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걸 목사 (훌러톤장로교회)
스데반 집사는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사도로써 처음 순교자인데 그보다 먼저 집사 중에서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스데반 설교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이전에는 이스라엘 역사의 서술을 통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유대인들을 책망했다고 하면 본문에서는 직접적으로 유대인의 완악함을 책망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이 선지자들이 메시아의 오심을 증거하는 이들을 핍박하고 죽인 것을 지적합니다. 죽음을 각오한 스데반의 역설적인 모습을 통해 스데반 집사의 죽음 전의 삶, 죽을 때의 모습, 그리고 죽음후의 모습을 살펴봄으로 교훈과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행6:8-10).
스데반은 하나님의 은혜의 권능이 충만해서 큰 기사와 표적을 사람들에게 행했다고 하였습니다. 모여든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과 복음을 말했겠지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스데반과 더불어 말다툼을 했는데 스데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것을 그들이 당하지 못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죽기 전에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와서 “지난 주간에 부끄러운 삶을 산 것을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회개하는 기도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허구한 날 마귀에게 지는 삶을 살아 ‘죄송하다’는 고백이 전부라고 한다면 이런 삶은 옳지 않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으로 날마다 때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고 주님 앞에 나와서 “성령님께서 함께 하셔서 승리하게 하시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드립니다” 하는 주님을 향한 찬송과 감사가 넘쳐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스데반 집사는 죽을 때도 승리하였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스데반 집사가 받은 성령의 지혜를 이길 수가 없으니까 거짓 증인들을 세웠습니다. 모함이지요. 이러한 모함을 예수님도 수없이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스데반 집사도 모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해명하는 스데반 집사의 연설이 나옵니다. 6장 15절부터 7장 53절까지 나옵니다. 스데반은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고향과 친척을 떠나 지시하는 땅으로 가게 되는 것과 아브라함의 죽음,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내신 이야기, 이삭과 그를 통한 열두 조상의 탄생과 요셉의 이야기 등 구약 속에 나타난 예언적인 이야기들을 여과 없이 전할 때 스데반 집사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요약한다면 그들이 가장 중하게 여기는 율법과 모세를 조상대대로 거절하였다는 것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으로서는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는 것, 조상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리라고 예고했던 선지자들을 잡아 죽였고 그 후손이 너희는 그리스도가 왔을 때 그를 죽였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을 사람들의 모습이 7장 57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 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회개하는 대신에 이를 갈고 귀를 틀어막고 스데반 집사에게 달려들어 그를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내쳤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기 전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셨던 예수께서 일어서신 것을 보았습니다(행6:59).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께서 그 옆에 서신 것을 본 스데반 집사(행6:56)는 마지막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하여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자기를 돌로 쳐 죽인 사람들이 나중에 회개하고 구원 받게 될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의 죽음은 미움과 불신과 죽음에 대한 승리였음이 분명합니다.
3. 스데반 집사는 죽음 후에도 승리자입니다
사도행전 8장1절에 보면 “사울이 그의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죽은 후에 핍박이 예루살렘 교회에 크게 일어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이 사방으로 전파되게 된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들은 흩어지지 않고 우리끼리만 있기를 좋아해서 예수 모르는 사람을 만나려고도 전도하려고도 하지 않은 풍토입니다만 스데반의 죽음은 흩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행11:21에는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흩어진 이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죽음 후에도 승리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죽은 후에 우리의 죽음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전파하느냐? 믿게 되느냐? 그것이 승리의 기준이 된다고 믿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승리하면서 살았고 죽으면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부활과 용서와 사랑의 복음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죽음 후에도 흩어진 사람들이 전하는 그 결과로 인하여 더 크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킨 승리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스데반 집사도 승리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승리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주일예배 끝나고 삶의 터전으로 가서도 세상적인 욕심 다 버리고 승리하신 예수님처럼, 승리하신 스데반처럼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승리의 삶을 살다가 승리의 죽음을 맞을 수 있기 원합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도 우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복음의 메시지가 더욱 더 넓게 퍼져가는 승리의 날을 소원하면서 성령충만, 믿음 충만, 지혜충만 사랑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