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권위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말에 두 번 나타나며, 또한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도 두 번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의 주제가 되는 단어가 바로 권위입니다. 우리도 권위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합니다. 예컨대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권위, 또한 직장에서는 상사의 권위를 말합니다. 이렇듯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권위를 가지기도 하며, 또한 이런저런 권위 아래 놓이기도 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권위는 우리와는 다릅니다. 마28:18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헬라어로는 권세나 권위가 똑같은 단어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와는 달리 예수님의 권위는 절대적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모든 면에서 절대적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려 들지를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박해를 받으셨습니다(27-28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수님의 권위는 절대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며, 예수님을 박해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우리의 권위에 도전하며,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고난주간의 첫째 날,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둘째 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심판하셨습니다. 이제 셋째 날,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처럼 예루살렘에서 나가셨다가, 다시금 예루살렘에 들어오시곤 하셨습니까? 유월절을 맞아 세계 각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성 안에서 거처를 마련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밤에는 성 밖으로 나갔다가 낮이면 다시 성 안으로 들어오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성전에서 거니셨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거니신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전날 자신이 심판하셨던 성전의 광경을 다시금 확인해보시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그들의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이 보낸 공회의원들이 예수님에게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받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막11:28)
둘째 질문입니다. “누가 이런 일할 권위를 주었느냐?” 무슨 뜻입니까? “성전을 관할하는 것은 우리의 권위이다. 그런데 우리 중 아무도 너에게 이런 일할 권위를 준 적이 없다. 그러니 너는 지금 불법을 행하고 있다” 이런 뜻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에게서 시달림을 받고 계십니까?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신 예수님에게도 대적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박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낙심하지 맙시다. 그럴수록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박해를 이기셨습니다(29~32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예수님은 입을 여셨습니다.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막11:29) 말하자면 예수님은 그들의 악한 의도가 밖으로 드러나도록, 그들에게 하나의 맞 질문을 던지신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막11:30). 예수님의 질문은 이러한 의도였습니다. “요한이 나에 대해 증언한 사역이 신적이냐 아니면 인적이냐?”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쐐기를 박듯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대답하라.” 눅7:30 말씀과 같이,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대답은 뻔한 것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사람으로부터다.” 그러나 그들이 선뜻 그렇게 대답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의논했습니다. 이때 사용된 동사의 시제가 미완료형입니다. 동작이 완료되지 않고 계속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지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의 질문을 던지심으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며 대적하는 자들의 박해를 이기셨습니다. 롬11:33말씀처럼 예수님의 지혜와 지식은 깊고도 풍성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계교는 예수님의 지혜 앞에서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셨습니다(33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가지신 권위는 절대적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권위로 자기를 믿는 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권위로 자기를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 다 정죄하시며 심판하십니다(막11:33).
산헤드린 곧 공회는 유대인들의 최고의결기관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은 당연히 그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머리를 맞대고 서로 의논한 결과 그들은 궁여지책으로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그러니까 그들은 살아남으려고 비겁하게 발버둥을 쳤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히 과거적이고 역사적인 것으로만 여기지 맙시다. 예수님은 살아계셔서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현재적으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절대적입니다. 그러므로 베다니의 마리아처럼 늘 예수님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리하면 살아 계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며 우리의 삶에 역사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