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책임

마태복음 18장 23-36절

조일래 목사 (수정교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전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사회 고위층의 전쟁참여, 공공봉사, 기부나 헌납 등의 전통이 강했고, 이것은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런 도덕의식은 계층 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고, 실제로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 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습니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한지 100주년이 되는 2012년 1월 13일 이탈리아의 질리오 섬 연안에서 약 4,200명을 태운 11만5천 톤급의 호화 크루즈선인 코스타 콩코르디아 호가 좌초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20여명의 사망 및 실종자와 많은 부상자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배의 선장인 52세의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씨는 승객이 탈출하기도 전에 배를 버리고 먼저 달아난 혐의를 받고 당국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100년 전의 타이타닉호 선장과 달리 승객의 구조보다는 자기부터 살겠다고 먼저 배를 떠난 이 선장에게 수많은 비난이 쏟아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입니다. 본문에서 한 주인이 일만 달란트란 거액을 빚진 종을 불쌍히 여겨 전액을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지고 있는 동료를 만나서는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주인은 심히 노하였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 비유에서의 주인은 하나님을,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종은 우리그리스도인들을 나타냅니다.

1.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망극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은혜란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호의’를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바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어찌해 볼 수도 없는 수많은 죄를 용서받은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사람처럼 우리도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길이 없는 억만가지 죄와 빚을 용서 받고, 탕감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만 달란트는 하루의 품삯을 100달러로 계산할 때 현재의 돈으로 약 100억달러로 한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돈입니다. 우리의 죄도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탕감해주시고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엄청난 은혜를 기억해야하며 깨달아야 합니다.

2. 큰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는 마땅한 큰 책임이 따릅니다.

엄청난 은혜를 입은 사람은 그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은 하나님의 기대에 부흥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은혜입은 자로서의 마땅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받은 자로서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구원의 큰 은혜를 입은 우리는 그 엄청난 은혜를 늘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자녀됨을 인하여 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기에 우리가 받은 은혜를 베풀고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마25장에 달란트 비유가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각각 맡기고 장사하여 이익을 남길 것을 기대하시는 분이십니다. 달란트의 은혜를 주셨기에 그 은혜에 대하여 열매를 맺어야 하는 당연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은혜를 주셨기에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은혜의 보답이 있어야 합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은 그 큰 복을 받은 사람답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많이 드리고, 많이 나누고, 많이 베풀어야만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눅12:47-48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큰 은혜를 입은 만큼의 책임이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이 명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3.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 마땅한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그 은혜가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다른 종들과 달리 한 달란트만 그대로 가지고 왔을 때 그 한 달란트마저 빼앗기고 그 종에게는 책망과 형벌이 있게 됩니다. 눅19장에 므나의 비유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므나를 받은 종은 자기의 마땅한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자신의 한 므나마저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26절에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라는 책망과 심판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종도 동료의 빚을 탕감해주고 용서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인이 알고서는 그 배은망덕한 악한 종을 잡아와서는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에게 넘겼습니다(33-34절). 하나님으로부터 억만가지 죄를 용서받고 망극한 은혜를 입은 우리도 용서와 은혜를 입은 자 답게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우리가 이미 받은 용서와 은혜가 소멸되고, 대신 형벌이 따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시리라”(35절)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4. 큰 은혜 입은 자가 마땅한 책임을 다할 때 더 큰 은혜가 임합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이 열 달란트를 남기자 한 달란트 받은 어리석은 종의 한 달란트까지 추가하여 받는 복을 누리게 되며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므나의 비유에서도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든 사람은 칭찬을 받고,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고 덤으로 한 므나를 더 받게 됩니다.

계2:10에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충성한 사람이 놀라운 천국의 상급을 받게 됨을 말씀합니다. 물질도 적게 받으면 적게 받은 대로, 많이 받으면 많이 받은 대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창고가 넘치는 더 큰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소홀히 여겨 충성하지 못한 사람은 낭패를 당하게 될 뿐만 아니라 받은바 복과 은혜에 대한 책임과 형벌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시116:12에서 시편기자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도 하나님께서 내게 부어주신 놀라운 은혜에 대하여 어떻게 보답하며 어떻게 충성할까를 늘 기도하고 고민하며 사는 충성스런 종이 되어 나도 복되고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복되게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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