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훈 목사 (주님의 영광교회 담임)
오늘 시편 23편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많이 읽혀지며 암송되는 말씀입니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고,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돌보아 주시니까 나에게 정말로 부족함이 없다는 이 고백은 다윗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고백이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따라가기만 하면 푸른 풀밭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주시는 선한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오늘도 우리는 찬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모든 것을 보살피시는데 3절 말씀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소나 양은 편안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영이 있기 때문에 영혼이 잘되어야 참된 만족함을 얻게 됩니다.
사람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영이 하나님과 분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육체가 만족해도 무엇인가 내 마음은 만족이 없습니다. 내가 잘 먹고, 잘 살고, 배부르고, 따뜻하게 산다고 해도 무엇인가가 불만족스럽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가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명예를 얻어도, 아무리 쾌락의 삶을 살아도 불만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복음을 들었을 때 복음이 이해가 되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내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3절로 끝나면 좋겠는데, 4절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데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영혼이 소생되고 의의 길로 인도함을 받은 우리지만, 우리 안에는 아직도 죄성이 남아 있어서 우리 마음대로 우리가 아직 주인이 되어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의의 길로만 인도함을 받은 데로 가면 좋은데 말을 안 듣고 혼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첫째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기 위함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망’도 기분 나쁘고, ‘음침한’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것이고, ‘골짜기’는 어려운 환경에 갇힌 삼중 고난의 대표적인 문구입니다. 이런 징계를 받으면 다들 싫어하십니다. 얻어맞고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히브리서 12장 6절과 11절의 말씀을 굳게 믿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 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왜 하나님께서 징계하실까요?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징계하십니다. 징계가 끝난 뒤에는 연단을 받아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따라서 징계는 감사이고 축복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내가 주인이 되었던 것을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면 끝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려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게 하십니다. 신명기 8장 16절 말씀입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게 하신 것은 그들을 겸손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40년 동안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힘들지만 겸손해지게 됩니다. 또한 만나를 먹을 때 자기가 농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이므로 겸손해 질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라고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훈련받지 않고 복을 받으면 사람은 망가지게 됩니다. 훈련을 받아서 밑에서 부터 올라가면 좋은 사장이 되고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생을 한 다음에, 훈련을 받은 다음에야 주신 복을 관리할 줄 압니다. 복권에 당첨되어서 엄청난 금액을 받은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복권을 받은 것을 후회한 삶을 살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훈련되지 않고 갑자기 많아진 부를 잘못된 곳에 사용함으로 가정이 깨지고, 삶의 균형도 무너지고, 피폐해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복권이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아님에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고 있다고 여겨지십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하나님의 크신 복을 받을 모습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사명을 주시려고 내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게 하십니다. 욥기 23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금은 매우 유용한 금속입니다. 정말로 쓸 곳이 많습니다.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그냥 금만 가지고 있어도 돈이 됩니다.
금은 수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금은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정말로 좋은 금은 금에서 모든 불순물이 제거된 정금이 되어야 값진 것이 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은 정금이 되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귀한 곳에서 쓰임받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지팡이는 긴 것으로 양을 인도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고, 막대기는 맹수들이 나타났을 때 그것들을 때려잡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무리 어두워도 주님의 지팡이는 우리를 이쪽으로 저쪽으로 세심하게 인도해주실 뿐만 아니라 막대기로 나를 보호해 주신다. 이렇게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보면 죽을 것 같지만, 감사하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주님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다닐지라도”의 원어의 의미는 “통과할지라도”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통과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 골짜기에서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5절과 6절 말씀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머리에 바르신다는 것은 회복해 주시고 보상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서도 여호와의 집에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순간 지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여러분의 모든 곳에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