 결정권 자리에 서지 못할 때 결코 성장할 수가 없다. 화란 개혁교회는 각 세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주요한 결정을 같이 하고 공동의 책임을 진다. 왜 대부분 교회들이 모든 기득권을 일세대가 갖고 젊은이들은 따라오게만 하는가?

맺는 말 슐러 목사는 복음주의 교단인 미국개혁교회(Reformed Church in America) 목사로서 평생 한 길을 걸어왔다. 그는 어떤 설교자들처럼 재산이나 이성문제로 실족하지 않았다. 적극적인 사고를 강조했지만 누구도 그를 교리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그는 한 시대를 이끈 영적인 거장이었으며 교회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많이 끼쳤다. 하지만 역사는 냉엄하며 결과론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본 교회의 몰락은 우연히 발생된 것이 아니다. 이미 살펴본 바처럼 신학적 기조에서 복음의 절대성보다는 상대적 인간성공에 집착한 면이 강했다. 또한 교회세습과 리더십의 이양 면에서 인간의 탐심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차세대를 양육하고 그들을 세워 교회 전면의 봉사나 결정권 자리에 나아오게 하지 못했다. 이제 기독교회는 크리스털교회를 아픈 마음으로 거울삼아 더욱 건강한 교회로서 발도움해야 한다. 그것은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도 옛 수정교회당은 미국교회를 대변하듯 햇빛에 찬란히 반짝거리고 있다. 속이 비어있는 채로! 이메일: jrsong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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