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어떤 대상인가?

(잠언 1:7-9, 신명기 6:4-9)

김해근 목사 (온누리영광교회)

세계의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정해 놓은 유엔 아동권리 협약에 따르면 정부는 어린아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주어야 하고 힘없는 어린아이들을 지켜주어야 함은 물론 마약이나 성적이거나 상거래에 이용되어서도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해가 되는 노동,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부딪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아이들의 의사를 최대한 보장하지 못할 뿐 아니라(15조), 아이들만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세워지지도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시행되어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26조).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발달을 위한 교육에 저해되거나 위험한 데 방치되어 있는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32조). 아이들에게도 해로운 마약을 만들고 하고 심지어는 판매되는 데까지 이용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33조). 성적 학대는 물론 성과 관련된 활동에 아이들의 부모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믿음의 부모들은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세상에 놓아야(방치) 할까요? 이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교회 안에 있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세상의 교육방법 혹은 세상의 시스템에 맡겨 놓아야 할까요? 그리고 저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해주기를 기대하며 우리는 다만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될까요?

성경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고 그렇게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방법이야말로 세상이 해결할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이 당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첫째로 신명기 6:4-9절을 보면 자녀들에게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부지런하게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아무 힘도 능력이 없는 아이는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을 배워야 할 대상입니다. 이 명령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특별히 입시나 진학을 앞둔 자녀를 둔 부모들께서는 이 명령을 어떻게 수용하고 계십니까?

골프를 좀 칠 줄 아신다는 분이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 필드에 나가지 않으면 골프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좀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필드에 거의 매일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그 중에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이 나뉘어져 있겠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그의 삶 속에서 과연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이 비중을 골프 잘한다는 사람보다 더한 비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그냥”의 정도가 아니라 “부지런히”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열심히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것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이 말씀 마음에 새겨두고 집에 있든지 길 가든지 심지어는 잠 잘 때일지라도 거기에다가 몸 속 구석구석까지 말씀을 새기고 집구석 구석에도 말이죠.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아이가 부모로부터 하나님 말씀을 교육받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자녀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이 명령은 생명의 길입니다(잠6:23; 10:17).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명령을 싫어하는 것은 짐승과 같은(잠12:1) 미련한 짓입니다(잠13:14). 이는 자기 영혼을 경히 여기는 것(잠15:5)이요, 결국 하나님의 이 명령을 받지 않는 것은 곧 죽음입니다(잠5:33). 이 죽음을 ‘죽을까 하노라’ 우습게 여기다가 결국 죽음을 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창2:17; 3:3).

세 번째, 자녀는 아이지만 이스라엘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입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을 때 한 어린아이를 잡아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멧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18:1-10).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18:12-14).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해주시기를 바라고 데리고 올 때에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아이들에게 안수기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은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거들떠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는 주인 된 이스라엘, 하나님의 나라임을 깨닫게 해주시고 있습니다.

야곱이 숨을 거두기 전 요셉을 위해 축복하면서 유언할 때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아이 요셉이 이스라엘의 구원 곧 이스라엘, 하나님나라가 아닙니까?(창48:15-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나 아이들은 결코 작은, 그래서 그냥 지나치는 버려지는 그런 자들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에 여호와께서 밤에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자신을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하며 하나님 앞에 작은 아이임을 고백했습니다(왕상3:7).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위로하시고 힘을 주셨습니다.

아이는 결코 작은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힘주시고 능력주십니다. 그런 자를 작다 여기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 하나님을 사랑하되 부지런히 배우도록 가르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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